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전투 2사단의 축차투입 한국전쟁

 

많은 사람들이 채병덕 총장이 축차투입 시킨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무모한 축차투입을 한 사람은 이형근 2사단장이다.


이형근 장군은 당시의 축차투입이 마치 채병덕 총장의 명령인 듯 책임을 미루고 있으나 제 3자들의 증언과 비교하여 보면 그의 주장은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6일 아침 의정부에서 2사단 참모장 최창언 대령을 만났다. 그는 일본 육사 56기 해당생으로 (이형근 사단장과)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인데 그가 "지휘다운 지휘를 할 수 없다. 이형근 사단장이 도착한 대대마다 자신이 직접 공격 명령을 하달해 버려 이곳에는 사령부뿐이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최 대령은 “후속하는 대대가 도착하면 포천을 향하여 공격한다”고 결의를 표명했으며 “이것은 명령이므로”라고 체념한 듯이 말했다.

<한국전비사> 중권p 350



그 현장을 보고 있었던 전방지휘소장 강문봉 대령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부대는 1개 열차에 2개 중대에서 1개 대대씩 분승하여 축차 창동역에 도착했다. 그때 통일적인 전투가입을 주창한 이형근 준장인지라 부대의 집중이 끝난 다음 전투에 참가할 것을 명령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형근 사단장은 부대가 도착 되는대로 전투가입을 명해서 결국 갈아 없앤 것 같이 보였다. 그러한 현상을 육본에 보고했더니 달려온 채병덕 총장은 창동역에서 지휘중인 이형근 준장을 보고 ‘나는 축석령을 확보한 후 반격하라고 말한 것이지 축차 전투에 투입하라는 명령을 하달한 기억이 없다. 전술의 초보도 모르는 애숭이가 대들기만 하다니......’라고 힐난했다” 그 중에는 병사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말채찍으로 마구 때렸다고 말해준 장군도 있었다.

<한국전비사> 중권 p416-417



2사단 16연대장 문용채 대령은 제 1대대만을 이끌고 26일 04시 창동역에 하차하여 즉시 도보행군으로 북상했다고 한다. 문용채 연대장은 이형근 사단장으로부터 “즉시 전진하여 축석령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때 연대장은 “얼마 있으면 또 대대가 도착하여 올 것이므로 전 부대를 장악하여 전진하고 싶다”고 간청했으나 “시간이 없다”고 엄명했다고 한다.

<6.25 전쟁사 2권> p372



김병휘 25연대장이 이형근 사단장에게 2개 대대를 이끌고 왔다고 보고하니 “5연대가 우측에 3연대가 좌측에 있는데 둘 다 위험하니 양 대대를 각각 5, 3연대에 배속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연대장인데 대대를 다 남의 연대에 주고나면 저는 무얼 합니까?“하니 ”참, 그렇군. 여하튼 빨리 데려와라“고 하였다.

<육군대학 사이트 한국전쟁사>



이때 옆에 있던 어떤 장군은 “채병덕 총장은 전황을 보고하려 한 이형근 준장을 보자마자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고 주먹이 올라갈 것만 같았다”고 그 분위기를 이야기하여 주었다. 채병덕 총장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나는 그러한 반격을 명령한 기억이 없다. 속히 일부 병력으로 축석령을 확보하고 사단 주력이 모이면 반격하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차례차례 병력을 투입하여 닳아 없앤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책임을 져라. 1개 대대씩 투입한다는 것은 평소의 언동과 다르고 전술의 상식 밖이다. 여기서 해임한다. 부대는 즉시 유재흥 준장에게 지휘 시킨다”

<한국전비사> 중권p411



출처 한국전 비사, 한국전쟁사, 육군대학 한국전쟁사


핑백

덧글

  • shift 2011/06/22 11:43 # 답글

    채병덕이 억울한 면도 있겠네요.
  • 금성천 2011/06/22 11:59 #

    많이 억울한 면이 있죠. 이형근의 책임전가는 해도해도 너무 했어요.
  • Real 2011/06/22 13:00 # 답글

    군수감보다 못한 포병과 장교의 비사가 밝혀진 것이군요.
  • 금성천 2011/06/22 14:05 #

    사실 이형근 장군의 언행 모순에 대해서는 일본 방위대학교수 사사끼가 1970년대 중반 <한국전비사>에서 많이 밝혀놓았습니다.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이형근 장군의 위상이 너무 높다보니 군 자체에서 대놓고 비판을 못한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도 1979년인가 국방부 전사편찬위가 펴낸 한국전쟁사 개정판1권 같은 책은 약간의 힌트를 살짝 담아놓기는 한 것 같습니다.

    2002년 이형근 장군 돌아가신 후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그에 관한 비판이 들어간 서적이나 논문이 나오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또 답답한 것은 이형근 장군을 비판하면, 왜 채병덕을 옹호하느냐 하는 어이없는 항의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 Real 2011/06/22 14:18 #

    기본적으로 한국군의 치부나 실패는 숨기려는 권위주의 문제가 한몫을 하는게 아닌가 싶군요. 이형근이 죽고 나서 조심스레 나온다는게 뭘 의미하는지 뻔한거니까요. 당장의 현리전투에 대한 연구만 해도 이를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 금성천 2011/06/22 15:18 #

    또 하나 생각나는 문제는 심지어 군출신 전문 연구자들 중에도 아직까지 이형근 장군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분들의 책들 보면 아주 답답하죠.
  • 윤민혁 2011/06/22 19:30 # 답글

    이 정도면 뭐... (먼산)

    이래서야 이형근 장군이 주장한 10대 의혹도 일부 항목은 새 안경을 쓰고 볼 필요가 약간 생길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뭐, 일단 기본적으로 축차투입 명령에 고의적 이적행위 가능성을 제기한 제7항은 더더욱요. (먼산)
  • 금성천 2011/06/23 10:03 #

    전쟁 당일 이형근 장군의 행적을 보면 사보타지로 보일 정도의 일들이 있죠.

    정상 상황이라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극형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형근 장군 자체의 10대(?) 의혹을 따져보고 있습니다. ^&^::
  • 번동아제 2011/06/22 20:59 # 답글

    실상 이 문제는 육본작명 91호와 축차 투입의 연관 여부, 육군총참모장의 5연대2대대에 대한 공격 명령을 축차 투입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 5연대 2대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대의 축차 투입의 책임 귀속 문제 등 완전히 분리가 가능한 별개의 논점이 있습니다. 이 세가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논의의 초점이 너무 흐려집니다.

    사실 26일 오전 8시를 공격 개시 시간으로 명시한 육본작명 91호는 채병덕 총참모장의 주장처럼 축차 투입을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할 여지가 많습니다. 26일 오전 8시면 5연대뿐 아니라 16연대 병력까지 도착할 시간이니 충분히 2사단이 작전 가능한 시점이었으니까요. (채총장이 자신이 축차 투입을 명령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 것은 이걸 의미하는 것임)

    하지만 채총참모장은 이와 별개로 5연대 2대대장에게 직접 공격 명령을 하달했고, 이 명령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검토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5연대 2대대의 투입에 대해서는 채총참모장도 발을 깊게 담근 것이 사실이죠.

    또한 이형근 장군은 이미 여러 경로로 전술 원칙과 맞지 않게 결과적으로 자신이 병력을 축차 투입해 버렸다는 사실도 반복적으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원래 포천 역습에 대해 축차 투입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이 5연대 2대대장에게 직접 공격 명령을 내려버리고, 유재흥 7사단장도 3연대(연대장이 이형근 장군 친동생)에 대한 지원 차원에서라도 조기 공격을 권유해 결국 5연대 2대대의 공격에 동의해 버렸다는 거죠.

    물론 채총장은 5연대 2대대 외에는 직접 공격을 지시한 사실이 없으므로 그 외 2사단 예하 대대들의 축차 투입에 대해선 2사단장의 책임 영역으로 귀속됩니다. 문제는 2사단장이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면서 작명 91호 자체만 놓고 축차 투입이라고 비판해 왔다는 점이겠죠.

  • 금성천 2011/06/23 10:22 #

    번동아제님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부분도 있고 의견이 달라서 참 오래도록 평행선이 유지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이형근 회고록이나 6.25증언록 등을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서 읽다보면 이형근 장군의 주장들이 온통 허위와 기만, 책임전가와 자기합리화로 가득 차 있다는 겁니다. 그는 초전에 지휘관으로서 성실하지 않았고 정직하지도 않았습니다.

    축석령 선점 실패와 마구잡이 축차투입도 따지고 보면 이형근 장군 스스로의 준비부족, 태만, 불성실, 무능에 기인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엔 없습니다.

    의견이 다소 다를지라도 번동아제님의 의견에 대해서는 관심 갖고 읽어보겠습니다. 요즘 올리고 있는 이형근 장군 비판 시리즈(?)는 전에 디코에도 대부분 올렸던 글들입니다. 이견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 번동아제 2011/06/24 12:10 #

    제 의견은 2사단장의 실수도 있지만 1) 육본의 지휘 조처에도 상당한 문제점이 있고, 2) 육본의 역습작전에 집착하다 역설적으로 축석령 방어 태세가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3) 9연대의 조치에도 허점이 많아 2사단 지휘부에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금성천님은 의견은 축석령 붕괴 과정 자체만 보자면 오히려 2사단장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인데...

    팩트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겠지만...지금 논쟁이 되는 부분 중의 핵심은 평가에 해당하는 부분이라서 의견 차이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하고 있습니다.

    평소 금성천님이 올리신 포스팅은 잘 보고 있습니다. 사실 6.25 전쟁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관심을 분들은 많지 않은 터라 이 곳에서 금성천님이 평소 이 분야에 대해 좋은 글들을 자주 올려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번동아제 2011/06/24 12:33 #

    2사단장 L 장군의 회고록이 자기 합리화로 가득차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사실 2사단장 뿐만 아니고 작전국의 J 장군 증언, 의정부 지구를 책임진 U 장군의 회고록도 자기 합리화로 가득차 있습니다. 각각의 증언 사이에 모순도 많아서 선택을 해야할 경우에는 부담이 커지죠.

    그리고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경감하기 위한 의도적 위증 여부를 떠나 6.25 전쟁 개전시간 등 가장 기본적인 팩트에 대해서조차 관련자들의 증언이 엇갈릴 정도이니 어려움이 가중됩니다. 사실 그래서 전쟁사는 기본적으로 작명과 전투상보 등 보다 공식적인 자료로 뼈대를 먼저 잡고 증언은 선택적으로 이용해야하는데 6.25 초전의 경우 공식기록조차도 부실해서 이렇게 복잡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겠죠.

    되돌아보면 문제는 L장군조차도 초전 혼란상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타인(그것도 전사해서 변명이 불가능한 사람)에게만 전적으로 책임을 전가했다는 대목 같습니다. 6.25 초전 대응 부실은 기본적으로 명백한 전력 열세라는 기본 토대 위에 대전차 급조 대응책의 미비, 비상경계령 해제에 따른 병력 동원 지연과 이에 따른 각 제대의 건제 달성 실패, 주요 직위자의 지휘 부실 크게 봐서 네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장군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었으니, 이제 자신이 똑같은 방식으로 비평을 당하는 것이겠지요.




  • 금성천 2011/06/24 15:08 #

    사실 적의 주공이 집중되었던 포천-의정부 축선에서는 우리 군의 허점과 실수가 더 두드러져 보이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좀 더 과감하고 솔직하게 파헤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에 대한 토론들도 필요할 것 같구요. 예를 들어 9연대장의 조치에 관해서 등.

    회고록이란게 업적은 더욱 돋보이게 과오는 축소하거나 생략해버리는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이 L장군(?) 경우에는 지나치게 심했어요. 특히 전쟁 발발 보름 전부터 발발 2일째까지의 이야기는요. 자세히 보면 아! 이 부분은 이걸 감추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구나. 이 부분은 이래서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이 부분은 이런 식으로 떠넘기는구나 하는 것이 뻔히 보이니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꾸며낸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니까 제가 좀 흥분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비도승우 2011/06/22 22:30 # 삭제 답글

    디코에서 뵙던 윤민혁님에 번동아제님까지 출격하신걸보니 "이형근의 과오"문제가 "

    가히 뜨거운감자군요..병력이 충분하거나 혹은 적을 압도하는 어떤유무형적 요소가있을때

    부대를 나눠공격투입하는건 "제파전술"이지만 이형근의 과오로 말그대로 압도적인 인민군화력앞에

    우리국군을 "할부판매"하듯 내몬현실에 치가떨립니다.작고하신 친할아버지 께서 당시 헌병총사령부에서

    대위로 근무하셨는데 "멍청한 윗대가리들때매 죽어나가기싫어 탈영하다 즉결처분되는 병사들이 제일불쌍했다"


    고 아버님께 말씀하셨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제가태어나기이미전에 돌아가셔서..)

    그나마 채병덕은 사세보항에서 중포장교로 근무한적이 있어서인지 "높은지점을 선점하는게 유리"하다는

    "초보적인 군사상식"에선 이형근 보다는 나았던것 같습니다.--;;

    금성천님의 글들을 통해 알게된 어마어마한 진실들속에서 이정도면 이제 "이형근 음모론"혹은 "이형근 고첩론"까지

    대두할 기세입니다..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이형근..그는 누구인가 그의 10대미스테리"가 들어날 지경이군요..
  • 번동아제 2011/06/23 02:09 #

    "2사단장도 사실상 축차 투입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팩트에 대해서만 동의할 뿐입니다. 이러한 2사단장의 축차 투입 조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이고, 이 문제를 채 총참모장의 책임 문제와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저는 생각이 180도로 다릅니다.

    순수하게 2사단의 축차 투입에 자체에 대한 평가는 채 총참모장 vs 이 2사단장 책임 논쟁에서 처음으로 총참모장 편을 들어준 선구적인 연구자이자 지금도 총참모장 옹호론의 몸통이라고 할만한 일본의 6.25 전쟁 연구가 사사키의 주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현상적으로는 (2사단장의 조치는) 분명히 축차적 병력의 투입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축석령을 확실히 확보하기 위하여 부대를 증파했을 뿐이다." (사사키 한국전비사 번역본 기준 중권 p418)

  • 재팔 2011/06/22 23:30 # 답글

    포병 선배 닦다가 자기가 닦이고 있군요;;
    이 논쟁하곤 상관없지만, 이형근 장군과 저 한국전 비사의 저자는 대륙 타통 작전 참가 경험이 있지요;;
  • 에드워디안 2011/06/22 23:57 #

    대륙타통작전... 참으로 웅대한(?) 구상이었죠...ㄷㄷ
  • 금성천 2011/06/23 10:27 #

    사사끼는 한국전비사중 김홍일 장군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시절 대륙에서 김장군과 적으로 맞섰던 시기를 회고하더군요.
  • 행인1 2011/06/22 23:44 # 답글

    채병덕 장군이 하동에서 전사하지 않고 살아남았더라면 이 문제는 또 어떻게 기억되었을런지...
  • 금성천 2011/06/23 10:28 #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해올 겁니다.
  • 천지화랑 2011/06/22 23:57 # 답글

    허허허 안그래도 예전에 채병덕 씹는 포스팅으로 이오공감 간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형근에게 이런 문제가;;;;

    한국전비사를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 금성천 2011/06/23 10:32 #

    창군기와 한국전 초기전투에 대한 정리와 해설이 잘 되어있고 공간사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간행될 가치가 충분한 책이지만 새로 나온다해도 과연 구입해 읽어볼 분들이 몇이나 될지. 헌책방에서라도 꼭 구입하셔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KittyHawk 2011/06/23 00:21 # 답글

    결국 채병덕 장군이 너무 일찍 죽는 바람에 책임 문제에 관한 논의와 관련해 방해가 되었다고 봐야 하는 걸까요?;;
  • 금성천 2011/06/23 10:35 #

    채병덕 장군이 조금 더 살았더라면 "채병덕이 축차투입 시켜서 병력을 다 소모했다"라던지 "채병덕이 한강다리 끊으라고 하고 저만 도망갔다"라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 청천벽력 2011/06/23 09:07 # 답글

    축차투입이 병가의 금물이라는건 누구나 다 아는데...

    왜 동서고금의 많은 지휘관들이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뭔가 이익이 있나요?
  • 천지화랑 2011/06/23 10:28 #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는거죠.
  • 캥거루 2011/06/23 10:31 # 삭제

    축차투입은 대부분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전쟁에는 변수가 많으므로 한가지 원칙에 맹종하는 것도 자충수에 지나지 않죠.

    전력을 집중해 싸우는 게 유리하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지만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거나 정치, 경제적인 영향이 큰 중요 거점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예비 전력이 대응할 시간을 벌기 위해 준비된 소수의 병력부터 우선적으로 투입할 수밖에 없는 경우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전술적으로도 전력 낭비를 막기 위해 병력이나 장비를 제파식으로 운용할 수도 있고 승리를 위해 최대한의 전력을 예비부대로 확보하기 위해 일선에 투입되는 전력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죠. 예비전력을 확보하라는 것 역시 축차 투입을 피하라는 것 못지않게 중시되는 원칙입니다.

    만약 싸움도 없이 내준 거점이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면.. 그 장군은 축차 투입을 피했다는 칭송을 받게 될까요? 우선 적전 도주자 취급을 면하는 게 급선무일 정도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축차 투입 운운하는 평가들 역시 대부분 미묘한 차이를 놓고 결과에 따라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비슷한 전술을 사용했어도 타이밍이 맞아 적이 흐트러진 태세를 바로잡기 전에 치고 들어가거나 원군이 무사히 도착하면 훌륭한 전술이고 타이밍이 어긋나 실패하면 축차투입이라는 말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 금성천 2011/06/23 10:44 #

    축차투입은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다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지만 전쟁을 하다보면 피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에 투입된 미군의 오산 스미스대대, 천안 34연대, 대전 24사단 다 전형적인 축차투입입니다만 이를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 거야 2011/06/23 13:44 # 삭제

    위에서 왜 밀리냐고 질문 나오면 골치아프죠.

    자리보존도 못할테고...

  • 남극탐험 2011/06/23 16:40 # 답글

    음...이게 새로 밝혀진 사실인건가요?
    제가 읽었던 6.25전쟁사에선 전쟁 초기에 채병덕이 군 원로위원들을 모셔놓고 축차투입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무려 채찍을 휘두르면서-
    읽었었는데 말이죠.
    물론 군 원로들은 축차투입은 안된다고 했었고요.

    음...이전에 알려진 것과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나보죠?
    ...그럼 대체 제가 아는 그 회의의 회의록은 누가 작성했던 걸까요...ㄱ-;

    아참, 저는 이 부분을 "국방일보"에서 읽었었습니다. 그것도 아마 한국전쟁사였던 거 같은데...아닌가;
  • 재팔 2011/06/23 18:04 #

    그 부분은 축차투입이 아니라, 한강 이북 방어냐, 이남 방어냐 아닙니까?
    이범석, 김홍일, 김석원, 이응준 등은 한강 이남 방어를 적극 지지했었죠 ㅎㅎ
  • 남극탐험 2011/06/23 18:18 #

    아, 그 내용이었나보군요...
    벌써 2년전에 읽은거라 제가 일이 일어난 순서에 대한 기억이 잘못되었나봅니다.
    말씀 듣고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원로들은 전략적 후퇴를 제안했고 채총장은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옹진반도 사수, 음...네.
  • 초딩 2011/07/04 18:13 # 답글

    금성천님 이하 모든분들의 식견에 높이 감탄.
    하지만 자료의 깊이는 인정하겠으나,포괄적 상황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1)사사끼의 한국전비사는 일인의 입장에서 일본군과 만군(일부)에 우호적.일부자료는 주관성이 가미됨
    2)채병덕과 이형근의 감정싸움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안.
    이형근을 무시하고 예하 대대를 직접 지시하고,보직해임이 수차 언급되었으며,이형근도 축차명령의
    말미에 "상부의 명령이다'라고 언급한 점
    3)강문봉보고(0145~0200)->채병덕의 한강교통과 및 폭파시점(0220~0230)
    그리고 6/26부터 최창식에 부여한 임무/책임일체에 대한 생전의 채병덕 변명
    신성모와 채병덕의 정치적발언에 비해 채병덕은 용산에서 의정부까지 수차 왕복하는등
    (그래서 강문봉보고시 코골며 잤다는 말도 있음)엄청난 과로인 점을 고려할때 정상적인 판단/지휘가
    어려웠을 것이며,그의 증언에 신뢰도는 의심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사끼 주장'미국의 정치적 책임'과 우리나라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책임이 엄청 컸음은 말할 필요도 없고
    다만 엄청난 전사자와 수많은 포로(특히 아직 북에서 고생한다는...)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지만

  • 금성천 2011/07/05 11:17 #

    사사끼가 일본군 만군 출신에 우호적인 면도 있으나 광복군 출신에 우호적인 면도 있으며 일본 육사 출신에게 냉소적인 기술도 있습니다.

    그의 기술은 우리 공간사보다도 객관적이고 냉정한 면이 있습니다.(외국인이라 당시 생존인물에 대해 눈치 볼 일이 적어서 그런 듯)

    위 본문은 채병덕의 증언이 아니라 제3자들의 증언입니다.
  • 초딩 2011/07/04 18:22 # 답글

    채병덕총장은 전사아니해도 과로사했을거라고 동정심은 가지만,
    그의 무모한 발언에 대한 후유증,한강교폭파시 후퇴병력과 민간인에 대한 무대책,
    최창식에 대한 생존시의 변명등을 감안하면 동정론은 절대로 안될말씀.
  • 초딩 2011/07/04 18:27 # 답글

    강문봉의 보고를 접수후 시점부터 한강교 통과 또는 폭파시점을 볼때
    채병덕은 내뺀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 s2 2013/07/09 10:44 # 삭제 답글

    축차투입 문제가 이형근 준장의 책임이라 치고 해임 이후의 문제까지도 이준장의 책임인가요?
  • 이형근병신새끼 2013/08/19 18:37 # 삭제 답글

    이형근 병신새끼 후손은 지금까지도 이형근 떠받들고 후빨러 짓거리나 하고 있겠지요
    이형근 병신새끼가 빨리 되졌어야 했는데...
    어쩌면 한국군이 좀 더 버틸수 있었는데 아쉽네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