윤치호 일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글들 일제시대

19191026

 남궁벽이라는 한 청년이 내게 편지를 보내 도쿄에서 학업을 계속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조선민족이 현재 상황에 처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10년쯤 더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얘긴가? 난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다음과 같은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조선민족이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 주요인 중 하나는, 지식인들이나 지도자들이 수백 년 동안 유교 윤리와 불교적 이상에 관한 허황된 철학적 사색에 탐닉해 유용한 기술과 실용적인 도덕을 완전히 무시했던 점이라는 것 말이다. 난 도쿄에서건 다른 어디에서건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조선인 학생에게는 결코 동조할 수가 없다.

(이광수가 1927東光(동광)”에 기고한 글에 의하면, 윤치호가 유학생의 여비와 학비를 보조해 주는 데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 신학이나 과학 또는 실업을 배우는 자일 것, 둘째, 반액 이상의 여비나 학비를 준비해 놓은 자일 것, 셋째, 애걸하지 않는 자일 것.)

 

1920726

 우리에게 일본인들을 경멸할 자격이 있는가? 어디 한번 생각해 보자. 일본인들은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우리는 불결하다고 소문나 있다. 그들은 부지런하기로 유명하다. 우리는 게으르다고 소문나 있다. 그들은 미적 감각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자기들의 메마른 조국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아름답던 강산을 훼손했고, 어디를 가나 우리의 미개함과 우매함을 선명히 드러내주는 민둥산들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2천 년 동안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오면서, 모든 종교와 도덕의 기본 원리이자 정부의 기본원리이기도 한 상무정신을 습득하고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지난 500년 동안 치욕의 이조시대에, 우리의 상무정신은 잔인하고 이기적인 전제정치가 고안해낸 모든 기제에 의해 완전히 뿌리 뽑히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세계에서 가장 자부심 강한 민족들이 앞 다퉈 동맹을 맺으려 하는 일본인들을 경멸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가? 우리 입장에서 최상의 행동은 일본인들의 뛰어난 자질을 가능한 한 많이 배우고 모방하는 것이다. 그들의 청결성, 근면성, 협동성, 기강, 응집력 등을 말이다.

 

1920922

 어제 발행된 서울 프레스에서 뉴욕타임스의 한 특파원이 쓴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쌓은 공적인가 하는, 뭐 그런 비슷한 제목의 기고가 실렸다. 도로부설, 조림사업, 근사한 공공건축 등 일본의 조선 통치를 옹호하는 일본인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판에 박은 주장이 다시 거론되었다. 그건 그렇고 기고자는 조선민족에게 정력과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결정적 증거로서, 300년 전에 일본 침략자들이 땅바닥에 팽개쳐 놓고 간 서울 파고다 공원 탑의 상부 3층 옥개석을 조선인들이 지금껏 그대로 방치해온 사실을 들었다. 이 논지가 맞는 건 사실이다. (19462월 미군정청 문교부장 유억겸의 노력으로 미군 공병대에 의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19201029

 난 가끔 고종황제가 지난 14년 동안 계속해서 황제 자리에 있었더라면 조선이 어떻게 되었을까, 또 조선인들이 지금쯤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어보면서 웃음 짓곤 한다.

1) 아마도 궁궐과 조정에는 이용익, 이지용, 민영철 같은 야비하고, 잔인하고, 가증스런 악당들이 들끓었을 것이다.

2) 온 나라에 도적과 노상강도가 출몰해 인명과 재산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3) 도지사, 군수, 군인, 경찰의 수탈과 만행이 도적과 노상강도들보다 심했을 것이다.

4) 미국인, 일본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등 외국인 투기꾼들이 광산, 산림, 어장 등 온갖 종류의 천연자원을 양도라는 미명하에 강탈했을 것이다. 황제와 그이 비열한 총신들에게 가장 많은 뇌물을 바치는 패거리들이 관세, 세입 등 값나가는 것들을 모두 독차지했을 것이다.

5) 일본은 좀 더 바람직한 정부를 수립하려는 혁명운동을 진압하려고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고종황제가 지난 14년 동안 전제적인 권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더라면, 조선은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

 

192126

 홍영후(난파)의 편지를 읽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작년 1~2월 쯤 도쿄에 가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가 간청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에게 100원을 주었다. 9월 언제쯤인가 또다시 수표로 100원을 주었다. 나중에 50원을 더 주어서, 유학비용으로 모두 250원을 대주었다.

한 달 전 그가 다시 편지를 보내와 바이올린을 사게 250원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공부하는 중에 250원짜리 바이올린을 사는 건 내 아들이나 동생이라도 절대로 승낙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고 답장을 썼다. 남에게서 돈을 받아 공부하면서 생활비 전액을 대달라고 하는 것이나, 고학생이 250원짜리 바이올린을 갖고 싶어 한다는 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배달된 편지에서, 그는 구두쇠의 죄악에 대해 내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는 조선의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자기 재능을 계발할 만한 아무런 수단이 없는 조선의 천재들과 영웅들의 운명을 비관했다. 그는 볼셰비키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정당한 약탈자들이라고 강변하고, 부자들이 혼자서 자기 재산을 누릴 수 없는 때가 곧 올 거라고 협박까지 했다. 조선 청년들의 수준과, 은혜에 보답하는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녀석이었다.

 

192478

 조선의 기고가들은 인간들을, 특히 조선인들을 대체로 여섯 개의 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세 계층은 무조건 나쁘고, 나머지 세 계층은 무조건 훌륭하다고 믿는 것 같다. 부자들은 모두 사악하고, 노인들은 모두 어리석으며, 남편들은 모두 야비하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가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선하고, 젊은이들은 모두 현명하며, 여성들은 모두 훌륭하다고 보는 것 같다. 이 얼치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만드는 조선의 일간지들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어깨를 들먹이고, 젊은이들은 반항을 해대며, 여성들은 우쭐거린다. 조선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동맹휴학도 대부분의 경우는 신문이 러시아 유형의 사회주의를 선전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193352

 이와사 장군이 내지인반성자록(內地人反省資錄)”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그는 자기 부하들을 동원해서 수집한, 조선 거주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숱하게 해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70여 종의 이야기들을 이 책에 수록해놓았다. 그의 무사다운 자세가 무척 고맙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 조선인들이 경제적, 지적 측면에서 일본인들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일본인들의 모욕적인 언행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인들의 우월주의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치료하는 방법은 다름이 아니라, 조선인들이 싸우는 법을 확실하게 배우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비로소 조선인들을 모욕하는 따위의 언행을 삼가게 될 것이다.

 

<윤치호 일기> 김상태 편역


학병 수첩 일제시대

 

이 손이 사람을 죽였다. 이 주판이나 놓고 편지나 쓰고 하던 맵시 나고 아름다운 손이 사람을 죽였다. 이 손으로 잡은 총검이 적인 호주 출신의 영국군 가슴에 쿡 박혀서 그를 즉사케 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예상도 안 했을 조선 출신의 학병인 나의 총검을 받고 즉사하지 않았는가. 호주인인 그는 영국 황제를 위해 싸웠고, 나는 일본 황제를 위해서 싸웠다.

 

 

 

7천만 국민을 가지고 있던 일본은 지금껏 열등국민이라 하여 도외시하였던 조선의 2,600만까지 끌어넣어 1억 국민을 자랑하고 아직껏 사반세기 동안 잊어버렸던 명치 황제의 一視同仁(일시동인,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아 똑같이 사랑한다)까지 끌어내 조선인을 추어세우고, 1500년 전에 망한 백제까지 등장시켜 同根同祖(동근동조, 같은 뿌리 같은 조상)’를 부르짖으며, ‘요보(야만인, 미개인)’라고 멸시하던 조선인에게 '반도인'이라는 자랑스러운 벼슬을 주고 일본인과 동등이라는 인식을 밝히기 위하여 창씨 제도를 세우고....... 그리고 나서는 일본 신민 된 가장 빛나고 귀한 권리인 병역권을 조선인에게도 뒤집어씌웠다.

 

우선 지원병이라 하여 공장과 농촌의 씩씩한 젊은이들을 끌어내 중국이며 남방지대에 보내어 죽여 버렸다. 뒤따라 학병 제도였다.

 

일본인인 황군은 싸움 마당에서 어떤 실수가 있다 할지라도 그 책임은 한 개인에게 있다. “비겁한 놈.” “어리석은 놈.” 이것으로 문제는 끝난다. 그러나 조선 출신의 병정은 그렇지 않다. 무엇을 실수하든가 잘못하면, “조선인은 저렇다.” “조선인은 할 수 없다.” 만사가 그 개인의 행동이 아니고 조선인이라는 민족 배경의 일원으로 잡힌다. 그러니 모든 일은 용의주도하게 하여서 그 욕이 민족 전체에게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내 나이 스물세 살.......

구한국시대도 지나서 일본의 대정 연대도 초기를 지나서 대정 10(1921)에 세상에 나왔다.

 

어버이는 당당한 조선 신민이라고 하나, 나는 조선이며 한국이 소멸하고 일본제국에 병합된 이후에 났으니 엄정한 의미로는 나면서부터 일본인이다.

 

나면서부터 일본인이요 지금껏 자라는 내내를 일본국가 비상시국을 하고 넘은 관계로 어려서부터 교육의 황도 정신을 머리에 처박아 오늘까지 이른 우리라....... 열렬한 민족주의자인 아버지를 가진 나 같은 사람은 예외이거니와, 30세 이하의 청소년에게는 일본인 성격과 일본 황도에 젖은 사람이 태반이다.

 

물론 그들의 피가 반만년 정연히 흘러내려온 조선의 피매 한때 일본인 종교 교육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만한 것은 조그마한 노력으로 말살되기는 하겠으나, 그래도 덜컥 일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순간 너는 진정한 조선인이 못 되느니어떠니 하는 말썽이 안 일어날까.

 

청소년 없이 국가는 존립하지 못한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지 근 40, 청소년 및 장년의 일부분까지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진 뒤에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는지, 요행 일본의 굴레를 벗어난다 할지라도.......

 

 

 

8월 보름. 인류가 영원토록 기념하고 자랑할 명예의 날 815. 인류사회를 ()하던 마지막 봉우리인 일본의 군국주의도 이날 종내 民意(민의) 앞에 굴복하였다.

 

일본 황제가 몸소 마이크 앞에 서서 흐느껴가며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을 무조건 따르노라는 포고를 하였다.

 

이 포고가 조선 천지에 퍼질 때의 조선의 모양이 어떠하였는지는 조선에서 만 리 밖인 이곳에서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뒤 이곳에 들어온 뉴스를 보자면 그야말로 이취여광 삼천리에 천지가 웃음으로 터져 넘치고 40년간 구박받아 숨어 있던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애국가는 천지를 진동한다.

 

한때 내 어리석은 소견에 근심하였던바 대정 연대(1912-1926)와 소화 연대(1926-1989)에 출생한 일본인인 조선 청소년들도 노인네들과 손을 맞잡고 미친 듯이 기뻐 뛰논다 한다.

 

피가 조선의 피다. 한때 연호로 대정이라 소화라 일본의 연호를 좇았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혈관 속에 흐르는 피야 어찌 속일 것인가. 그들....... 아니 우리들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소멸된 나라 동방의 군자국, 동방의 은사국은 다시 세계의 표면에 솟아오르려 한다.

 

 

 

지금에 앉아서 생각해 보건대 이 모든 일이 하늘의 섭리였다.

조선인의 성격이 본시 느리고 대범한 때문에 20세기 찬란한 문화 세상에 조선을 폭로시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국제상 뒤떨어진 나라 노릇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여 하늘은 조선의 지배권을 몇 십 년간 일본에게 맡겼다.

 

빠랑빠랑하고 조밀한 일본으로 조선을 합병해가지고 단시일 사이에 표면만은 세계 수준에 뒤미칠 만한 시설과 예비를 해놓았다. 조선이 그냥 제 나라를 통치했으면 삼사십 년의 짧은 기간 안에 이만한 시설은 도저히 못하였을 것이다. 빨랑빠랑한 일본인의 성질을 가지고서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40년을 일본의 전력을 기울여서 닦은 결과 조선도 인제는 표면만은 비슷한 국가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는 조선의 통치권을 조선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차례다. 이러기 위해 하늘은 일본에게 미, , 중에 향하여 싸움을 걸도록 꾸몄다. 이 미, , 중 대 일본의 전쟁의 결과로 조선은 가만히 앉아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된 것이었다. 조선의 해방은 미국이 준 바도 아니요, 중국이 준 바도 아니요, 또는 소련이 준 바도 아니요, 하늘의 선물이다.

 

하늘이 주신 이 해방의 자유!

한 번의 공습도 받아보지 않고 한 푼의 손해도 받아보지 않고 일본이 40년간을 심혈을 기울려 닦고 간 이 금수강산은 이제 완전히 우리의 손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본을 위하여 총을 잡고 싸우던 우리 학병들....... 이제부터는 마음 다시 먹어서 내 나라 내 강토를 보호하기 위하여 우리의 젊은 심신을 바칠 날이 왔다.



 

김동인 단편 <학병수첩> 19463


그들은 어떤 세상을 지키려고 의병을 일으켰나? 한국사

의병 내부의 신분 갈등은 활동의 가장 강력한 장애 요소였다. 실전에서 무능력했던 양반 유생들이 신분을 내세워 조직 내에서 우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의병장 유인석이 양반인 안승우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이유로 충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평민 지휘관 김백선을 처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백선은 일본군 진지를 공격하던 중 원군이 오지 않아 패배하자 원군을 보내지 않은 중군장 안승우에게 거세게 항의했는데, 유인석은 군기를 문란하게 했다는 죄목으로 오히려 김백선과 그의 아들까지 처형했다.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김태웅 김대호 p379



유인석이 보는 평등과 자유

 

천지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만물에는 크고 작음이 있다. 인간에게도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 남편과 아내, 어른과 젊은이, 윗사람과 아랫사람,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구분이 있으며, 성인과 보통 사람이나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같은 차이가 있는데, 어찌 서로 평등하겠는가?

 

평등이란 곧 무질서이며, 무질서란 곧 혼란이다. 자유란 곧 사양하지 않음이며, 사양함이 없다면 곧 싸움이다. 지금 세상이 혼란하고 싸움이 잦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평등과 자유라는 사상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평등과 자유를 주장하면 어지러운 다툼의 마음이 일어나 행동으로 어지러운 다툼을 일으키게 된다. 천하가 평등과 자유로 귀의하면 어지러운 다툼의 마음이 일어나 행동으로 어지러운 다툼을 일으키게 된다. 만약 이런 사조가 그치지 않는다면 인류는 장차 쇠잔해 없어질 것이요, 천지도 반드시 붕괴됨에 이를 것이다.......

 

평등과 자유는 만고천하에 견줄 데 없는 가장 나쁜 설이니, 다름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거리낌 없게 하고 사람들을 모두 소인배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중국과 조선에서 시행할 수 있겠는가?

 

소위 여학교라는 것은 천지를 본받지 않아 금수와 같은 사람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 수많은 성현이 다스리고 가르친 중국과 천하에서 특별한 예의의 나라인 조선이 어찌 이렇게 형편없고 망극한 일을 한단 말인가?

 

오늘날 남녀는 마땅히 평등하고 각기 자유라 하면서, 남자도 학교가 있고 여자도 학교가 있어 남녀가 함께 움직이니, 이는 천지에 높고 낮음이 없는 셈이다. 땅이 스스로 이루는 게 있어 보이지만 정작 하늘을 대신해서 스스로 이루는 것은 없으며, 땅이 하늘에 순종함이 없이 하늘과 동행하면 하늘보다 강해진다. 땅이 하늘에 순종해야 조화가 이루어지는데도 오늘날에는 하늘과 땅이 동등하게 움직여서 조화가 없어졌다.

 

지금 사람들은 남녀를 모두 동등하게 허용하니, 어찌 천지의 도리를 본받는다 말할 수 있겠는가? 크게 본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금수만도 못하다 할 수 있다. 여자들이 평등과 자유를 말하며 배우는데, 그 학습이 늘어나서 남편과 평등한 데에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반드시 자기를 높여 남편을 눌러 추월하기 쉽다. 자유로워짐에 그치면 다행이겠지만, 반드시 남편을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게 하기 쉽다.

 

남편에게 이미 그렇게 하고 부모와 시부모에게도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바가 없을 것이다. 또 자식은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는데 어머니의 처신이 이와 같으니, 아들도 곧 망치게 되고 그것이 손자에게까지 미쳐 망가질 것이다. ! 슬프도다.......

 

똑똑한 남편이 성을 쌓으면 똑똑한 아내는 성을 기울게 한다. 예로부터 나라와 집이 있는 사람이 어찌 똑똑한 여자로 말미암지 않고도 다른 이유로 패망한 적이 있는가? 지금 여자들은 학교에 다녀, 순전한 자세를 버리고 기이하고 음탕한 버릇을 즐긴다. 안으로는 정조를 무너뜨리고, 밖으로는 바깥일을 간절히 바란다. 한갓 약삭빠른 태도를 기르고, 임기응변의 기교만 익힌다. 그 방자함에 거리낌이 없어서 똑똑한 여자 되려는 노력에 끝이 없다. 이러니 나라가 과연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니, 한 나라에서 암탉이 운다면 어찌 행운이 있겠는가? 천하에서 암탉이 울면 천하에 어찌 좋은 일이 있겠는가?....... 슬프도다!

 

어디서 성웅과 영웅이 일어나 지금의 저 서양식 남녀학교를 철거하고 옛날의 도를 회복해 사람들로 하여금 삼대(요 순 우 임금 시절)의 번성한 때를 다시 보게 할꼬?

 

유인석 의암집 51 우주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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