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기록으로 본 한강교 폭파사건 한국전쟁

 

미군사고문단 참모부장 월터 그린우드 대령은 작전국 고문이었던 조지 세드베리 소령으로부터 한국군이 한강교를 폭파하려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즉시 참모부장 김백일 대령과 협의하여 서울에 있는 부대 보급품, 장비들이 도강을 완료할 때까지 폭파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그린우드 대령은 육군본부로 달려가서 김백일 부장을 만났더니 28일 01시 30분이 국방부 차관이 폭파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때 작전국장 장창국 대령의 말에 의하면 그날 밤중에 5사단장 이응준 장군이 육본에 와서 자기부대의 병력과 장비가 통과할 때까지 폭파를 중지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 전에 참모총장 채병덕 장군은 육군본부를 한강 이남으로 이동시키자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여하튼 당시 육본의 최고 선임자는 김백일 부장이었다. 이응준 장군의 건의를 받은 김백일 부장은 장 대령에게 한강에 가서 교량폭파를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장 대령은 밖으로 나와 지프를 타고 한강을 향해 달렸으나 거리는 혼잡하여 뚫고 나가기가 퍽 힘들었다. 북 한강파출소에 이르렀을 때 누런 빛 구름이 밤 하늘을 뒤덮고 대 폭음이 진동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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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강 인도교의 대사건에 관하여 후에 국민여론이 비등하기 시작하였는데 사전에 아무 예고 없이 폭파시킨 책임소재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당시 육군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교량에 폭약을 준비하였고 그를 집행했다는 것으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미 고문관들은 참모총장 채병덕 장군이 폭파를 명령하였고 공병감은 다만 명령을 실행하였을 뿐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채장군은 자기가 명령하였다는 것을 부인하였다. 한편 유력한 다른 풍문에 의하면 보다 더 고위층인 국방부 차관 장경근의 명령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참모부장 김백일의 말에서 온 것이었을 것이다.


서울 교외에서 아직도 적의 침공을 견제하고 있던 전투상황과는 관련이 없이 수도의 관문인 한강교가 파괴되었다는 것은 군사작전을 지휘하던 육군당국에 의한 것이 아니고 국방부에 의해서 지시되었다는 것이 수긍된다.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p15-16



육군본부에 남아있던 작전국 고문인 세드베리 소령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야단났습니다. 대령님. 한국군은 한강다리를 폭파하려 합니다.” 세드베리는 계속했다. “나는 김 참모부장을 만나 모든 부대와 군 보급품을 남으로 이동시킬 때까지 연기하도록 말했습니다.”


미 군사고문단과 채 장군 사이에는 괴뢰군의 탱크가 용산 삼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한강 다리를 폭파하지 않을 것을 단단히 합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린우드 중령이 육본으로 달려갔을 때는 채 장군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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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채 장군은 확실히 그의 의지와는 반대로 육군본부를 빠져나가 남쪽으로 가는 차량을 타고 가버렸다. 김백일 부장이 직무를 대행하게 되었다. 김부장은 그린우드에게 국방부 차관이 다리를 밤 1시 30분에 폭파하라고 명령했으며 자기는 명령을 거역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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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분후 5사단장 이응준 장군이 육본에 들어왔다. 그는 다리를 폭파한다는 말을 듣고 김 부장에게 달려가 사정했다. “적어도 내 부대와 그들의 장비를 한강 이남으로 철수시켜야 합니다. 이 명령은 당치않아요.” 이 장군의 말에 흔들린 김백일 부장은 작전국 장창국 대령에게 “한강으로 차를 타고 가서 공병감에게 폭파를 중지하도록 하시오.”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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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공병감은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폭파한 책임 때문에 총살 당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에서는 한국군을 파멸케 명령한 국방부 차관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았다.

<한국전쟁> 페렌바크 p73-74



커다란 비극이 발생했다. 자정, 한국군에 배속되어 있던 조지 세드베리 2세 소령은 미 군사고문단 본부에 놀라운 소식을 전화로 알려왔다. 한국군 약 1만 명과 장비가 도하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한강교를 폭파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명령은 한국군 고위사령부에서 커다란 문제를 일으켰으며 참모총장 채병덕 소장은 큰 소리로 반대하고 있었다. 그는 100킬로그램 이상의 거구였는데 돼지라는 별명을 스스로도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였다. 그러나 군인답지 않은 외모와는 달리 그는 용사였다. 몇 시간만 더 교량을 고수한다면 며칠 내로 당장에 필요한 병력과 장비가 살아남게 되리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국방부 고위 관리는 즉각 폭파시켜서 비록 한국군 수천 명이 희생하게 되더라도 북한군의 탱크가 한강을 넘어서는 것을 저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채병덕이 계속 반대하자 그는 즉각 지프차에 실려 한강 너머로 보내졌다. 채병덕 장군의 대리인인 김백일 부장은 한강교 폭파에 동의했다.


미국인들도 항의했다. 잠에서 깬 라이트 대령은 군사고문단 월터 그린우드 2세 중령을 급히 한국군에 보내서 적 탱크가 한국군 사령부가 있는 도로상에 나타나면 다리를 폭파하겠다던 약속을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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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은 전시의 혼란과 문서화된 작전명령이 없어 수사에 곤란을 겪었지만 어쨌든 군법회의를 열고 다리 폭파의 방법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공병감을 처형했다. 미군사고문단의 많은 장교들과 가진 회견을 토대로 만들어진 미 육군전사는 “전술 상황을 고려하지 말라”는 구두명령이 군 내부에서 내려진 것이 아니고 민간인 국방부 차관으로부터 나왔던 것을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책임을 한편에 전가시키고 있지는 않다.

<한국전쟁> 조셉 굴든 p101-102




한강교 폭파사건에 관해서는 우리 측 기록으로 구판 한국전쟁사 2권, 한국전쟁사 개정판 1권, 민족의 증언(중앙일보사), 전환기의 내막(조선일보사) 등 여러 자료가 있으나 오히려 미군의 기록이 한강교 폭파 사건에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전술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국방부 차관의 명령도 잘못이지만 이를 받아들인 국군도 잘못했다는 것이다.


군사적인 문제에 있어서 민간정부와 군부의 의견 차이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민간 정부가 군부보다는 우위인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군사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민간정부의 무리하고 어리석은 요구에도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지는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나 정부와 뜻이 맞지 않아 군복을 벗는 장군들이 생기는 나라가 오히려 더 민주주의에 충실한 국가로 보인다.


덧글

  • 미연시의REAL 2010/07/02 21:32 # 삭제 답글

    저는 장관도 아닌 차관이 군사작전에 극단적인 개입을 한 문제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복종을 강요받는 문민통제에서의 군의 입장이더라도 말이죠. 정말 신기합니다. 이 글대로라면 차관이 권한도 없이 군사작전에 개입하여 절대적 명령을 요구한 셈인데..;;
  • 금성천 2010/07/03 10:04 # 답글

    우리나라 관료제도의 특성으로 볼 때 국방부 차관보다는 바로 위인 장관이 실제 명령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미연시의REAL 2010/07/03 14:18 # 삭제

    당시 장관이라면 신성모의 명령이라고 봐야하는건가요?;;
  • 금성천 2010/07/03 14:34 #

    아마도 그렇게 봐야 할 겁니다.
  • 훨훨 2015/02/17 10:07 # 삭제 답글

    그당시
    대방동 육군관사에 살았음

    선친은 대전 3육군 병원장


    새벽 폭파진동에.......

    놀람
  • 훨훨 2015/02/17 10:07 # 삭제 답글

    그당시
    대방동 육군관사에 살았음

    선친은 대전 3육군 병원장


    새벽 폭파진동에.......

    놀람
  • 2018/03/01 02: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3/05 16:0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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