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현 소령 즉결처분사건 한국전쟁

7월 18일 02시를 기해 북한군 12사단은 국군 8사단 전 정면에 걸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이 공격으로 21연대에서는 1대대가 대대장의 잘못된 지휘조치로 인해 258고지에서 무단철수하면서 377고지의 2대대마저 연쇄적으로 철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21연대 1대대 장병들은 북한군의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진내전을 전개하면서 진지를 고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1대대장 윤태현 소령은 북한군의 소수병력이 대대 관측소 부근까지 접근하자 이를 격퇴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조급하게 철수명령을 하달하였다.

1대대 장병들은 진내에서 사투를 벌여 간신히 북한군의 제 1공격제대를 격퇴한 시점에서 철수명령을 하달받자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그 직후 258고지는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국군 8사단 방어진지 중앙에 돌파구가 형성됨으로써 사단 전체가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258고지에서 임의 철수한 21연대 1대대는 안심리의 250고지에 새 방어진지를 편성하였지만 이때에도 1대대장은 피탈된 258고지에서 북한군이 재편성하는 호기를 포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습을 포기한 채 소극적으로 방어에만 치중하였다.

사단에서는 작전실패와 명령불복종의 책임을 물어 1대대장 윤태현 소령을 엄중문책하고 연대 연락장교 조규영 소령을 후임 대대장으로 보임하였다.

21연대 1대대의 무단 철수는 곧바로 377고지를 방어하던 2대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2대대는 교촌동 능선을 따라 진지 정면으로 공격하는 북한군을 저지하는데는 일단 성공했지만 1대대의 258고지를 탈취한 북한군 일부 병력이 동쪽 계곡을 따라 309고지와 산법동으로 우회해 배후를 위협하면서 포위될 위기에 처하였다.

전황의 추이를 주시하던 연대장 김용배 중령은 방어선의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서 2대대에게 철수를 명령하였다.

1,2대대가 철수하자 지동리의 3대대도 연대의 방어선 조정에 따라 사단 공병대가 확보하고 있던 동촌동의 268고지로 물러났다.

지연작전이 결정적인 전투를 회피하는 작전이라고 하여 전투를 소극적이고 수세적으로만 한다면 주도권을 상실하여 항상 치명적인 피해를 자초하게 된다. 따라서 지휘관은 철수중에도 항상 적의 약점을 발견하고 이를 최대한 이용해 적극적인 공세행동을 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세행동을 취하여 공자의 전투효과를 감소시키고 그들의 추격을 지연시킬 수 있으며 적에게 큰 손실을 강요하여 주도권을 장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태현 소령은 예하 중대가 혼전의 와중에 있기는 했지만 점차 적을 격퇴하고 방어선을 회복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포위된 것으로 오판하여 철수명령을 내림으로써 사단 전체가 후퇴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6.25전쟁사 4권> p329-330,365


1대대장 윤태현 소령은 북괴군의 소수병력이 대대 관측소 부근까지 접근하자 이를 격퇴할 조치는 취하지 않고 조급하게 철수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때
그의 지휘하에 있던 4개 중대는 방어진지에서 분투하고 있었으나 그는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1대대 장병들은 진내에서 목숨을 건 싸움에 투지를 불태우면서 간신히 북괴군의 제 1공격제대를 격퇴한 시점에서 철수명령을 전달받자 일시에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258고지가 북괴군 수중에 떨어지고 국군 8사단 중앙에 돌파구가 형성됨으로써 8사단은 방어선이 붕괴될 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전투사 단양 의성전투>p92-97


대대장 윤태현 소령은 여기서도 큰 과실을 저지르고 있었다.

258고지의 전술적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우인접인 2대대가 진지를 견고히 지키고 있으니 병력을 수습하는 즉시로 포병지원을 유도하고 역습을 감행했어야 할 터인데 250고지를 확보하고 적의 계속침습에만 대처하는 소극적인 작전행동만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1대대장 윤태현 소령의 행위는 인접 대대 장병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사단 방어선의 정비를 서둘게 한 요인이 되었다. <한국전쟁사 3권> p335-336


7월 17일 저녁 영주 북쪽 안심동 능선에 구덩이가 하나 파져 있었고 그 옆에는 웬 청년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헌병이 카빈을 들고 있었구요. 곧 이어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그 청년은 호 속으로 쓰러졌습니다.

김용배 연대장 등 50여명의 장교와 사병들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연대 CP로 들어가더군요.

즉결처분을 받은 사람은 21연대 1대대장 윤태현 소령이었습니다. 나는 약 30미터 떨어진 내 개인호에서 이 광경을 보았어요. 내 직위(21연대 대전차포 소대장)가 연대 본부와는 직접 관련이 없었기에 총살의 이유는 잘 모르지만 수군수군하기는 윤소령의 즉결처분 이유에 대해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때는 연대의 3개 대대를 모두 일선에 배치했는데 윤 소령의 1대대는 몇 번인가 작전명령에 지시된 지점보다 뒤쪽에 배치되어 연대 참모들과 인접 대대장들의 불평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작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거예요. 송제근 중위(21연대 대전차포 소대장) <민족의 증언 1권>p409





                


덧글

  • JOSH 2010/10/12 11:23 # 답글

    뒤쪽 대전차포 소대장의 증언에서 나온 날짜가 앞에 나와 있는 사건이 벌어진 날짜와 차이가 있네요.
    뭐 사람들 기억으로야 하루이틀 착각이 있을 수 있겠지만
    편집자가 사건기록을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나 봅니다.
  • 금성천 2010/10/12 12:45 #

    한국전쟁사3권이 출간된 것은 1970년이고 민족의 증언이 출간 된 것은 1972년인데 어떻게 저런 착오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미연시의REAL 2010/10/12 15:06 # 답글

    예전부터 윤태현 소령건 관련해서 이야기해주신다는걸 이번에 듣게 되었군요^^
  • 금성천 2010/10/12 15:34 #

    사실 그리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위 이야기를 일본군 지원병 하사관 출신의 연대장이 광복군 출신 대대장을 눈에 가시로 여겨 즉결처분했다고 날조 왜곡하는 경우가 있어서 사실을 정리해 올린 것입니다.
  • 부자나라 2019/09/25 17:14 # 삭제

    금성천님
    본문은 사실과 다릅니다
    사실관계를 인정받은 내용이 따로 있습니다
    당시 살아있는 관계자들의 자료를 사실처럼 믿지 않길 바랍니다. (본문은 2019.09.25에 읽고 답글을 남깁니다)

    그 증거 중 몇을 언급하자면
    즉결처분권은 1950.07.26.0시 부여
    과거사 조사에서 즉결처분 시점은 1950.07.17입니다
    따라서 즉결처분이 아닌 살해이고요
    당시 연대장은 독립군 출신은 아니었습니다
    고윤태현소령은 우리나라 독립 전에 국내 투입작전을 위해 미국 CIA전신에서 폭파등 특수 훈련을 받은 전략 전술 전문가였습니다. 전쟁 당시 주변상황과 작전이해를 못했다고 판단할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 비도승우 2010/10/12 18:24 # 삭제 답글

    안타까운 역사의 단면중 하나입니다. 물론 군법이란것이 엄한것이고 전시에서의 즉결처분이야

    당연한것이기는 하지만 안타깝다는 느낌이 크네요.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일반사병들이 장교들에게

    시동을 꺼트렸다는 이유로,기타 걸그적 거린다는 이유로..등등 말도 안되는 명분으로 즉결처분당한것에

    비하면 매우 "정당하다"고 보입니다만..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 2010/10/13 04: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금성천 2010/10/13 10:06 #

    저의 진의를 정확하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안심동 2010/11/02 13:07 # 삭제 답글

    이상하다... 영주는 내 고향인데
    안심동이라는 지명은 첨 듣네요
  • 금성천 2010/11/02 16:08 #

    영주시 안정면 안심리라고 있던데요.^^
  • 찬스 2011/05/05 13:38 # 삭제 답글

    지동리전투의 참가한 사람의 아들로서 그때의 상황을 알고싶어 찿아보았으나 찿을수가없네요.
    혹시아시는지요
    지동리에서 8사단이 후퇴를할때 지동리를 사수하기위해 남은 3소대의 당시 송호면 특무상사로 소대장을 맡고
    전투를 하였다합니다.
    지금은 치매로 사경을 헤메고있지만 평생을 자부심으로 살아오셨답니디.
    그래서 그때를 기록한 것을 찿아봐도 없고해서....
    혹시 알고계신분 안계신가요....
    메일주소 kihei@naver.com
  • 갈천 2017/09/30 20:42 # 답글

    세상에. 그런데 이 윤태현 소령이 독립군 출신인지는 어떻게 알지요?
  • 금성천 2017/10/11 14:57 #

    한시준 교수<광복군연구>에 이름이 나옵니다.
  • 갈천 2017/10/12 14:40 # 답글

    한시준 교수<광복군연구>
    이분은 김구 숭배자이고 열렬한 민족지상주의자이군요. 허.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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