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과 미네르바 그 책 그 구절

 

약 10분 후에 전태일이 내려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김개남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눈짓을 하여 그를 사람이 좀 덜 다니는 옆 골목으로 끌고 갔다.


“아무래도 누구 한 사람 죽어야 될 모양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김개남에게 성냥불을 켜서 자신의 몸에 갖다 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전날 저녁에 김개남은 전태일이 내일 “누구 한 사람 죽는 것처럼 쇼를 한판 벌려서 저놈들 정신을 번쩍 들게 하자”고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었다.


성냥불을 켜서 갖다 대어 달라는 전태일의 부탁이 심각하였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긴 했으나 “설마.......”하는 생각에 그는 성냥불을 켜서 전태일의 옷에 갖다 대었다. 순간 전태일의 옷 위로 불길이 확 치솟았다. 친구들 보고 먼저 내려가라고 한 뒤 그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한 되 가량의 석유를 온 몸에 끼얹고 내려왔던 것이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갔다.


그는 몇 마디 구호를 짐승처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입으로 화염이 확확 들이 찼던 것인지 나중 말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 소리로 변하였다.


때마침 그 자리에 있던 한 회원이 근로기준법 책을 전태일의 불길 속에 집어 던졌다. 이렇게 하여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은 이루어졌던 것이다.


쓰러진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은 약 3분가량 타고 있었는데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여 아무도 불을 끌 엄두를 못 내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뛰어와서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잠바를 벗어서 불길을 덮었다.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 1983 p227-228



오래 전에 읽었던 전태일 평전은 내가 본  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책의 하나이다. 이 책 끝부분에 있던 저 부분을 읽으며 욕설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서점에서 새로나온 전태일 평전이 있어서 보았더니 저 부분을 묘하게 바꾸어 놓았다. 마치 전태일의 몸에 저절로 불이 붙은 것처럼. 그냥 사실대로 누가 불을 붙여주었는지 기록하는게 좋지 않을까?




미네르바 박씨는 “어느 날 한 20대가 면회를 신청해
‘당신이 여기서 자살하면 이명박 정권 붕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하더니 또 다른 청년이 찾아와 ‘당신이 십자가를 져 달라’ ‘열사가 돼 달라’는 말로 내 죽음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도 같은 조직에 속한 사람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을 바꿔가며 몇 차례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며 ‘미네르바의 자살’을 고리로 어떤 시나리오를 그려놓은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1.3.7



덧글

  • 나그네 2011/06/11 16:53 # 답글

    전태일은 분신'자살'을 한게 아니라 촉탁승락살인을 당한거군요. 내용대로라면 김개남은 촉탁승락살인, 최소한 자살방조를 한 셈인데요.....
  • 금성천 2011/06/13 10:12 #

    너무 무섭고 끔찍하여 저런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까지 생겼는데 당시 비슷한 시기에 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은 저 부분에 대해 그리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어요.

    21세기에도 사람을 희생시켜 열사를 만들어내려는 인간들이 있는 것 같아 무섭습니다.
  • 나그네 2011/06/15 01:34 #

    소위 길로틴의 휴머니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걸요. 자기들 나름의 휴머니즘(?)에 대해 논하고 있는걸 보자면 정말 후덜덜합니다.
  • 대원군 2014/01/03 11:31 #

    길로틴의 휴머니티라니.. 그런 주장을 대놓고 하거나 은연중에 하는, 정신빠진 자도 있었나요? 그게 누군지 비밀글로 귀띔 좀 주시길.. 상당히 소름돋는군요.
  • 2011/06/14 17:2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금성천 2011/06/14 17:47 #

    으윽. 조변님이 그런 이유로 까였습니까? 저도 묵념.
  • 2014/01/03 11:3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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