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연대 대전차포중대의 청주 남쪽 대전차전 한국전쟁

 

7월 12일 저녁 우리는 지연전을 위하여 청주 남방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 곳은 김천과 영주의 갈림길이었으며 주력부대는 방어배치에 들어갔고 연대본부 배치를 완료한 나는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 지나는지 모르지만 연락병의 다급한 소리에 눈을 뜨고 보니 16시가 가까웠다. 그는 적의 전차가 온다면서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효과적인 대전차무기를 장비하고 있지 못했으며 대대들은 비교적 높은 좌우측 고지에 배치되다 보니 적 전차의 접근이 사실이라면 바로 도로변에 있는 연대본부의 사정은 불리하기 마련이었다.


연대본부가 자리 잡고 있는 위치에서 동쪽으로 국도를 따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꽤 높은 하천제방이 있었고 하천에는 별로 물은 흐르고 있지 않았지만 작은 콘크리트 다리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적정을 확인할 여유도 없이 주위에 있는 연대본부 시설들을 즉시 다리 건너로 이동시키고 대전차포중대장 조동삼 대위를 찾아갔다. 우리 연대 대전차포중대는 사변 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남긴 중대였다. 이 중대는 대전차전에서는 특별히 많은 경험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사변 당시는 삼각지 로타리에서 적의 전차와 싸우기도 했다. 57밀리 포로 장비된 이 부대가 성남극장을 지나오는 적의 전차에 대하여 철갑탄을 퍼부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조 대위가 씁쓸하게 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조 대위와 함께 교량을 건너서 좌측 200 미터 지점 숲속에 대전차포 1문을 배치하고 철갑탄을 장전한 후 적 전차의 접근을 기다렸다. 나로서는 실전에서 처음 겪는 대전차 공격이었고 몹시 긴장된 순간이었다.


대전차전이란 1발에 승부를 꼭 내야하는 것이다. 전차는 행군 대열로 이동할 때는 반드시 전차별 감시구역을 정하고 모든 전차가 만반의 사격준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초탄에 실패하면 그것은 곧 죽음과 파괴를 동시에 부르는 것이다.


긴장의 순간이 얼마쯤 지났을 때 적 전차는 캐터필러의 특징 있는 소리를 내면서 교량 지점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의 시야에 선두 전차가 보였고 얼마 뒤에 2번 3번의 전차가 나타났다. 도로 좌우측의 능선에 배치된 방어진지에서는 이 전차의 접근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교량 가까이에 접근한 선두 전차는 교량 상태를 확인하는 듯 하더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른 전차들은 노상에서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선두 전차는 예측한 대로 교량의 좌측 둑을 등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로 이 순간을 노렸고 그 이외에는 적의 전차를 57밀리 대전차포로 파괴하는 방법은 없었다.


T34 정면과 측면 공격은 이미 실패한 바가 있고 단 하나 전차의 하복부를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전차가 차체 바닥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바로 우리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처럼 전차가 둑을 기어올라 올 때의 그 순간 바로 그 일초를 놓치면 좀처럼 그런 기회를 얻기란 힘든 것이다.


사거리 200 미터에서 직접 조준으로 포수는 지시 받은 대로 전차의 하복부가 나타나는 찰나 사격을 가하였다. 초연(硝煙)과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발의 철갑탄은 적 전차의 하복부에 명중되었다. 그 육중하던 전차는 완전히 등판을 못한 상태로 둑에 주저앉고 말았다.


포수 6명과 나와 조대위는 포진지에서 100 미터 떨어진 바위 뒤로 달렸다. 이 100 미터야말로 머나먼 100 미터였다. 적의 후속 전차들은 틀림없이 우리 대전차포 진지를 발견하였을 것이고 언제 포탄이 날아올지 몰랐다.


우리가 바위 뒤에 몸을 숨기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적 전차 포탄이 우리 대전차포 진지에 명중되었고 적 전차들은 4-5발의 사격을 계속 가하였으며 포탄이 명중할 때마다 대전차포는 박살이 나서 뒹구는 것이었다.


적의 파괴된 선두 전차를 보니 2명의 전차병이 해치에서 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적의 사격도 멈춰지고 주위가 다시 고요해졌는데 어디선가 제트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가 어떻게 항공기와 연락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용케도 비행기들은 적 전차들을 찾아내더니 맹렬하게 로켓포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매 앞의 꿩, 전차는 비행기의 밥이었다. 약 5분간의 항공기 공격에 적 전차는 한 대도 남김없이 파괴당하고 말았다.

<대대장> 이병형 p62-66



덧글

  • 꼬마니체 2010/08/13 18:40 # 답글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18연대 장교로 계셨습니다..
    전쟁 발발시 계급이 중위셧고 1대대 3중대 중대부관이셨 답니다..
  • 금성천 2010/08/13 20:19 # 답글

    18연대 1대대면 진진백골이셨네요. 백골부대는 최강 전투력을 자랑했지만 산골부대, 등골부대라 불릴 정도로 부대원들의 고생도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 Dr.Nam 2010/09/03 09:35 # 삭제 답글

    ^^
    당시는 수도 18연대 였고...흥남철수작전 이후 3사단으로 편입되어 (3사 26연대와 상호 교체) ...
    이후 18연대의 전통이 3사단에 남게 되는 결과가 되죠^^

    애초에 3연대와 8연대를 해편하여 18연대로 편입시키면서 역전의 고참 부사관급이 많았고 특히 이들이 북에서 내려온 서청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전투력이 강한것으로 유명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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