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연대 3대대의 파주 위전리 대전차 육박전 한국전쟁

 


(1950년 6월 27일 오전 10시경) 치열했던 적 포탄이 잠시 뜸하면서 여기저기서 “적 전차가 나타났다“라는 고함 소리가 들려 나는 호 속에서 뛰어나와 북쪽 봉암리 쪽을 응시했다. 30여대의 적 전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우리 연대의 전면으로 돌진해오고 있었으며 그중에서 15대는 문산천 대안에서 횡대로 전개하고 있었고 15여대는 계속 돌진해 오고 있었다.


문산천에 전개한 적의 전차군은 엄호부대였는지 엄호 위치에 전개하자 일제히 사격을 집중하여 전사면에 구축됐던 연대진지는 모조리 파괴되고 말았다. 그 사격음과 작열음은 당시의 유행어로 “땅퐁”이라고 했다. “땅”하는 발사음과 함께 목표물에 맞는 소리가 “퐁”해서였다.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전차 접근로 상에 이미 57밀리 대전차포 6문과 2.36인치 로켓포를 추진시켜놓고 있어 저 정도의 전차는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미군이 그렇게 장담하고 교육시켰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선두 전차의 측방이 노출되는 순간 57밀리 대전차포탄이 연속적으로 명중해 섬광과 함께 먼지가 자욱이 일었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병사들은 호 속에서 뛰어나와 “전차가 파괴됐다”라고 감격의 환성을 올렸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먼지가 걷히면서 적의 전차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툭툭 털고 머리를 내밀며 57밀리 대전차포에 집중타를 가하자 대전차포는 그 자리에서 곤두박질하고 파괴되지 않는가. 적의 전차는 장애물인 대전차포가 제거되면서 연대 진지에 기관총을 휘두르며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이에 숨을 죽이고 있던 2.36인치 로켓포가 포문을 열고 연속타를 가했으나 적 전차는 마치 코끼리가 벌에 쏘인 듯 전진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그대로 연대 진지로 계속 돌진해 왔다.


이때였다. 갑자기 “와”하는 함성 소리가 둔전동 쪽에서 울려 퍼지며 70여명의 장병들이 전차를 향해 일제히 돌진하는 장렬한 광경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어쩌자고 맨 몸으로 철갑 탱크 앞으로 달려드는가!”하는 괴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적은 예상치 못했던 아군 장병들이 떼를 지어 돌격하자 접근을 막아보려고 단말마적으로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몸부림쳤으나 때가 늦었다. 일부 병사들은 이미 전차에 기어 올라가 포탑으로 수류탄을 집어넣었고 어떤 병사들은 포탑이 열리지 않자 길게 뻗은 포구에 수류탄을 넣으려고 포신에 동동 매달리고 있었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어떤 병사는 전차의 취약점인 눈(잠망경)을 막아버리기 위해 진흙을 준비했다가 적 전차에 뛰어올라 잠망경에 진흙을 문질러 적의 전차는 방향을 잃고 야생마처럼 날뛰었다고 한다.


병사들이 벌떼 같이 적 전차에 오르자 전차병들은 포탑을 급선회시켜 일부 병사들은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또 호 속에 있던 어떤 병사는 자기 호를 파괴하기 위해 적 전차가 타고 앉아 비벼대고 통과하자 뛰어나가 전차 후면에 수류탄 공격을 하기도 했다.


이 사이에 연락장교 마 중위(이름을 잊음)가 105밀리 곡사포를 혈전장으로 유도하여 마치 직사포식으로 적의 전차를 직접 사격하여 1~2대의 전차가 파괴되기도 하였다.


이같은 육탄 공격으로 도합 8대의 전차가 파괴 또는 화염에 휩싸이고 나머지는 문산천을 향해 도주해 버렸다. 실로 김선일 대위, 전일수 소위, 김종록 이등상사를 비롯해 40여명의 고귀한 희생자를 내고 얻은 값진 대가였다.


국방부 공간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무쌍하게 사지에 뛰어든 전투의지와 책임감, 그리고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대항한 군인정신은 찬란하게 역사에 기록되었으니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고.


이 전투에서 내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적이 남침하기 훨씬 전부터 육군본부에서는 인민군이 소련제 T34전차를 장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고서도 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즉 미국에 요구할 수 있는 것(전차, 대전차장비)은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비책은 세워두었어야 했던 것이다. 한 구덩이의 대전차호도 파지 않고 심지어 57밀리 대전차포에 훈련탄(대전차용 철갑탄은 지급하지 않음)만 지급했으니 이 같은 점에 대해서는 당시의 작전지도부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장비의 부족을 육탄으로 메우려 한 처사에 대해 전선 지휘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작전지도부는 새삼 뉘우쳐야 할 것이다. 당시의 실상을 분석해본다면 연대의 희생자 40명에 비해 적 전차 8대 파괴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값비싼 대가였다.


육탄특공대란 인간과 인간의 싸움에서 모든 전술과 기계(奇計)를 써도 안 될 때 비로소 대를 살리기 위해 소를 희생(그것도 지원자로서의 생환을 전제조건으로)시키는 수단이라고 하나 전술교범에는 없는 인간 최후의 비인간적 방법이다.


하물며 인간 대 무쇠덩어리(전차)의 대결은 절대 금해야 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이번 전투의 경우 용감하기로 정평이 있는 최병순 대대장이 자신도 육탄 돌입했다가 적의 전차가 포탑을 급선회하는 바람에 허리에 강타를 맞고 떨어져 부상을 입기도 했다.


어쨌든 적을 알고도 대책을 세우지 못한 상부와 나에게 재삼 그 책임이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전후에 틈을 쪼개어 당시의 격전지를 찾아 산화한 김 대위와 부하들의 명복을 빌 때마다 늘 자책감이 앞서 몸 바를 모르게 한다.

15연대장 최영희 <전쟁의 현장>77-79




덧글

  • 비도승우 2011/04/08 16:39 # 삭제 답글

    연달아 또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잠망경에 진흙은 매우 소름돋네요..어릴적에 전차육탄공격시 페인트를 잠망경에 부어버리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초등학교5년무렵 6.25 방화같은것을 보다 떠오른.--)그런데 진흙이라..

    임기응변이지만 구일본군의 대전차전술보다 오히려 뛰어난 부분이라고 봅니다.물론 슬픈역사이지만요.

    미군이 2차대전후 적국병기노획후 이런저런 성능테스트를 한것으로 알고있는데

    소련도 가상적국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시점에 T-34의 성능이나 관통테스트를 했을텐데

    57mm가 한국에 지급되있었다는게 아이러니하군요.이승만의 북침의지를 막으려고 좋은무기를 안준다 치고

    국군정보통에서 제시하던 T-34 적보유를 안맏어서 그런거라치면 국군내부에서나마 하다못해 대전차 지뢰구입이나

    미국이외 국가에서라도 대전차무기구입시도가 있었어야 한다고 봅니다.이스라엘이 그랬듯

    2차대전이후라 국제시장에 굴러다니는 무기는 어마어마했으니 말이죠. 물론 신성모같은 양반이

    국방장관에 채병덕같은 인간이 육참총장인 현실에 그런걸 기대하는건 너무 사치기는 하지요..

    슬픈대전차전투이지만 진흙의 임기응변은 영화의 한장면에 오마쥬되어도 뭉클할법합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어느정도 전차공포증이 해소된 7월이후 적전차격파시 아군보병들은

    포구에 수류탄을 까넣는 방식을 많이 애용했다고 하더군요. 어릴적 노인정에 한문배우러다닐때

    한국전쟁 참전용사셨던 선생님할배도 그런이야기를 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 금성천 2011/04/11 17:31 #

    그 당시 미군들은 57밀리 대전차포나 2.36인치 로켓포로 T34를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확신했던 것 같아요.

    마치 현재 우리가 TOW로 북한군 전차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듯이요.

    사실 2차대전 기록을 보면 57밀리 대전차포나 2.36인치 로켓포가 그리 확실한 대전차무기가 아닌 걸 알 수 있는데도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