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개전시 방어계획에 의한 후방 사단의 전선 투입 한국전쟁

 

북한군 남침 직후 후방사단의 전선투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채병덕 육군참모총장과 김백일 부장의  즉흥적이고 독단적 결정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1950년 3월 육군본부가 준비해둔 “작전명령38호”에 따른 정상적인 방어계획의 집행이었다.


나아가 미군사고문단도 이 같은 육군본부의 방어계획을 인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이 계획의 입안과정에서 적절한 자문을 했을 것이다.


Robert K. Sawyer가 쓴 주한미군사고문단사(Militery Advisors in Korea: KMAG in Peace and War)는 개전 초 상황을 이렇게 적고있다.


공격이 필시 전면공격일 것이란 사실을 인지한 즉시 주한미군사고문단 참모들은 몇 개월 전 수립된 방어계획의 실행을 한국인들에게 권고하였다. 이는 옹진반도에서의 철수, 임진강 서쪽 부대의 남안으로의 철수, 남부의 예비사단들을 북진시켜 반격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군 총참모장인 채병덕 소장이 동의했고 그의 참모들은 즉각 사단들에 대한 경보에 착수했다.


즉 옹진 17연대의 철수, 1사단의 임진강 방어, 후방 예비 3개 사단의 반격작전은 모두 수개월 전 작성된 방어계획에 의한 것이었고 분명 KMAG 요원들의 자문에 기초해 확립된 계획이었다. 당연히 한국군 사단장들의 협의를 거쳐 작성된 것이었다.


이로서 개전초기 채병덕 총장, 김백일 부장의 전쟁지휘는 준비된 방어계획에 입각해 미군사고문단의 자문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나는 연소하고 경험이 없어 채병덕 총장이 시키는 대로 했다. 당시 방어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 장창국 육본 작전국장과 자기도 참여하여 수립한 방어계획이 금시초문인 것처럼 적군에 대한 저지 방안 없이 "우리 부대부터는 한강 남안에서 방어해야한다"고 한 이형근 2사단장의 주장은 자신들의 과오를 떠넘기기 위한 책임회피의 변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6.25 초전기의 작전국장이었던 장창국은 줄곧 방어계획의 실재를 부정해왔고 그 전임이었던 강문봉은 신태영 육참총장의 지시에 의해 자신이 직접 작성한 방어계획이 있음을 주장했다. 1982년 육본 군사연구실에서 방어계획문서<육본 작전명령 38호>이 발견되자 장창국은 인계받은 일이 없다고 했다. 문서가 발견되기 전까지 두 사람의 상반된 주장은 한국전쟁 연구자들의 미스테리였다.)



참고자료   정병준 <한국전쟁> p 698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연구경향 및 사료해제>p169

             <한국전비사> 중권





핑백

  • 금성천의 한국전쟁사 : 이형근 장군은 정말 6.25 첫날 한강 방어를 주장했을까? 2012-09-14 16:28:44 #

    ... 6.25 개전시 방어계획에 의한 후방 사단의 전선 투입</a> <a name="[문서의 처음]"></a>나는 이형근 장군의 6.25 첫날 회고록 부분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결과를 보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6.25 첫날 육군본부에서 한강선방어를 제안했다는 그의 주장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인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의 한강선 방어 주장이 거짓이라는 첫 번째 근거는 그의 회고록이다. 관련 부분을 자 ... more

덧글

  • 나그네 2011/06/15 01:19 # 답글

    오호 그렇군요. 사전 방어계획이라는 게 있었군요. 왜 찾아볼 생각을 못했을까?;;;;
    작전명령 38호를 보면 채총장의 행동에 좀 더 이해가 가는 면이 있네요. - 유군단장님도 그렇고 채 총장님도 그렇고 금성천님 덕분에 한국장성들을 새로운 측면에서 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작전명령도 그렇고 이승만 대통령의 서울사수 명령도 그렇고 정치적 고려까지 포함하면 채총장님의 운신의 폭이 넓지는 않았을 것 같고 지금이야 사후적으로 검토하는거지만 당시로서는 전황파악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겠다고도 생각이 됩니다만 최소한 6월26일 원로회의 이후에라도 한강저지선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작전을 변경했던게 타당하지 않았을까요? 뭐 어차피 현실에서는 인민군이 3일이나 한강도하를 지체해서 큰 차이는 없었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일국의 참모총장인데 사전방어계획이 있다해도 그 정도의 전략적 임기응변은 있어야 겠다고 하면 지나친 기대일까요?
    아무래도 저로서는 전쟁발발당시의 참모총장으로 계셨던 것이 좀 아쉬운 분이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드네요.
    p.s 사전 방어계획을 숙지했다는 전제에서 오리발 내미신 장창국님이나 은근히 채총장쪽을 통적분자로 몰아간 이형근님이나 좀 충격적입니다.
  • 금성천 2011/06/15 15:53 #

    예. 나그네님의 한국전 초기작전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전쟁 첫날 오전에 미리 준비된 방어계획에 따라 후방사단을 전선에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혀 문제 삼을 것이 아닙니다.

    후방사단들이 얼마나 신속히 전선에 투입되어 적을 저지하는데 도움이 되느냐가 문제였는데 육본은 25일 오전 8시에 이미 후방사단에 대해 출동 대기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있던 2사단의 1개 대대가 의정부에 도착한 것이 25일 밤 8시-10시였다고 하니까 상당히 늦은 편입니다. 게다가 2사단장 이형근 장군이 상식 밖의 지휘를 하는 바람에 의정부를 조기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기 작전이 엉망이 된 것은 채병덕 총장의 탓보다는 이형근 2사단장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올리겠습니다.
  • 2011/06/15 08:5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6/15 08:5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금성천 2011/06/15 16:09 #

    제가 한국전쟁 발발 직전부터 전쟁 개시 2일째까지의 이형근 회고록을 정밀분석(?)해본 결과 이형근 장군의 언행에 관한
    10대 미스터리가 나오더라구요.
  • 리산 2011/06/15 09:44 # 삭제 답글

    개인적으로 생각컨데, 장창국 육본 작전국장은 6월 10일 취임을 하였고, 인수인계가 확실하지 않아서,
    작전명령에 대한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육사졸업생> 참조
  • 금성천 2011/06/15 16:33 #

    만일 장창국 작전국장이 전임 강문봉 국장으로부터 방어계획에 관한 인수인계를 받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세계 군대역사상 희대의 사건이겠죠. 저는 아무리 신임 국장이어도 방어계획의 존재를 몰랐을 수가 없다고 봅니다.

    참모총장과 참모부장에게 작전상의 과오가 있다면 작전참모였던 자신도 그 과오에서 비켜갈 수 없는 없는 것인데 저로서는 참 씁쓸한 느낌입니다.

    저 <육사졸업생>에서도 자신은 육사생도들의 전장 투입을 반대했던 것으로 기술했지만 나중에는 박경석 장군에게 사실을 실토했죠.
  • 용뿔 2011/06/15 17:36 # 삭제 답글

    한때 채병덕총장이 초기 작전수행이나 특히 한강교폭파등을 보고 '저사람 혹시 남로당원 아닌가?' 할정도로 비판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문제는 채총장 혼자의 문제가 아니었던듯 합니다. 사전계획짜면 뭘하나요..,휘하 부대장들이 죄 바보들인데;; 은근히 채총장은 이래저래 타 야전군 사단장들로부터 무시당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출신이 지원병과여서 그랬을까요? 채총장의 최후도 사실 일국의 참모총장까지 지낸 사람치고는 너무 어이없는 죽음이 아닌가 합니다.
  • 금성천 2011/06/15 18:00 #

    전쟁 전까지 채병덕 총장은 부하들로부터도 상당히 평이 좋았어요. 초기 패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또 하동전투에서 일찍 전사하는 바람에 온갖 책임전가와 비방을 받고 있는 거죠.

    초기 작전에서 대부분의 사단장들과 연대장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봅니다. 다만 모 사단장과 모 연대장은 반드시 책임을 물었어야 하는 데 그 사단장이 평생에 걸쳐 채병덕 총장을 가장 비난해댔죠.

  • 비도승우 2011/06/15 22:57 # 삭제 답글

    제가알기로는 작전명령38호는 "매우 추상적인 계획" 이었다는 겁니다.

    단순히 "남부지역의 사단동원 반격" 이 주요골자이자 전부일뿐 D-몆일부터

    병력을 어떻게 동원해서 어떤방법으로 수송하고 물자/탄약보급 문제등의 디테일이 결여된

    작전이라는거죠. 솔직히 신생한국군의 무장력이 북한에비해 많이 떨어졌어도 춘천대첩같은 사례만보더라도

    잘준비된 상태에서 전투에 임할때는 초전에도 선방에 훌륭하게 성공하는 사례들이 있었죠.

    채병덕이나 한두명의 무능이 문제가 아닌 애초부터 방어와 전쟁에 대한 개념자체가 모두들 결여되어있던것 같습니다.

  • 금성천 2011/06/16 12:01 #

    예. 작전명령 38호는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습니다.

    사단별로 경계진지전투, 주저항선전투, 최후저항선전투를 하다가 후방사단을 동원해서 반격한다는 정도였고 작성된 시점이 50년 3월 말. 또 이에 의거해 각 사단별로 방어계획이 작성된 것이 5월경이니까 제대로 연습도 못해보고 전쟁이 터진거죠.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