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병덕, 일본군 장성을 구타하다 한국전쟁

 

나와 채병덕씨와는 옛날부터 마음이 맞지 않았다. 몸매나 출신지도 다르지만 육사에 입교해서 처음 그 사람을 만났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사고방식이나 경력도 전혀 이질적인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나는 당시 일본의 아남(阿南) 육군장관의 아들 유경(惟敬)씨(70년대 일본 방위대학교 교수)와 동기여서 육군 장관의 관저에 가끔 놀러 갔었다. 1973년에도 방위대학으로 유경씨를 방문한 일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채병덕씨는 일본인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나는 일본 육군 제 3사단의 야포병 연대 근무로 상계(湘桂)작전에 참가했고 1945년 초부터는 제 73 야포병연대의 중대장으로 몹시 고생했다. 그런 관계로 전선의 분위기와 작전을 내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채병덕씨는 그 전쟁 중에도 병기 분야에서만 근무했기 때문에 소총탄의 세례조차 받은 일이 없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영어를 잘 했기 때문에 그런대로 아쉽지 않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채병덕씨는 어학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이형근 장군이 사사끼와의 면담에서)

한국전비사 상권 p 105-106 

일본군에서 자주 상관과 충돌하였고 특히 오사카 조병창(造兵廠)에서 근무할 때는 소장(少將)인 창장의 한마디 말에 흥분하여 폭력을 휘둘렀는데 이로 인하여 육군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전비사 상권 p 569


채병덕은 다소 성질이 급한 편이어서 구 일본군 시절에는 상급자인 소장을 구타한 사실이 있고 그것이 화가 되어 육군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소문이 있는 주인공이었다.

한국전비사 중권 p 245



그러고 보면 채병덕은 국군 시절에도 한 사람의 장군을 구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의정부 전투 실패의 책임을 물어서......



덧글

  • 행인1 2010/05/26 23:27 # 답글

    그런데 구 일본군에서 저런 일이 있었다면 육군대학(엘리트코스) 입교 못한것에서 끝난게 다행일지도....;;;
  • 금성천 2010/05/27 10:13 # 답글

    한국전비사의 저자인 사사끼가 채병덕의 일본 육사 동기생들을 통해 채에 관한 이야기들을 취재하면서 알아낸 것으로 보여집니다. 장군이 조선인 대위에게 폭행 당했다면 그 장군이나 일본군에게도 그 사건이 확대되는 것이 더 망신스러운 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로서 궁금한 것은 그 폭력, 구타가 어느 정도의 형태였을까 하는 것이죠. 주먹으로 때렸을까? 손으로 밀쳤을까? 아니면 배로 밀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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