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장관 복귀를 원한 이범석, 게릴라부대장 제의를 거절하다. 한국전쟁

 

 

6월 29일


장택상 신익희씨가 밤 9시 쯤 찾아왔다. 두 사람은 현상타개를 위해서는 국방장관을 바꿔야한다며 역시 이범석 장군을 추천했다. 대통령께서도 철기(鐵驥)는 게릴라전의 명수니까 전황타개에 묘책일 수도 있다며 국방장관 경질의 뜻을 비쳤다.


무초 대사가 끼어들었다. 지금은 각료를 바꿀 때가 아니며 특히 국방장관을 바꾸면 큰 혼란이 일어난다고 극구 반대했다. 내가 알기로 무초 대사는 이 장군을 무척 싫어했다. 그의 생각은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고집이 세고 특히 미국의 말을 잘 안 듣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무초 대사와 이 장군은 무척 나쁜 관계였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한번은 무초 대사와 이 장군이 토론 중 독립운동 경력이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무초 대사의 편견이 나오자 이 장군으로부터 매를 맞은 적도 있다는 것이다.


그날 밤 대통령이 나에게 들으라는 듯 “우리는 지금 철기 같은 파이터가 필요한데 사사건건 무초 펠로가 저 모양이란 말이야”하며 못마땅해 했다. 대통령은 무초 대사를 앰버서더라 부르지 않고 사석에선 무초 펠로(무초 녀석)라고 호칭했다.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6.25와 이승만> p29



전혀 무방비 상태의 전라도는 북괴군의 점령을 기다리고 있었던 결과가 되고 말았지만 우리 측의 적군을 분쇄하는 게릴라 작전의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 지역의 수많은 산과 동굴, 언덕은 은신처와 공격지점이 되었다.


한국군 해병대 일부가 군산항에 있었고 무기를 요구하는 수많은 대한청년단 대원들이 있어 게릴라 부대의 편성은 무척 용이할 것 같았다. 북괴군은 이 지역의 장악이 쉽지 않았었다. 그들 무기와 부대는 야영 중 혹은 평지에서 횡단하다 공격받기 쉬웠었다.


전라도 지역이 위협을 받게 되자 이대통령은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을 지낸 바 있는 이범석 씨를 불러 현역에 복귀시켜 전라도 지역에서 게릴라 부대를 조직하고 이들을 총지휘할 것을 요망했다. 이 일만 성공적으로 되면 보다 북쪽 지역까지 이 작전을 확대시킬 수 있었다.


이범석 씨는 전라도 지역의 게릴라 부대를 조직하여 방어하기에 무척 적합한 인물인 것 같았다. 그는 만주에서 일본에 대항하여 수년간 게릴라 활동을 한 바 있는 무척 활동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기습직후 후퇴라는 전술을 통해 늘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게릴라 부대를 끈기 있게 유지,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준 바 있었다. 1950년 여름 당시에는 그와 같은 게릴라전에 경험 있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의 명성은 수많은 지원자를 그의 밑에 쉽게 모을 수 있었다.


한편, 이범석 씨는 전쟁 발발 이후 여러모로 그의 전직이었던 국무총리나 국방장관에 재임용되기를 위해 노력했고 또는 야전군 사령관이 되길 희망했었다. 한국군의 계속된 패배와 뒷날 미군의 동일한 패배는 그로 하여금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군사적 지휘력과 전술이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했었다.


어쩌면 그의 이런 생각은 잘못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갑자기 군인으로 출세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중국의 사관학교를 졸업했었고 게릴라 활동 이외에도 벌써 1932년에는 중국인들과 함께 만주에서 활동할 당시 심리전의 경험을 쌓았고 2차 대전에는 중국군대의 장성급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 그의 정치적인 책략은 한국의 군사적 노력에 유익한 것은 아니었다.


이범석 씨는 게릴라 부대의 책임을 거절했다. 무초가 미국의 관점에서 본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했지만 역시 거절했다. 어떤 요지의 말도 그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그는 보다 높은 직책을 원했고 이 특수하고 중요한 임무에 그가 그렇게 적격이란 사실도 그에겐 필요가 없었다.


이 대통령은 큰 실망과 분노를 표시했다. 이 대통령은 나에게 이범석이 그 임무를 맡아 잘 수행했다면 그에게는 더 이상 바랄 높은 지위가 한국정부에 없다고까지 이야기 했었다. 그러나 이제 이 대통령은 그에게는 어떤 자리도 줄 수 없다고 화를 내게 되었다. 몇 달이 지난 후 화가 누그러진 이 대통령은 이범석 씨를 타이베이의 대사로 보냈다.


불행히도 이 씨의 거절로 게릴라 부대의 조직은 계획으로만 끝나게 되었다. 아무도 그 이상 거론치 않았고 전쟁 중 가장 좋았던 기회의 하나는 사라지게 되었다. 북괴군은 차츰 전라도를 짓밟기 시작했고 경찰은 상황에 따라 싸우거나 후퇴를 반복했다.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밤이면 북괴군을 습격하곤 했으나 조직적인 대항은 아니었다.

<이승만박사와 미국대사관> p191-192


덧글

  • 슈타인호프 2010/07/21 22:13 # 답글

    아쉽군요. 제대로 되었다면 2개월간 인민군 후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줄 수 있었는데...
  • 행인1 2010/07/21 22:55 # 답글

    당시에 이런 구상정도는 있었군요.
  • 금성천 2010/07/22 10:03 # 답글

    성사만 되었다면 철기와 방호산의 빅 매치가 볼만 했을 것 같은데요.
    철기는 왜 무초 펠로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아가지고.
    철기 입장에서는 국무총리까지 지낸 자신에게 게릴라부대장으로 가라는 제의가 죽으러 가라는 이야기로 들렸을지도 모르게습니다.
  • 2010/07/22 10:3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비도승우 2010/08/26 07:57 # 삭제 답글

    게릴라 부대를 지휘하기엔 본인도 나이도 고령일뿐더러 아마도

    정치적인 이유를 많이 생각했겠죠. 저같아도 죽으로 가라는 소리로 들렸을듯.ㅋㅋㅋ

    철기 이범석의 모젤권총이 생각나네요..저 당시에도 웬지 소지하고 있었을듯.
  • Dr.Nam 2010/09/03 09:55 # 삭제 답글


    당년 51세의 노장(?)급이었던 이 장군에게 게릴라를 지휘라..ㅎㅎㅎ

    금성천님 말씀처럼 만약에 성사되었다면...

    이범석과 방호산이라는 역전의 베테랑의 대결이 볼 만 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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