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원 장군 따르면 죽지 않는다 김석원 장군 이야기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목적은 적의 관측으로부터 나를 숨기거나 최소한으로 노출시켜 적의 화력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데 있다.


6.25 초기 김석원 장군께서 수도사단장으로 계셨을 시, 다른 사람이 관찰하니 사단장이 적탄이 난무하는 최전방으로 도보로 갈 때는 사단장이 제일 앞에 서고 다음이 전속부관 그 뒤에 미군 고문관이 일렬종대로 따르는 것을 보고 이상해서 미 고문관에게 문의하니 사단장이 가는 데로 따라가면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기 때문에 적 사격에 안전함으로 뒤따른다고 답변하였다.


이와 같이 사단장이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는 것은 일본군 시절 철저한 지형지물 이용 훈련과 전투에서 실전을 경험한 덕분으로 생각된다.

<남기고 싶은 훈련 이야기> 장석린 2005 p47


덧글

  • Dr.Nam 2011/02/10 08:27 # 삭제 답글

    제 사견으로는 한국전 당시 두 장년 장군(김홍일 김석원)의 조기 은퇴 및 후방 배치가 아쉽습니다.

    한 명은 중국 육대에서 미군 교리를 배운 중앙군 사단장 출신
    한 명은 일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일군 대대장출신... (교리야 어쨌든지 간에....)

    당시 한국육군에서 위 두 사람을 넘어설 정규 제대 지휘관 경험보유자는 없었을텐데.. 아쉬워요.
  • 금성천 2011/02/10 15:52 #

    저도 두 분이 좀 더 야전에서 활약하셨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에 대한 미군의 거부감이 심하더군요. 특히 김석원 장군에 대해서는 아주 경끼를 일으킬 정도로.

    미군의 거부감에다가 당시 군 실세였던 만주군계열(정일권, 김백일) 또한 빨리 영감님들을 내보내는 데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 비도승우 2011/02/10 22:56 # 삭제 답글

    저도 두분생각과 같습니다만.. 김석원 장군을 미군들이 싫어한 이유중에 하나가

    일본도 패용과 같은 구일본군적 비주얼이 강한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요?

    카이젤수염에 일본도패용에 어떤사진보니 화이바도 구일본군틱한것을 쓰고 계시던데..

    (그리고 상의는 일본군장교용 흰색셔츠같은것을 걸치고 미고문관과 지도보는..그런사진)

    솔직히 맹장형의 명장이지만 "일본물"이 심하게 드셨다는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런 "구일본군 스타일 비쥬얼"도 여러이해관계와 맞물려 미군들에게 안좋은평을 받았으리라 생각되네요..

    더군다나 "닥터리" 도 좋아하지 않았으니..
  • 금성천 2011/02/11 15:07 #

    화이바는 미군 것이고 장화는 일본군 시절 것 같던데......

    이형근이나 김용배 같은 젊은 지휘관들도 초기엔 일본군 망토에 칼 차고 다녀서 미군들이 질겁했다고 하죠.


    닥터리는 부하들이나 국민들에게 신망있는 김홍일, 김석원 두분을 그냥 야전에 기용하려고 하긴 했어요. 미군의 압력이 너무 커지다보니 물러섰지요.

    사실 전쟁 전 명태 사건 때문에 닥터리께서 김석원 장군에게 질릴만한(?) 일이 있었지요. 남북교역사건(일명 명태사건)에서 채병덕 총장과 갈등이 심할 때 신성모 장관의 중재로 그냥 화해했으면 되었을 것을 대통령 앞에서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고집 부리다 두 분 다 예편됐었습니다.

    이때 질렸는지 전쟁 발발 후 김석원 장군을 수도사단장으로 복귀 시킬 때 "명령에 복종하겠다"는 각서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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