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전사한 상관에게 떠넘긴다-육사생도대 투입 한국전쟁

 

채병덕 참모총장은 포천 방면 방어에 육사 생도 1기를 투입하라고 명령했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지만 채 총장의 이 지시에는 따를 수 없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본관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본관은 일본육사생도였습니다만 패전일로를 치닫고 있던 일본군부도 결코 사관생도를 내보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이런 판국에 어떻게 할 작정이오? 묘안이 있으면 말하시오.” 채 총장의 목소리는 분노에 차 있었다.


나는 육사에 있는 사관생도들을 빨리 한강 이남으로 철수시키자고 말했다. 그러나 채 총장은 “수도 서울이 함락 직전에 놓였는데 생도라고 뺄 수는 없지 않소. 며칠이라도 교육 받은 생도들이 전혀 경험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소. 비교적 안전한 광릉 쪽에 배치하시오.”라고 명령한 뒤 상황실을 나가는 것이 아닌가.

<육사 졸업생> 육본 작전국장 000 중앙일보사 p331






육군사관학교 30년사(1978.1.1발행) 124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육군참모총장 채병덕 소장은 가용병력을 검토한 끝에 육사생도대를 포천에서 퇴계원에 이르는 3번 도로에 투입하여 그곳 일대를 방어하게 했다. 이때 육본 작전국장이던 000 대령은 자신이 일본 육사생도로 있던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패전을 눈앞에 두고서도 사관생도들을 동원치 않았던 사례를 들어 반대했으나 채 총장의 분노만 사고 말았다” 육군사관학교 50년사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러나 위 두 기록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내가 직접 확인했다.


채병덕 총장이 이준식 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은 6월 25일 11시에서 12시 사이로 확인 되었다. 그때까지도 작전국장 000대령은 육군본부에 출근조차 하지 못했다.


위 기록 외에 중앙일보사에서 1984년에 출간된  육사졸업생에도 그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그 기록에 의문을 갖고 000 예비역 장군 작고(作故) 5년 전인 1991년 가을에 직접 면접하여 사실과 전혀 다름을 확인한 바 있다. 그는 ‘도의적 책임을 느낀 나머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와전됐다’고 말했다.

<육사생도 2기> 박경석 p75


덧글

  • B군 2011/07/19 17:54 # 답글

    Aㅏ.........

    이 유명한 이야기가 도시전설이었다니요.......orz

    그렇죠, 채병덕 총장 자신이 일본 육사 출신인데 저랬다는게 개인적으로 잘 이해가 안갔었습니다;
  • 윤민혁 2011/07/20 00:04 #

    ... 본문은 "채병덕이 장XX대령 출근 전에 이미 육사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걸 명확히 하고 있는데요. (...)
  • 윤민혁 2011/07/20 00:08 #

    아무리 봐도 도시전설인 건 "육사생도 투입 명령을 누가 했냐"가 아니라 "누가 육사생도 투입 명령에 대놓고 반발했나"쪽이라고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 이야기는 훨씬 심각한 얘기가 되죠. 하지도 않은 일로 자기 명성 높이려고 들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요. 뭐, 저기 붙은 해명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한 건데 어느새 내가 한 얘기가 됐더라"라는 식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 금성천 2011/07/20 10:40 #

    육사생도의 전장투입이 비난을 받으니까 아예 픽션까지 만들어 내서 책임전가를 한거죠. 자기 자신의 전쟁 첫날 12시 출근도 희석시킬 겸.

    작전국장이란 자가 이사를 해서 전화가설이 안 되었으면 정확한 약도라도 제출해 놓았어야죠. 도대체 10시 넘어도 육본에 들어오지를 않아 헌병이 아현동에 가서 스피커 방송으로 찾아내야 할 정도였으니.

    또 초기작전이 비난을 받으니까 "나는 연소하고 경험이 없어 참모총장과 참모부장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 당시 방어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라는 무책임한 소리나 하고 있고.

    000장군이 그나마 죽기 전에 저 정도 고백한 것도 다행입니다.

  • 재팔 2011/07/19 18:16 # 답글

    모든 책임은 말을 할 수 없는 죽은 사람에게...
  • 청천벽력 2011/07/19 21:48 #

    어떤 의미에서 '죽은자는 말이없다...' 는 거네요.
  • 행인1 2011/07/19 23:16 # 답글

    역시나 죽은 사람만 억울하군요.
  • 금성천 2011/07/20 11:21 #

    한국전비사에서 사사끼가 말하죠. '죽은자는 말이 없다'거나 '일찍 죽으면 손해다'라는 말이 있는데 채병덕 총장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사사끼가 보기에도 죽은 참모총장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일부 장군들의 증언(?)이 한심하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 해색주 2011/07/19 23:30 # 답글

    다른 것은 몰라도 일제군이 칭찬받을 만한 건, 패망에도 절대 졸업하지 않은 생도대들은 전장으로 내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대규모 장교를 일시에 소집할 수 있는 학군단이라는 제도가 있으므로, 적어도 2개 기수 정도(2개 학번)는 유사시 소대장으로 전방에 뿌릴 수 있지요.
  • 재팔 2011/07/20 08:41 #

    졸업 앞 당겨 내보낸 적은 있지요 ㅎㅎ
  • 슈타인호프 2011/07/19 23:42 # 답글

    금성천님, 이 포스트의 작성 의도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금성천님께서는 이 포스팅을 통해 어떤 점을 비판하고자 하신 것인지요?

    1. 생도대 투입의 책임을 상관인 채병덕 총장에게 덮어씌운 작전국 모 대령의 거짓 증언
    2. 채병덕이 생도대 투입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그렇다고 알려진 것에 대한 사실의 교정

    금성천님의 글이 단순히 모 대령의 태도를 비판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알려진 사실 자체를 부인하시는 것인지 솔직히 판단이 가지 않습니다. 명확히 하셨는데도 제가 이해를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그 점을 명확히 해주셨으면 해서 리플 드립니다.
  • 금성천 2011/07/20 11:22 #

    당연히 1번이죠. 이번 글 올릴 때 제 의견을 같이 올릴까 하다가 그냥 자료 제시나 하자고 했는데 읽는 분들 입장에서는 다소 아리송해 보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슈타인호프님 질문을 받고 보니 제가 혹시 무조건적인 채병덕 총장 옹호자나 채병덕빠로 비쳐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듭니다. ^ ^

    이형근 장군이나 000장군이나 자기들의 과오는 감추고 참모총장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가 지나치게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린 글입니다.
  • 슈타인호프 2011/07/20 17:55 #

    휴, 다행입니다. 솔직히 저도 1번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뜻밖에 리플 다신 분들의 대세가 2번이어서요.

    금성천님이 설마 이런 주장을 하실 분은 아닐텐데...하면서 바짝 긴장했었습니다^^;;;
  • 금성천 2011/07/20 18:24 #

    아이구. 명확하게 제 의견도 쓸 것을 그랬습니다.

    사실 저 문제에 대해 아직도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0국장이 10시쯤 육본에 도착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자기도 생도대의 투입에 동의해 놓고 저런 소리를 한 것인지 아니면 박경석 장군 이야기대로 출근도 하지않은 상태에 일어난 일에 대해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인지. 어떤 경우이던 괘씸하단 생각이 듭니다.

    책임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책임 회피를 위하여 저런 엉터리 이야기를 만들어내니까 공간사나 공식적인 기록들도 의심을 해가면서 봐야 하고...... 참 씁쓸합니다.
  • 소드피시 2011/07/20 11:34 # 답글

    아, 이게 도시전설이었다니. 놀랍네요.
  • 금성천 2011/07/20 12:55 #

    일본 육사 후배들이 저런 이야기까지 만들어내서 자기들만 빠져나갈 줄이야......
  • 2011/07/20 12:1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금성천 2011/07/21 12:14 #

    그런 식으로 뒤집어 씌운다는 게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도저히 이해하기 못할 정도로.
  • 비도승우 2011/07/20 21:05 # 삭제 답글

    아무리 죽은자는 말이없다지만..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래서 전쟁에서는 끝까지 살아남고 볼일인가봅니다.
  • 금성천 2011/07/21 12:56 #

    신성모 국방장관은 자기가 명령한 한강교 폭파의 책임을 채병덕, 최창식에게 떠넘기고 2사단장과 작전국장은 자기들의 과오를 감추려고 픽션까지 만들어가며 초기 작전의 모든 책임을 죽은 상관 채병덕에게 떠넘기고.

    도망친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큰 소리 뻥뻥 치며 올라와서는 밤새 팔짱 끼고 적군을 기다린 사단장, 10시 넘어서 육본에 들어온 국장, 가족 데리고 내뺀 김포지구 전투사령관 같은 자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그냥 넘어가고 "이게 다 채병덕 탓이다"라고 하면 정답으로 되는 그런 엉터리 패전 분석이 일반 대중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 중에도 있으니 답답한 일입니다.



    비도승우님. 말씀 나온 김에 "지휘관은 모름지기 살아야 하느니라"에 관한 이야기 조만간 올리렵니다.

  • Dr.Nam 2011/07/21 13:36 # 삭제 답글

    생각보다 한국전 초기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보다는 육군총참모장 채병덕에게 몰아붙이는 경향이 많죠.
    모든 초기 상황이 공간사 보다는 각 개인의 회고록, 증언을 토대로 이뤄지고 있는 한국전 초기전쟁사의
    허점때문이 아닐까요.

    분명 채병덕 총장은 10만 군대를 이끌기에는 군사적 경험과 전술, 전략적 경험이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강교 폭파, 의정부-창동-미아리 지구 전투, 육사생도대 투입등의 과오를 모두 한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 금성천 2011/07/21 15:12 #

    회고록은 말할 것도 없고 공간사 자체도 저런 분들의 증언(?)이 여과 없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죠.

    회고록을 읽을 때는
    1. 그 기술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는가?
    2. 그 기술이 3자의 관찰 및 증언과도 부합하는가?
    3. 그 주장이 상식적 합리적 사고에서 용인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인가?
    등을 따져 봅니다.

    솔직하고 자세하여 공간사만으로는 알기 힘든 이야기들이 실린 회고록들도 있지만 온통 거짓말과 책임전가로 뒤덮힌 책들도 있죠. 대표적인 예가 L모 대장 회고록과 계인주 회고록입니다. 읽고 나면 속된 말로 꼭지가 돌고 뚜껑이 열릴 정도입니다.

    초기작전의 모든 문제점의 원인을 육참총장 한 사람에게만 뒤집어 씌우면 간단하고 편하기는 하겠지만 진짜 전쟁사의 교훈을 배우는 것은 멀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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