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병학교 57밀리 대전차포 소대의 초전 3일 한국전쟁

 

나는 즉시 집으로 돌아와서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귀여운 두 살짜리 딸과 아내를 뒤로하고 용산 포병학교를 향해 뛰었다. 서울 시내에는 헌병 지프차가 기관총에 실탄을 주렁주렁 달고 질주하면서 “국군장병들은 즉시 원대복귀하라. 비상이 걸렸으니 지체없이 귀대하라”고 외치고 다녔다.


포병학교에 도착한 나는 즉시 출동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데리고 나갈 병력과 포를 끌 트럭이 없었다. 병력 3분의 2가 특별휴가차 떠난 것이 6월 24일 바로 어제였다. 남아있는 3분의 1 병력은 휴가를 가고 싶어도 갈 데가 없는 사병들과 몸이 아파 입실 중이던 사병들이었다.


차량은 또 어떤가. 수송관이 부평 병기창에 정비중인 차량을 인수하러 갔는데 돌아오지 않는다. ‘헝클어진 실은 급할 때 쓸 수 없다’더니 바로 그 꼴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 육군본부 계획에 의해 전후방 부대의 GMC트럭 50% 이상을 부평 병기창에 집결시켜 정비 중에 있었다. 특히 포병학교 포차는 70% 이상이 부평에 가 있었다. 우선적으로 정비하기 위해서였다. 트럭 10여대를 끌고 와야 할 수송관이 겨우 세대를 끌고 오후에야 도착했다. 분통이 터진 수송관은 화를 내며 부평 병기창 연병장에 정렬시켜 놓은 차량들이 타이어까지 구두약을 발라서 겉모양은 그럴싸하게 반짝반짝했으나 엔진과 주요부속품은 다 뽑혀있어서 시동조차 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수 십대의 차량 중에서 부속품을 수집해 간신히 세대를 끌고 온 것이었다.


부평에 집결시켜놓은 번지르르한 차량들은 대부분 회칠한 무덤들이었다. 기막힌 노릇이다. 원래 대전차포는 기동성이 생명이다. 사람, 포, 기동력이 삼위일체가 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차량은 다 부평 병기창에 가 있었고 사람과 포만 가지고 옛날 삼손이 맷돌 돌리듯 심한 고역을 겪고 있었다. 갑자기 전쟁이 발발하여 무비유환(無備有患)에 봉착하여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다.


청평으로 가서 8연대의 지시를 받으라는 명령만 받고 출동했다.......청평에 도착했을 때 경찰들이 와서 말하기를 “청평고개 부근까지 게릴라가 출몰하고 있습니다. 더는 못 갑니다. 가면 습격 받습니다.”하고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상황을 말해주었다. 여기서 진퇴양난으로 망설이고 있을 때 수 십대의 버스와 트럭들이 병력을 태우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오다가 멈춰 섰다. 1개 보병 대대였다.


대대장인 소령에게 현재 상황을 알려드리고 “같이 가서 싸우게 해 주십시오.” 했다. 그 대대장은 따라오라고 하더니 “나는 귀관 부대를 배속 받아 지휘하라는 명령을 받은 일이 없소. 그러니 귀관이 알아서 행동하시오. 분명히 말하지만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알아서 싸우시오”하는 것이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 연출된 것이다. 이리하여 가평 밤나무골까지 가서 보병대대는 좌측 야산에 나의 소대는 도로상에 배치했다.


밤중에 전투가 벌어졌다. 적정도 전혀 모르는 판이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5분도 안 되어 사격이 멈췄다. 새벽까지 조용했고 그 대대와 연락을 취할 수도 없었다. 아침이 되어 그 대대로 연락병을 보냈더니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아무 것도 없습니다.”했다. 그래서 청평 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이 있어서 “혹시 부대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못 봤소?”물었더니 서울 쪽으로 이동해가는 것을 봤습니다.“ 했다. 가평까지 왔다가 그냥 갈수는 없고 사격이라도 한번 해보고 후퇴해 간 것이었다.


그곳에서 허탕을 치고 철수하면서 피난민에게 적정을 물어보는 것이 유일한 정보수집 수단이었다. 가평군 현리 쪽에서 청평으로 피난민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오늘날 청평 검문소 부근) 체면불구하고 상황을 물어보았는데 대답인즉 “국군은 못 봤고요, 인민군은 봤어요.” 한다.


헛수고만 하고 다니다가 27일 삼각지 포병학교 연병장까지 왔다. 거기도 마찬가지 아무도 없었다. 명령과 지시를 받을  곳이 없었다.......


6월 27일 16시가 조금 지났다. 그 좁은 미아리 고개에는 카키복에 정모를 쓴 사람, 전투복에 정모를 쓴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미아리 고개 넘어 공동묘지까지 포탄이 떨어지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전투복을 입은 높은 사람(계급장도 없었다)으로 보이는 분에게 다가가서 “57밀리 대전차포 소대장 조주태 중위입니다. 포병학교에서 왔습니다. 어디로 가서 싸우면 되겠습니까?”하고 지시를 받으려 하는데 “뭐야 57밀리 대전차포? 그까짓 것 아무 소용도 없더라. 탱크를 쏘니까 끄떡도 안 하더라. 싸우고 싶거든 창동으로 가라 거기서 한번 싸워봐. 육탄공격이라도 해봐라”하였다.


창동 부근까지 달려가니 좌우측에 아군이 안 보였다. 아마 좌측 산에 배치되어있는 듯 했다. 57밀리 대전차포 2문을 배치하고 있는데 적 탱크 10여대가 굴러오는 것이 보였다. 즉시 전투준비, 사격태세를 갖췄다. 우리가 수령해온 포탄은 철갑탄보다 인마살상용 HE탄이 더 많았다. 탱크는 철갑탄으로 쏘고 따라오는 보병은 HE탄을 번갈아가며 쏴야한다.  탱크가 500미터 쯤 접근했을 때 급속사격을 가했다. 탱크가 멈춰 섰다. 흙먼지가 탱크를 덮었다. 파괴된 줄 알고 “소대장님. 적 탱크 파괴”하고 보고하였다. 흥분한 한 녀석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곧이어 “그 선두 탱크가 다시 굴러 옵니다.”라고 그 녀석은 외쳐댔다.


계속 명중탄을 퍼부어도 끄떡도 안 했다. “저 무쇠 덩어리를 무엇으로 부수나” 달걀로 바위치기다. 하는 수 없이 1키로미터 정도 후퇴해서 또 명중탄을 퍼부어도 끄떡도 안 했다. 오히려 기관총까지 쏘며 굴러왔다. “이 괴물을 무엇으로 처치하나” 절치부심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 속수무책이었다.


국군이 보유한 대전차무기라고는 이 57밀리 대전차포와 2.36인치 로켓포가 전부다. 두 가지 모두 탱크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아까 미아리 고개에서 높은 사람이 말한 그대로였다. 몇 번인가 진지변환을 반복하면서 그래도 파괴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결사적으로 대항했으나 헛수고였다.  끝내 적 탱크를 잡기는커녕 밀려서 미아리고개까지 후퇴하고 말았다.


캄캄한 밤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적 탱크는 미아리 고개 넘어 공동묘지 끝 굽은길(길음동)까지 접근해왔다. 거기서 미아리 고개 좌우측 봉우리에 전차포 사격을 퍼부었다. 야간이라 포탄은 돈암동 시가지로 날아가기도 했다.......


이 와중에 초라한 육군 중위 소대장 하나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미아리 고개에서 최후로 수류탄 던질만한 거리에서 57밀리 대전차포로 육탄공격을 하기 위해 위치선정을 하고 있는데 누가 앞에서 권총을 들이대고 “이 새끼. 너 명령 없이 후퇴했지?”하면서 쏘려고 했다. “아닙니다. 여기서 육탄공격을 하려고 위치선정을 하는 중입니다” “말이 많아. 이 새끼”하면서 권총을 들이대고 밀었다. 밀려가는데 뒤에서 또 누가 권총을 들이댔다.  앞뒤에서 밀리는 판이다. 잘못하면 세 사람이 죽거나 다칠 지경이다.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바에야 이판사판 수류탄을 터뜨릴까?’ 하다가 살짝 빠져나와 미아리 고개 오른쪽 봉우리로 도망쳐 피신했다.......


소대원 몇 명이 달려와서 하는 말이 “소대장님. 내려갑시다. 조금 전에 높은 사람들  다 떠나고 우리 소대만 남았습니다.”고 하였다. “그래 그러면 내려가야지”좌우 봉우리에 척후조를 보내 아군과의 접촉을 시도해 보았지만 아군이 없다는 보고였다.


고립무원의 우리 소대는 돈암동 전차종점까지 이동해서 길 양쪽에 2문의 직사포를 배치하여 사격태세를 갖추었다. 집중호우가 계속 쏟아지는 가운데 배고픔까지 겹쳐서 소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걱정이었다.


이때 앞에서 GMC 트럭 같은 물체가 오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군의 트럭이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그 물체에 접근하여 “어이! 너희들 몇 연대야?”하고 물었다. 그 당시는 연대 단위로 소속을 묻는 것이 관례였다. 별안간 따발총인지 카빈 소총인지는 몰라도 4정이 일제히 불을 토했다. 순식간에 열에 서있던 소대원들이 쓰러졌다.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사람 살리라고 절규하는 신음소리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아군이 오인사격을 한줄 알고 그 물체를 따라가며 “이놈들 소속을 대라”하고 고함을 질렀으나 그 물체는 서울 시내로 진입해 들어갔다. 진지로 되돌아오는데 또 하나의 물체가 나타났다. 뛰어가 보니 땅바닥에서 불똥이 튀고 있다. 무한궤도가 콘크리트 바닥에 마찰될 때 일어나는 불빛임을 직감했다. 칡넝쿨로 위장한 긴 포신도 보였다. 나는 즉시 그 자리에 엎드렸다. 다시 일어나는 순간 또 탱크가 나타났다. 아까 총을 난사하고 통과한 물체는 아군 트럭이 아니고 적 탱크였던 것이다. 세대의 탱크는 각각 1개 분대 이상의 병력을 싣고 있었다.


나는 신음하는 부하들을 점검했다. 대부분은 이미 숨을 거두었고 나머지는 중상자인데 살려달라고 절규하고 있었으나 출혈이 너무 심해 살려낼 가망이 없었다. 위생병도 없고 구호할 사람도 없었다. 생존자는 소대장인 나 한 사람  뿐이었다. 나는 정신없이 울고 있었다. 단 3초 전에 그 물체가 적 탱크인 줄 알았더라면 이러한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전쟁 3년 동안 사람이 불과 2-3초 앞에 일어날 일만 알 수 있다면  죽고 부상할 사람이 없었을 터인데 하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한탄했다.......


28일 새벽 1시가 조금 지났을 때 한강 쪽에서 밝은 섬광이 비치더니 땅이 진동하는 엄청나게 큰 폭발음이 들렸다. 폭격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신길동에 있는 탄약고가 폭발하는 것인지 심히 궁금하였다. 57밀리 대전차포의 노리쇠 뭉치를 뽑아들고 전사자들의 시신도 거두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미아리 고개 비극의 현장을 떠나야만 했다.


포병학교 교관 조주태 중위 <내가 달려온 세월 80년> p104-108


덧글

  • 비도승우 2010/10/05 19:49 # 삭제 답글

    불과 2-3초전에 일어날일만 알수있다면.. 이 부분이 너무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조주태중위라는 분 나중에 어찌되었는지 궁금하군요.이런분들덕에 지금 우리가 호사를 누리는듯 싶습니다.

    적어도 일끝나고 소주를 한잔할지 양주를 한잔할지 결정하는것도 정말이지 이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사치이고 호사라는 생각이듭니다. 선배들께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초전의 아군의 고전이 너무 생생해서 슬프네요..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금성천 2010/10/06 11:16 #

    조주태 중위는 전쟁중 1사단 15연대에 소속되어 대전차포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으로 전투를 치뤘고 1972년 주월 백마부대 작전부사단장, 1975년 56사단장, 1977년 국방대학원 부원장을 지낸 후 1980년 소장으로 예편했습니다. 1990년 베트남 선교협회를 창립한 후 현재 명예회장을 맡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변성고검 2010/10/07 02:40 # 삭제 답글

    선생님의 현리전투 관련 글과 즉결처분에 대한 글을 읽고나서 광팬인 된 일인입니다. 글에 감명받아서 중앙도서관 들어가서
    글을 읽다가 머리가 희끗하신 미부인을 뵈었답니다. 남편이 전사인지 실종인지 귀순인지 생사를 알기위해 어려운 책들을
    찾아가는 그 분을 뵙고 명예라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새삼 느꼈답니다.

    선생님의 글속에는 명예와 가치가 기록속에 남은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보입니다.

    힘이 모자란 것이 죄악이 아니라 동료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한 인간의 모습이 무엇보다 고귀하게 보입니다.

    선생님의 광팬으로서 아쉬운 점을 토로한다면 전투 요도 내지 그 반대의 시각을 기술해 주신다면
    더욱 더 기록적인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석산의 그들과 현리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다는..

  • 금성천 2010/10/07 11:30 #

    변성고검님. 정말 반갑습니다. 디코에서 님과 대화를 나눠본지 벌써 7-8년 된 것 같군요. 잘 지내셨죠?

    요도와 사진을 함께 올리고는 싶은데 아직 미숙한 점이 있어서요.

    항상 균형있는 시각을 유지하려고 합니다만 혹시 미흡한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요.

    변성고검님의 글도 계속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변성고검님. 다음엔 선생님이란 호칭 대신 그냥 닉으로 불러주세요.
  • 지브닉 2010/10/07 10:19 # 답글

    참..
  • 비도승우 2010/10/07 16:37 # 삭제 답글

    금성천님의 댓글 감사드립니다.날도 쌀쌀해지는데 감기조심하세요^^

    조주태님의 역정도 알게되어 감사합니다.^^하시는일 잘되시길 아울러 빕니다.
  • 행인1 2010/10/07 23:26 # 답글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잘 나타나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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