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병덕 참모총장과 유재흥 7사단장의 문답 한국전쟁

 

6월 26일 새벽 1시, 7사단 사령부에서는 채병덕 참모총장, 유재흥 7사단장, 이형근 2사단장, 강문봉, 이용문 대령이 모여 작전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기갑연대 제3장갑중대장 박용실 대위는 이렇게 회고했다.


주먹밥을 먹으면서 채병덕 총장이 유재흥 사단장에게 “적이 의정부를 빼았으면 문산 방면으로 빠질 염려가 없을까? 개성으로 남침하는 병력과 합류하여 서울의 다른 곳을 공격할 것 같지 않느냐”고 하자 “있습니다.”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질문과 대답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육군독립기갑연대사> 한남전우회 p97



디코가 닫히기 직전에 올렸던 글이다. 채병덕 총장과 유재흥 사단장의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들의 의견을 알고 싶었으나 2건 정도의 의견만 올라오고 그만 닫히고 말았다.


채병덕 총장과 유재흥 사단장의 대화는 무슨 뜻일까? 


덧글

  • 곰돌군 2011/07/12 13:38 # 답글

    궂이 도봉과 수락 사이의 협로로 진공해 오는 것보다 문산 파주 고양으로 이어지는 얕은 구릉과 개활지가 계속되는 곳으로

    주력을 집중할것을 생각한게 아닐까요? 뭐 실제로는 한차례 미아리에서 격퇴한것 빼고는 그냥 쭉쭉 밀렸지만서도..

    그게 아니라면 한강 하구를 도하해서 반면 포위나 후방 강습을 시도할 거라고 생각한건지.. 세월이 지난 지금은 무슨 의미인지

    알 도리가 없네요.
  • 금성천 2011/07/12 17:23 #

    곰돌군님 의견은 저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견해로 생각됩니다.

    제가 디코에서 저 문답의 의미를 물었을 때 두 사람이 댓글 달기를 "채병덕이 공황에 빠져 헛소리를 하고있다"고 하여 실망스럽고 전혀 공감하지를 못했습니다.

    구어체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기에 처음 보면 저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갑니다. 육참총장의 질문에 유재흥 장군이 즉각 대답한 것을 보면 그는 이게 무슨 뜻이지 이해를 했다는 것이죠.
  • 캥거루 2011/07/12 17:40 # 삭제 답글

    우선 1사단을 협공해 측면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개성 방면에서 침공한 군대와 합류해 전열을 정비한 다음 서울을 목표로 할 가능성을 거론한 게 아니라면.. 의정부 쪽으로 병력을 집중하는 동안 문산쪽으로 우회해 치고 들어올 가능성을 걱정한 거겠죠.

    7사단 예하 병력이 진지에 틀어막혀 저항하는 사이 남쪽으로 뚫고 내려간 병력 때문에 포병도 도망쳐 버리고 보급품도 끊겨 이도저도 못하다가 퇴각한 전쟁 첫날의 양상을 경험한 직후니까요... 그런 걱정도 할 법한 것 아니겠습니까.
  • 금성천 2011/07/12 17:55 #

    그렇죠. 캥거루님의 의견이 거의 맞는 말씀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 Dr.Nam 2011/07/13 15:58 # 삭제

    전투지경선을 봤을때 문산 방면의 11연대와 의정부 축선의 1연대와는 큰 간극이 있으므로 의정부가 뚫려 아군이 창동선에서 저지한다 할 지라도 오히려 북괴가 국군 방어주력(수경사, 7사단, 2, 5,사단) 병력을 창동전선에 고착화시키고 북한산 북쪽의 장흥 - 송추방면으로 우회하여 11연대 방어선인 임진강-파평산의 후방 및 1사단 본부 (파주국민학교) 의 측면 또는 후방을 공격하여 치명적 타격 또는 괴멸시킨후 독립문 - 무악재 방면으로 집입하는 시나리오를 그린 것이 아닐까요.

    만약 이 시나리오가 진행된다면 아군 서울 지역 방어선의 후방은 적에게 바로 노출되고 김포반도 지역 위험해 지니까요.

    제가 너무 늦은 뒷북 (답글) 을.....ㅋㅋ
  • 금성천 2011/07/13 17:31 #

    전쟁이란게 장기나 바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 어려운 수 싸움이란게 느껴집니다.

    다행히 송추 쪽으로의 우회는 없었지만 만약 기동력 좋은 북한군이 그 방향으로 우회했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죠.

    그래서 채 총장이 기를 쓰고 의정부를 오래 지키려 했지만 저 시간 의정부의 관문인 축석령은 못난 지휘관 놈들의 도주와 태만으로 이미 개방된 상태.

    요즘 세상 사람들은 채병덕 총장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않고 저능아라고 비웃지만 저 대화를 보면 부하들이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변수를 예측해야 했던 참모총장의 고뇌가 보입니다.

  • 재팔 2011/07/12 19:23 # 답글

    살아있는 그 분한테 묻고 싶군요 ㅎㅎ 유 장군은 공간사 증언에서 저거에 대한 건 한마디도 안남겼습니까??
  • 금성천 2011/07/13 10:44 #

    저 글 처음 보았을 때는 무슨 소린가 했어요. 다시 읽어보니까

    채병덕 총장은 의정부를 상실하게 될 경우 북한군이 우회하여 서울을 공격할 경우를 걱정한 것이죠.

    의정부에서 서울로 이르는 길은 세가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의정부-도봉동-창동-수유리-미아리가 있지만 의정부-송추-연신내-녹번동-무악재가 있고 의정부-306보충대-퇴계원-태릉-중랑교-청량리도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군은 의정부 점령 후 4사단으로 하여금 창동-미아리로 공격해왔고 3사단으로 하여금 퇴계원-중랑교로 진출해 왔습니다

    채총장은 북한군 3,4사단이 의정부 점령 후 일부라도 송추로 우회하여 우리 1사단의 후방을 차단 또는 섬멸한 후 개성으로부터 오는 1,6사단과 합류하여 서울의 다른 방향(예를 들면 문산-삼송리-연신내-녹번동 또는 문산-수색-마포 성산-서대문)으로 공격해 오지 않을까 염려한 것입니다.

    전선에 배치되어 있던 병력도 부족하고 한강 이북의 예비대격인 수경사 병력도 부족한데 도봉동-창동 방면이라면 그런대로 후방에서 오는 병력을 집중시켜 적의 공격을 지연시킬 수 있지만 북한군이 우회하게 되면 더 막을 방법이 없어지는 걸 염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 글을 읽고
    채총장은 의정부 방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구나.
    참모총장, 사단장은 중대장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신경써야 하는구나. 그런데 왜 박 중대장은 그때는 몰랐다 하더라도 수십년 지난 후까지도 저 대화의 의미를 몰랐을까?
    방어자는 공격자에 비해 전투지역을 대비하는데 있어서 참 불리하구나.(주공이 어디로 올지 모르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11/07/13 13:30 # 삭제 답글

    통상 공격과 방어부대의 전투력은 3:1일때 승산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 1연대 정면은 연천에서 출발한 적 4사단과 107기계화연대이고,9연대 정면은 철원에서 내려온
    적 3사단과 109기계화연대이므로 전투력은 비슷하다고 볼수 있겠고,
    승리의 핵심은 적 전차방어와 지휘관의 작전술에 달렸다고 하겠는데...

    1)의정부지역에서는 대전차방어 노력/공훈 사례가 보이질 않으며(아군 패전요인)
    2)유재흥장군의 지휘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북괴군의 고급지휘관들도 경험부족이라 기묘한 작전지휘는 기대(?)하기 어렵고 그저 작전지역을 준수하느라 창동-미아리 주공은 4사단.태릉-중랑교 조공은 3사단으로 변함없이 진행되었으며,그당시 한강이남은 민간봉기지역으로 위임했는지 서울점령이후 지체하였으나 서울점령은 최상의 목표였으므로 최단축선 창동-미아리를 포기하고 구파발로 우회한다는건 거의 가능성없는 예측이나,방어입장에선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였으니.
    채총장은 여름날 우측으로 삐딱한 찦차로 부지런히 의정부를 왕래하며 윗글에서 볼수 있듯이 작전참모부가 행할 작전구상도 일선에서 시행한걸 보면서 상당한 노력을 행한 동정심도 가는데...

    유장군은 이형근의 반발심(이범석을 포함한 군 원로들이 한강방어선을 주장함에 동의할 정도로 주관이 있어야 가능함)도 없고 반격작전(시기.부대운영.후퇴로 판단 등)의 작전복안도 없는 그야말로 명령이행의 복창(YES MAN)만 한걸로 생각됩니다.

    예를들면 사단장 부임이 엊그제라지만 전방사단으로서 예비연대를 온양에 방치한 채로 (부지확보 지체 이유) 부대이동을 7월로 계속 연기만 했는데, 9연대본부를 포천방면으로 진출과 25연대를 금오리로 이동시키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육본의 많은 장교단이 의정부축선에 투입되었는데도 지휘부(참모부 포함)의 주야 교대 또는 통신시설 미비에 상응하는
    하급제대와의 연락반 편성등의 지휘모습이 없어 보입니다.
    (이건 언어소통이 어려워서 참모/예하 지휘관에게 모든걸 위임이나 한거 처럼 보일정도)

    의정부와 창동전투는 유재흥의 지휘아래 (그 당시에는 영관장교를 지휘관으로 편성된 사령부도 상당히 많았던 걸로 보입니다.
    무슨 무슨 토벌사령부 등.그리고 의정부 전투사령부.창동방어사.미아리 전투사를 편성하고 이응준.이형근사단을 포함하였으니) 공과 실은 모두 유재흥의 업적이라 하겠는데 도저히 유재흥의 노력은 보이질 않습니다.
    여타 많은글에서 의정부패전의 요인을 다른 이유로 거론하는데,저는 유재흥장군의 책임이라 밑습니다.

    용장밑에 약졸없다고 사령관의 지휘모습이 보이질 않으니 의정부에서도.덕천에서도.현리에서도 장군이나 영관급 지휘관이나
    이등병이나 36계전술만 구사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위 3차례의 전투는 그 모습이 판박이 입니다.
  • 금성천 2011/07/13 15:09 #

    자주 들려 주십시요.
  • 초딩 2011/07/13 20:56 # 삭제 답글

    금성천님 글에는 각종 자료를 근거로 한 평범치 않은 내용이 많아서 보다 정확한 공부를 하게 되고
    그래서 재미로 보는 개그시리즈가 아닌 다큐의 느낌을 갖게됩니다.

    윗 부분에 비전문가로서 앞. 뒤 정황만의 묘사를 하였는데 의견을 달리하시는 부분이 있을겁니다.
    수정보완 설명을 부탁드리며,

    또 한가지
    이형근장군에 대한 보직해임 언급이 있었던걸로 아는데
    1)2사단에 대한 지휘권이 변동이 있었는가?
    2)의정부전투사령관 등 지휘권 변동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 금성천 2011/07/14 15:22 #

    윗글 딩님이 초딩님입니까? 제가 요즘 좀 바빠서 몸도 피로하고 정신도 맑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실관계라던가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의 여유가 생기는대로 제 의견 달도록 하겠습니다.
  • s2 2013/06/06 11:41 # 삭제 답글

    뒷늦게 이 글을 보고 글을 올립니다만..

    박용실 중대장의 모르겠다는 말은 우문의 우답에 대해 어이없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일단 채 총장은 서울 고수를 위해 적이 바보짓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음(적의 정면에서 측면을 스스로 노출시키는)을 심정적으로 내뱉은 것이고 유 사단장은 거기에 그 또한 그러기를 바라며(자신의 전투정면에서 타 관할로 적 주공이 알아서 피해서 가주는) 깊은 생각없이 호응해 준 것일 겁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