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장을 질책한 센 연대장들 한국전쟁

 

함병선 연대장은 철저한 국가관을 갖춘 청년장교로서 구국일념으로 전투를 지휘했다. 연대장의 복무방침은 충성이었으며 후퇴를 불용하는 고집쟁이였다.


때로는 흥분하고 분에 못 이겨, 후퇴하는 자에게 “너는 역적이다. 너의 상관은 전투에서 죽어 가는데 어떻게 너만 살겠다고 후퇴하는가?”하면서 즉결처분했다.


성격이 급해서 부대 선두에서 지휘하기도 하고 부연대장 김봉철 중령에게 “연대 본부에서 무엇 하느냐”고 하면서 기합을 주기도 했다.


김종오 사단장에게도 지휘를 잘 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제2연대가 철수하지 않고 고수하고 있는데 제19연대가 사전 협조도 없이 철수해 2연대의 전선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질 때 사단장에게 항의 제19연대장을 똑똑히 지휘하라고 했다.

2연대 인사과 사병계 일등중사 김준배 <6.25전쟁 참전자 증언록> p160-161




비학산 공격시 좌측 일선은 17연대가, 우측 일선은 1연대를 주공으로 하여 105밀리 1개 포대의 화력지원을 받으며 공격을 개시했다.


1연대는 17연대보다 공격 진출이 순조로워 포사격의 지원을 받으며 비학산 8부 능선까지 진출했을 때 갑자기 포의 화력지원이 중단되었다.


포사격의 중단 이유를 알아본 즉 17연대의 진출 속도가 늦어져 1연대를 지원하던 105밀리 포는 17연대 쪽으로 돌리고 17연대를 지원하던 두꺼비포를 1연대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105밀리 포의 지원을 받으며 순조롭게 공격하던 1연대의 공격은 자연히 돈좌될 수밖에 없었다. 1연대장 한신 중령은 비학산 밑에 있는 관측소에서 지휘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돌변하자 갑자기 나보고 따라오라고 하더니 경주 모 초등학교에 있는 사단본부로 갔다. 당시 사단 참모장은 이형근 장군의 동생인 이상근 대령이었다.


한신 연대장은 참모장의 “무슨 일이냐?”고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참모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곧바로 사단장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나도 뒤따랐다.


한신 중령은 권총을 뽑아들고 “수도사단이 17연대의 사단이냐? 공격 중에 화력지원을 전환해도 되는 거냐? 이런 법이 있느냐?”고 항의를 했다. 사단장은 대답도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뒤따라온 참모장과 내가 연대장을 진정시켜 총을 뺏은 후 부대로 돌아왔지만 결국 이러한 일련의 비상식적 조치로 인해서 비학산 공격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B장군은 17연대 출신이다. 예하부대에 대한 편견이 엄청난 공격 실패의 결과를 초래했는데 당시 지휘관들은 나이가 어렸고 전투 경험이 부족했었다는 것을 통감케 하는 슬픈 지나간 이야기다.


그 후 치졸하고 어리석은 사단의 지휘는 없어졌고 신뢰할 수 있는 건전한 지휘가 이루어졌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사단장은 송요찬 장군으로 바뀌었다. 나의 기억으론 B장군의 사단장 보임은 1-2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인 것으로 알고 있다. 새로 부임한 송요찬 장군은 아주 훌륭한 전투지휘관이었다.

윤흥정 1연대 작전주임 <노병들의 증언>  p724



덧글

  • 초딩 2011/08/02 19:48 # 삭제 답글

    앞글에서 함모중장을 비굴한 ㅎ대령으로 추측했었는데 얼른 취소해야 겠네요.

    당시엔 과거 군경력과 연령에 비례해서 계급이나 직책이 정형적이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사단장 앞에서 권총들고 서부활극이라...그래서 한신 연대장이 유명해 졌는가 봅니다.

    비학산이라면 경주쪽이 맞습니까?그리고 B사단장은 9월에 인천으로 옮겨간 분이 맞습니까?
    9월의 중요한 임무로 사단장에서 연대장으로 보직변경(?)도 맞는 얘기고,
    하여간 구설수 많은 분이네요.

    금성천님은 정확한 신상공개를 꺼리시는 듯해서 아는대로 떠들었는데.틀리면 정정해 주시고
    그리고 일시/장소가 있으면 이해가 훨씬 쉬울 거 같습니다.
  • 금성천 2011/08/03 10:59 #

    경주 북쪽 기계 북쪽 맞습니다. 중요한 임무를 맡아 17연대장으로 복귀했죠. 밑에 다 나왔습니다만.
  • 비도승우 2011/08/02 20:56 # 삭제 답글

    이해는가지만 일단 한신장군의 경우는 엄연한 하극상이군요.

    한신장군은 청렴결백하며 유능한 멋진 군인인것은 맞지만 서술하신 내용의

    상황은 엄연한 하극상이자 군기문란입니다.제가 사단장이었다면 아무말을못하기는 커녕

    당장 사살하던가 군법회의에 회부했을겁니다.

    함병선대령의 경우같은 부분은 충분히 가능한 항의이자 하급지휘관의 상급지휘관 실책에 대한

    의지표시로서 어느정도 수긍이 가능한 강도입니다.

    생사가 넘나드는 전시이고 실책과 순간의 부당함과 잘못돤 판단이 수많은 인명을 사지로 몰고가니

    해당지휘관의 입장에서는 이해개는 부분이나 인정될수는 행위이며 한편으로는 아무리 실책이라해도

    대령의 돌발행동에 아무런 제재를 못하는 사단장이란 작자들을 보면 무능한 똥별들이었을 꺼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욱군중장이 대령을 기합주었다고 그 대령이 고소하고 파면되고 하는사건이 있었는데 이글을보니 기분이 다시한번

    묘해집니다.
  • 금성천 2011/08/03 11:08 #

    B사단장은 즉결처분의 명수로 한성깔 하는 사람인데 권총 빼든 한신 연대장에겐 꼼짝 못하고 당하는 장면이 재미있습니다.

    한신 장군 회고록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만 잘 진격해 가는 주공 1연대에 포 지원을 갑자기 중단하고 사단장 자신이 직전까지 연대장이었던 17연대로 화력지원을 돌리면 1연대장으로서는 화가 났겠죠.
  • 금성천 2011/08/03 12:45 #

    함병선 2연대장은 일본군 지원병, 낙하산 부대 출신으로 체격이 크고 성격이 괄괄한 분이죠. 김종오 6사단장은 일본군 학병 출신으로 자그마하고 얌전하신 분이고. 19연대장도 일본군 학병 출신. 세분 다 군사영어학교에서 교육 받았으니 동기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 김지우 2014/07/20 05:56 # 삭제

    하극상으로만 볼 수는 없겠지요
    포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작전실패는
    수많는 생명의 헛된 희생이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 Real 2011/08/02 22:23 # 답글

    한신장군이 사실상 하극상한 양반이 설마 김석원 이 양반인가요?
  • Real 2011/08/02 22:24 #

    최소한 이종찬 장군은 아닐테니까요;;
  • 푸른매 2011/08/02 22:44 #

    17연대장이면 그 양반이죠. 백모씨...
  • Real 2011/08/03 00:02 #

    백인엽이군요;;
  • 재팔 2011/08/03 10:07 #

    김석원 장군은 적어도 사단 규율은 잘 잡있죠. 전투 중에도 신고, 군장 검사까지 하는 양반인데 ㅎㅎㅎ 저랬으면 즉결처분당했을걸요 ㅋㅋㅋ
  • 초딩 2011/08/03 10:35 # 삭제

    김석원사단장은 군기엄정하고 카리스마있고 일본군으로서의 공훈으로 명성도 대단하고 그래서인지 성남학교
    제자들이 포항인가 대거 학도병참전 했다는 글도 보았는데...

    전방 고지에서 전투중인 예하 지휘관을 사단지휘소로 빈번히 불러들여 상황보고를 시켰다고 함은
    전투중에 전입신고 안하는 부하를 불러 군법회의 타령이라니,

    당시엔 허용되었는진 몰라도 현재시점에선 불량품(?) 수준이 아닐런지요.

    '50 6/25 43번 축선 사단장들도 그랬던 거 아닐까 궁금해지네.
  • 초딩 2011/08/02 22:39 # 삭제 답글

    제가 알기론 전임 17연대장(B모씨)가 대전 경호사령관(?) 덕분인지 형님덕분인지 수도사단장을 덥썩 줏어 먹었다가
    한신때문인지 인천작전인지 다시 연대장을 한걸로 알고 있읍니다.

    후임이 송요찬.이어서 김석원인가요?
  • 금성천 2011/08/03 11:10 #

    저때까지 수도사단장 계보가 이종찬-이준식-김석원-B-송요찬입니다.
  • 초딩 2011/08/03 16:07 # 삭제

    그렇군요
    '50 7/초 3사단장 유승렬대령이 신병문제/후방으로 물러나고 -이준식준장-8/초 김석원준장-9/초 이종찬대령

    '50 6/10 수도사단장 이종찬대령이 후방으로 물러나 동기생 채병덕의 마지막을 위로하고-이준식준장(잠시->3사단)
    -김석원준장(현역 컴백.한달->3사단)-백인엽대령(한달)-9월 송요찬이네요.

    김석원장군은 본연의 카리스마로 정권에서 껄끄러웠을 거고,그래서 김백일과 따블백과 같은 인물은 승승장구하게되고
    한직인 특검단장 자리에서 마음고생 좀 많이 했다는 얘기도 있구요.

    그나저나 6/25초기에 무슨 인사이동이 저리도 많았을까요.
    사단장 이상만 기억하기도 힘들었을텐데,정일권총장도 고생했을거고,
    금성천님은 저런 계보를 모두 기억하시자면....치매 걱정 끝.ㅎㅎㅎ
  • 초딩 2011/08/02 22:43 # 삭제 답글

    채병덕총장과 맞짱뜨던 김석원사단장에게 대들었으면 조용히 마무리되질 않았을텐데...
  • Dr.Nam 2011/08/04 10:24 # 삭제 답글

    뭐 당시에 가용한 장교단의 숫자는 정해져 있었을테니까요.
    이리저리 미봉책으로 운용했다고 밖엔 볼 수 없죠.

    김홍일, 김석원 두 노장(? - 당시 기준...50대 장성...요즘 기본인데...) 은 9월 1일부로 1군단장 및 3사단장 직에서 물러나고
    이응준, 신태영, 유승열 등의 일군 계열도 이미 전선에서는 물러난 상태였죠.
    오히려 역시 노장 축에 속하는 이준식 준장이 경인지구계엄사령관, 1군단 부군단장 등을 역임하다가 육군작전참모부장에 있으면서 계속 현역에 있었던 게 신기하게 보일정도로...

    그렇다면 가용한 장교단은 군영반 출신, 육사 1,2기의 사단,연대급 지휘관과 3~5기의 일선 대대장급, 6~8기의 일선 중대장급, 9기~10기의 소대장급이니... (특별반 제외)
    지금과는 인력 운용 측면에 많은 제한이 있지 않았을까요.

    생각해보면 지연전 이후의 9월 반격, 북진 시기에는 모든 사단 지휘부가 20대후반 - 30대 초반의 장성들이군요.
    현재의 나이기준으로 보면 1차 중대장 끝내고 2차 중대장 들어가는 나이입니다..(ㅡㅡ;;;)

    Small B장군의 일화는 참 많군요. Big B에 대조되는...




  • 초딩 2011/08/04 15:28 # 삭제

    Dr.Nam님의 Small/Big 호칭이 재밋네요.

    창군초기의 군고위급을 임관싯점(군영.1기.2기)으로 참고하기엔 군번 1.2.3과 마찬가지로 애매한지라
    이참에 몇몇고위인물의 출신기수와 출생년도를 훓어 보았는데....

    유동열(일15.1878생) 이응준(일26.1891생) 유승렬(일26.1893생) 김석원(일27.1893생)
    김홍일(중군.1898생) 최용덕(중광.1898생) 이준식(광군.1900생) 김응조(봉04.1909생)
    이형석(일45.1909생) 채병덕(일49.1914생) 최덕신(중군.1914생) 신현준(봉05.1915생)
    이종찬(일49.1916생) 이용문(일50.1916생) 김창룡(만헌.1916생) 김백일(봉05.1917생)
    박정희(신02.1917생) 신응균(일53.1921생) 유재흥(일55.1921생) 이성가(광군.1922생) 장창국(일59.1924생)

    채병덕은 어리고,유재흥은 빠르고,신현준과 박정희는 느리네요.그래서 5/16(?)ㅎㅎㅎ
    참고로 김창룡은 '56에 소장/피살이면...아깝다(?) 정년퇴직했으면 김홍일과 맥아더보다 높았을텐데...

  • Dr.Nam 2011/08/05 09:21 # 삭제

    일군 계열도 대한제국 무관학교/유년학교를 거친 일본육사 27기 이전기수와 태평양전쟁시기에 입학한 일본육사 49기 이후로 나뉘어 지는데... 일제병탄기에 태어나 시험을 보고 처음으로 관문(?)을 뚫은게 49기 채병덕 입니다. (평양고보출신으로 기억...)
    유동열, 이청천, 이갑, 홍사익, 이응준, 유승렬, 김석원 등은 모두 구한말 무관/유년학교와 관련된 인물이고 이응준, 김석원, 유승열, 신태영등은 한국전 당시 50~60대의 장년 장교층을 형성하며 장성급/대령급 지휘관 또는 보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군 출신도 중앙군 출신기준으로 보면 1920년대 초반 중국 운남군관학교, 귀주군관학교를 졸업하거나 20년대 중반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여 북벌전쟁에 참가한 기수와 30년대 중반이후 특별반, 한광반이 이름으로 혹은 중앙육군군관학교에 진학한 기수로 나뉘어집니다.
    전자에 해당하는 이가 김홍일, 최용덕, 이범석, 박시창, 이준식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 역시 개전 당시 50대로서
    전직 국방장차관 혹은 장성급, 대령급 지휘관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후자는 비교적 젊은 30대로 일군/만군 출신에 비해서는 나이가 많은 세대와 당년 20대후반의 젊은세대가 혼재되어 있는데
    최덕신 대령, 안춘생 중령, 유해준 중령, 박기성 중령 (개전당시 계급) 등이 해당되겠군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들이 지휘관 전면에 나와야 함에도 불과하고 왜? 그렇지 못했을까....생각해보면
    일단 생물학적 나이로 지금의 50대와 개념이 틀리고....(미군 역시 사단장은 40대야 한다며 한국전 당시 지휘관들을
    교체했죠)
    일본 육사 출신은 태평양전쟁의 기억으로 미군으로 부터 경외심은 있었으나
    전술교리 측면에서는 현대전 교리에서 전술지식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한 실전경험이 제일 많은 김석원 대좌도 대대장이었죠.

    중국군 출신역시 국부군 지휘관으로서의 한계가 있었을거라 보이고, 특히 군벌군 출신이나 단기 양성반 출신은 전술적 측면에서 많이 부족했을 거구요. 순수 광복군 출신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미군으로 호평을 받았다는 김홍일 장군의 경우 육군대학을 나왔는데 중국 육군대학에서는
    2차대전에 참전중인 미군 교관이 교육을 했다죠? 그런 것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 육대출신은 김홍일, 최용덕, 박시창 3인 입니다.)
    드문 예죠...이런 분은....
    실전경험은 중국공군원로인 최용덕 장군을 제외하면 중일전쟁에서 연대장,사단장, 집단군 참모장으로 활동한
    김홍일 장군이 제일 화려하군요.
    인도지나 전선에서 중국 신편제일군(신일군)에서 근무한 최덕신 중국군 대령도 눈에 띕니다.
    신일군은 미군교리로 훈련받은 부대인데...그래서 교범탐독을 좋아했던건가?
    나머지 분들은 더 알아봐야 할 듯요....

    전 의아한게 장도영 장군이 26에 사단장이 되어 지휘를 했다는 사실이죠....
    26....저는 그때 중위였는데 말이죠...ㅋㅋ
  • 재팔 2011/08/29 08:58 #

    일본 육사 시험 합격을 최초로 한 사람은 채병덕이 아니라 이형석 장군이죠. 채병덕이종찬 두 장군보다 위지요. 다만 관운은 좋지 않은 듯 합니다. 나중에 전사편찬위원회에서 명작 임진전란사를 편찬합니다.
  • 비도승우 2011/08/04 19:19 # 삭제 답글

    김석원 장군한테 대들다간 일본도로 참수당할듯 싶군요.ㅋㅋㅋ --

    그리고 백인엽은 웬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역한 스타일의 인간형인것 같습니다.

    자동차 시동나갔다고 즉결처분하는 그 미친작자는 자기보다 세보이는 사람에겐 깨갱한거군요.

  • 척 키스 2011/08/05 19:14 # 답글

    한신 장군님은 청렴, 강직이란 이미지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네요. 하긴 강직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겠군요.
  • 초딩 2011/08/29 14:56 # 삭제 답글

    한신장군은 '50년 8월 수도사단 1연대장으로서 경주/안강지역에서 고립방어전끝에
    승리로 이끈 다음 유명해진 분이죠.

    그당시엔 특진도 자주 있었고 3개월에 정기승진 이야기도 있지만 6/25초전부터 일년이상을
    동일계급인 경우도 보이므로,연령.임관전 경력.6/25발발후 상황변화도 심한 상황이라,
    중령/연대장이 대령/사단장이라면 대들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비정상/불합리 지시/명령 거부)

    오죽하면 이종찬총장이 대통령항명으로 죽을뻔 했을까?

    1연대장은 함준호대령('50 4/30)->이희권중령(이종국.6/27)->윤춘근중령(7/15)->한신연대장('50 8/ ~'52 3/ )

    한신연대장은 '50 6/25 수경사 홍천연대 부연대장->7/15 1연대 부연대장->8/ 1연대장(중령)
    '50말 북진작전-'51초 속초/고성지역-'51말 백야전사/수도사/1연대(대령)
    이후 '52초 2군단 편성시 보병학교 근무.1연대장을 1년반 이상 (무지) 오래 했네요.

    함경도 인물이라 과감한 성격이고 배짱도 있으니 B사건도 있고.안강 고립작전도 가능하고,
    '모름지기...'도 .....
  • 2011/08/29 15:13 # 삭제 답글

    '모름지기...'
    "참모총장은 대통령말을 잘 들어야 해"

    그놈의 6/25는 우리나라 현대사에 많은 명암을 남겼죠.

    비운으로 떠나간 많은분.무명으로 잊혀져 간 순국선열들.

    전쟁과정에 승승장구한 인물들.
    '52년부터 '61년까지 중령으로 몸부림치다 5/16에 몰입한 8기생들.

    그과정에 발생한 수많은 대립과 갈등.
  • 초딩 2011/08/31 21:32 # 삭제 답글

    강원도엔 6/25 덕분(?)으로 수복된 지역이 넓습니다.
    흥남철수로 정착한 아바이마을도 생겨났고,6/25전에 가족도 포기하고 월남했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운 가족과 재결합하기도 했고....
    그래서 속초에는 김백일 이형근장군의 기념물도 건립되었죠.

    반대로 적도의 수복지구라 상당한 시련도 많았고...
    함양.거창에서 우리국민에게도 무자비했던 제11사단이 강원도의 적지에 상륙했으니
    그 기세는 안보아도 짐작할 만합니다.

    한말부터 대한민국의 시련은 너무 가혹했으나 어찌 이다지도 국론분열이 심한지...
    동남아 대만이나 싱가포르처럼 단결된 국민성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만주나 중국대륙에서 스러져간 독립동포.국내 순국열사들.. 많은 사연과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제주도나 지리산의 영혼과 후손들...사과하고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여 밝은 미래로 전진해야 하겠건만...

    서울시장/교육감 기타 정치싸움질,언제부턴가 시작된 문딩이들과 홍어족과의 대립

    수복민들만큼 아픔과 사연이 많은 국민이 있을까?

  • 초딩 2011/08/31 22:22 # 삭제 답글

    임진왜란시정의 몽매한 백성도 아니고,한말의 "깨어야"할 2000만 조선동포도 아닌...
    배운만큼 배우고 주워 들을 만큼 제법 머리큰 국민들에게 정치적이고 편향된 강요를 한다면
    요즘 세상에 곱게 수긍할 사람이 누가 있을테요?

    반공의 국부인 이승만대통령이 왜 그리 민주질서를 파괴했는지?
    중국대륙에서 광복을 위해 몸바친 백범선생이 2차대전후 급속히 강대해진 공산세력을 왜 그리 몰랐는지?
    인천상륙의 군신이 6/25를 어쩌다 하용하고 중공군 30만대군의 한반도 침입을 몰랐으며 황당한 원산상륙을 감행했는지?

    한가지로 맹목 비판/찬양도 금물이며,한미전작권이니 맥아더동상 철거니 군사력증강을 따지는것도 차선책이니...
    장개석군대나 베트남이 미군의 지원이 없어서 패망했을까?반공을 몰라서 망했을까요?

    전쟁은 국민이 하는건데 국민의 믿음이 이처럼 분열되어 있으니 대단히 아쉬울 뿐입니다.
  • 도봉산 2021/03/25 01:20 # 삭제 답글

    B장군님.. 그 분의 운용력 덕분에 그 분 밑에서 자라신 분들이 다들 지역과 전국을 아우르는 일진으로 자라났군요. 정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도 인터넷에 떠도는 B장군님 밑에서 자라신 분들의 일화는 많은 일진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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