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근 회고록 6.25 첫날 기록의 허구 한국전쟁


6월 25일 아침 10시경 온양으로 출발하기 위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부관 김영찬 대위가 육본에서 긴급 전화가 왔다고 다급하게 뛰어왔다. 순간 전방에서 뭔가 벌어지지 않았는가 직감에서 가슴이 덜컥했다.


전화를 받아보니 김백일 참모부장의 숨 막힐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2사단은 시급히 의정부로 집결해 주십시오. 긴급사태가 났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이렇게 뱉었다. “전면공격 아닌가?” 김백일 대령은 유선 도청을 우려한 듯 주저주저하면서 “그런 상황입니다”고 대답했다.


나는 화가 났다. “그것 봐! 누차의 보고를 묵살하고 대비를 하지 않더니 이렇게 된 것 아냐! 그러나 나라가 위급하니 우선 출발하겠다.” 나는 즉시 비상소집을 걸었다. 그리고 우선 가장 출동하기 쉬웠던 제 5연대 제 2대대만을 인솔하고 오후 2시 30분 기차편으로 북상했다.

<이형근 회고록 군번 1번의 외길 인생> p50




위의 이형근 회고록을 사전 지식 없이 읽는 사람이라면 이 기록을 무심히 읽고 그냥 넘어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기록은 자신의 과오를 감추기 위한 허구이다. 이 허구의 뒤에는 다음과 같은 엄청난 사실들이 은폐되어있다. 그는 전쟁 발발시의 사단장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너무나도 태만했던 과오를 저질렀던 것이다.



 

KBS는 25일 오전 7시에 북한군의 남침을 보도했다


사단장 이형근 준장이 이날 08.00 대전에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김백일 대령으로부터 “지금 적이 전면남침하고 있으니 병력을 끌고 빨리 올라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전쟁사 개정판 1권>p 356


1950년 6월 25일 육군본부는 오전 6시에 비상령을 내리면서 출동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했고, 8시에 제2, 제5사단 병력과 제3사단 제22연대 병력을 전선으로 이동시키는 명령을 내렸다.


대전의 제2사단은 서울 이동명령이 내려진지 6시간 후인 오후 2시 30분에 이르러서야 대전에 주둔하던 제5연대 제2대대와 사단본부 병력을 열차편에 탑승시켜 서울로 향했다.


광주의 제5사단장이던 이응준 소장은 “25일 아침 8시경에 지급 전보 한통이 광주의 내 숙사(宿舍)로 날아들었는데, 공산군이 오늘 새벽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개시했고, 제5사단은 12시까지 용산에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또한 당시의 제2사단 선임고문관인 갤러거 중령도 “오전 8시에 한국군으로부터 북한군의 월경 사실을 들었으며, 그로부터 1시간 후인 오전 9시경에 고문단사령부에서 보낸 메시지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증언하였다. 갤러거의 증언에 의하면 제2사단 참모들과 군사고문관들은 이날 오전 8~9시경에 북한군의 38선 월경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이형근 제2사단장은  육군본부가 오전 8시에 하달했다는 ‘작전명령 제84호(후방사단 출동명령)’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또는 자의적으로 묵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어찌되었든 이는 지휘관으로서의 치명적인 실수임이 분명하다.


갤러거는 “제2사단장이 전술 장교가 아니었으며 전술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임명된 자(political appointee)였다”고 혹평하였다. 나아가 그는 “첫 번째 경계명령(오전 6시의 ‘장병긴급소집명령’인 육본작전명령 제83호)이 발효된 지 8시간이나 지난 후인 오후 2시30분에야 첫 번째 기차를 출발시켰는데 이를 두고 참 잘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하면서 이형근 장군의 지휘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박동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군사 제79호> 2011.6 주한미군사고문단의 한국전쟁 인식과 대응 p138-140



6월 24일에 김진섭, 박성환, 이혜복 등 7-8명의 종군기자들과 함께 당시 대전에 있는 2사단장 이형근 준장의 초청을 받았어요. 다른 게 아니고 25일에 2사단 장병들의 모내기 돕기 작전을 취재하기 위해서지요. 25일 상오 10시쯤 장병들이 대전 교외 들에서 막 모내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본부에서 급히 귀대하라는 전령이 와서 논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대전 시내로 들어왔지요.

연합신문 이지웅 기자 <민족의 증언 1권> p63-64


6월 24일 우리들 기자 5-6명은 당시 유성 근처에 있는 2사단 장병들이 모내기 지원을 한다고 해서 이를 취재 보도하기 위하여 내려가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비상이다”라는 말이 들려왔고 무두가 수군수군하기에 나는 사단장 이형근 준장에게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 가 보아야 될 것 같다.”라고 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사단장이 기차로 상경한다기에 우리 일행은 모내기 취재를 대충 끝내고 그와 함께 열차에 올라타 상경하게 되었는데 그는 열차 안에서 가진 일련의 기자회견에서 “만약에 전쟁이 붙는다면 점심은 평양에 가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 가서 먹겠다.”라고 하기에 실상 전쟁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연합신문 이지웅 기자 <한국전쟁사1권 개정판> p603



위의 사실들을 보면 6월 25일 아침 7시에 KBS가 북한군의 남침을 보도했으며 육군본부는 06:00에 전군에 비상령을 그리고 08:00에 후방사단의 출동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대전에 본부를 둔 2사단은 전쟁 발발 당일 06시의 전군비상령, 08시의 출동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10시까지 모내기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시종 전쟁이 임박했다고 육본에 경고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그 또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전쟁 십여 일 전부터 전쟁 당일 밤까지도 그의 행적은 전혀 전쟁을 예측하고 대비한 군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핑백

  • 이형근 회고록 6.25 첫날 기록의 허구 | Freedom Developers 2011-10-14 14:35:24 #

    ... 된 것 아냐! 그러나 나라가 위급하니 우선 출발하겠다.” 나는 즉시 비상소집을 걸었다. 그리고 우선 가장 출동하기 쉬웠던 제 5연대 제 2대대만을 이글루스 &#8216;역사&#8217; 테마 최근글 Posted on October 14, 2011 by acousticlife. This entry was posted in Rss and ... more

덧글

  • Real 2011/10/14 16:29 # 답글

    역사왜곡을하는 내부의 적을 조심해야하는 문제네요.
  • 금성천 2011/10/14 16:59 #

    위 사례는 회고록이란 것은 매우 조심스레 읽어야 한다는 하나의 본보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회고록의 성격상 업적은 더욱 과장되게 과오는 슬쩍 은폐하려는 속성이 있으니까요. 사실을 알 수 있게 기록을 남긴 미 고문관 갤러거 중령과 이지웅 기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저 증언들을 수록해놓은 기관 분들도 고맙구요.

    한편으로는 2사단의 지각출동에 관해 2사단 기타 지휘관이나 참모들의 내부고발이나 증언이 없었다는 점이 섭섭합니다. 현실적으로 한국군 속성상 사실을 밝히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은 합니다만.
  • Real 2011/10/14 17:17 #

    그들역시 출동이 지연된 것에 대해서 변명하려면 이형근 장군의 주장에 동조를 해야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국가위기상황에서의 과오문제는 결국 비판의 대상이될수밖에 없으니까요. 제가보기에는 그렇게 보이네요. 결국 자기보호본능 혹은 자기방어기제와 같은 것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 금성천 2011/10/14 18:11 #

    그래서 저는 그날 대전에 있었던 2사단 예하 지휘관과 참모들이 지각출동의 어쩔 수 없는 공범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군 시스템의 문제도 엿보이구요.
  • 2011/10/14 19: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금성천 2011/10/15 11:32 #

    저도 그 책을 정독했지만 채병덕 미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형근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 비판하는 정도였고.

    그런데도 초기 패전에 관하여 채병덕에 대한 비난이 너무 크다보니 기존의 잘못 알려진 이야기들을 그대로 믿고있는 분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당시 국군의 초기 대응은 미군사고문단의 실질적 지휘자였던 무초대사와 이범석 장군의 견해와도 일치하는 것이었고 한강다리 폭파는 신성모 국방의 명령이었는데도 채 총장이 미련하게(?) 실행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죠. 여기다가 2사단장이나 작전국장이 자기들 책임을 모면하려고 채 총장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짓말들을 천연덕스럽게 해댔고.


  • 갈천 2011/10/23 09:49 # 답글

    금성천님글을 매우 재미있고 유익하게 보고있습니다. 저는 평소 2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1. 철원,화천,양구,인제까지의 휴전선에 있는 지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전사를 이해하는데 애로사항..
    남북의 주요 큰산의 이름만이라도 정확히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철원화천 북방에 오성산이 있는 것은 아는데 화천양구인제의 북방과 남방의 큰 봉우리들 지명은 무엇인지
    북한의 어은산이 있다하고 남쪽에는 대성산...그리고 서쪽부터 동쪽까지 무슨 산들이 있는지

    2. 전쟁 중후반의 글을 보면 전선이 정체되고 대부분 국군이 선전한 것만 나오는데
    북한 인민군도 도솔산 전투에서 미해병1사단을 작살냈다는데 전체적으로 아군이 중공군이 아니고 북한 인민군한테 당한 전투들이 무엇들인지 궁금합니다
  • 금성천 2011/10/24 15:49 #

    어휴. 왜 이리 어려운 문제를 내세요. 오성산 동쪽으로는 생각나는게 지형능선 수도고지 선우고지 교암산 모택동고지 김일성고지 가칠봉 도솔산 백석산 피의 고지 월비산 351고지 등이 있는데요. 이 부분은 군사편찬연구소의 원문검색 들어가셔서 한국전쟁사 6,7,8,9권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찾아보시다가 어느 고지가 구체적으로 어디쯤인지 모르시면 다시 문의하세요. 알 수 있는 한은 알려드리겠습니다.

    북한군과의 전투는 주로 중동부전선의 동쪽과 동부전선 쪽인데요. 국군이 고전한 전투로는 월비산전투, 351고지전투가 생각나네요.
  • 갈천 2011/10/24 20:51 # 답글

    금성천님. 아래에 고지들의 위치를 표시해 봤습니다. 틀린것 지적해주시압

    = 금강산=

    === 오성산 ====
    === 오성산 ====
    저격능선 수도고지 ====== 어은산 ===== =춘양산= =무산=
    지형능선 ====== 어은산 == 문필봉 =매봉=
    ---------------------------------------------------------------------------------------DMZ
    적근산 크리스마스고지 가칠봉 향로봉
    백석산 피,단장능선 도솔산
    대성산 대암산-대우산


    .....철원.......|.........화천........|....................방산...............|.........인제..............|.....고성.......


    1. 백석산의 위치가 위 표시도 처럼 어은산 남서쪽인지 아니면 어은산 바로 아래 남쪽인지 궁금합니다.
    2. 크리스마스고지는 현재 아군측에 있는것이 맞는지
    3. 저격능선, 수도고지,지형능선은 이북쪽에 있다가 53.7월 휴전직전 (금성지구전투 등) 상실한 것인지?
  • 갈천 2011/10/24 21:03 # 답글

    에구에구 잘못표시되어 다시 표시합니다.

    금성천님. 아래에 고지들의 위치를 표시해 봤습니다. 틀린것 지적해주시압

    .........................................................................................................=금강산=

    == 오성산 ==.......................................................................................

    ................... 저격능선 수도고지 ...........====== 어은산 =====............=춘양산=..=무산=
    ................... 지형능선 .......... ====== 어은산 == 문필봉 ...........=매봉 =
    ----------------------------------------------------------------------------------------DMZ
    ................적근산......................................크리스마스고지........가칠봉..........향로봉
    .......................................................백석산......................피,단장능선..도솔산
    .............................. 대성산 ............................ 대암산-대우산 .....................................


    .....철원.......|.........화천........|....................방산...............|.........인제..............|.....고성.......

    1. 크리스마스고지는 현재 아군측에 있는것이 맞는지
    2. 저격능선, 수도고지,지형능선은 이북쪽에 있다가 53.7월 휴전직전 (금성지구전투 등) 상실한 것인지?
  • 갈천 2011/10/24 21:07 # 답글

    3. 백석산의 위치가 위 표시도 처럼 어은산 남서쪽인지 아니면 어은산 바로 아래 남쪽인지 궁금합니다.
  • 금성천 2011/10/25 14:54 #

    정리 다 잘 해놓으셨네요. 그림 옮기는 과정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같이 찾아보죠. 5만분의 1 지도를 보며 거리는 대충 측정한 것입니다.

    저격능선은 오성산 바로 남동쪽으로 거의 붙어있고 저격능선에서 25킬로미터 동쪽으로 수도고지.
    수도 고지 서쪽 2킬로미터가 지형능선.
    수도고지 남동동쪽 15킬로미터가 어은산.
    어은산 남쪽 약 2킬로미터가 크리스마스고지.
    크리스마스고지 남남동쪽 5킬로미터가 백석산.
    어은산 동쪽 7킬로미터가 문필봉.
    문필봉 남동쪽 3.5킬로미터가 매봉.
    매봉 남남동쪽 5킬로미터가 가칠봉.
    가칠봉 남쪽 5킬로미터가 대우산.
    가칠봉에서 동쪽 19킬로미터가 향로봉.
    백석산 동쪽 8킬로미터가 단장의 능선.
    단장의 능선 남쪽 5킬로미터가 피의 능선.
    피의 능선 동쪽 7킬로미터가 도솔산.
    도솔산 남동쪽 5킬로미터가 대암산.
    적근산 남서쪽 7.5킬로미터가 대성산.

    갈천님 그림이 대부분 맞지만 대우산과 대암산이 뒤바뀐 듯. 대우산은 대암산의 북서쪽 6킬로미터 정도. 대우산과 대암산 사이에 도솔산.

    그림의 저격능선은 오성산에 붙이시고 지형능선은 수도고지 바로 좌측으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격능선, 지형능선, 수도고지는 휴전직전 상실하였고 크리스마스고지는 우리 쪽(민통선)으로 알고 있지만 확실한지는 모르겠네요.

    백석산은 어은산에서 거의 남쪽이다가 살짝 동쪽.
  • 갈천 2011/10/26 21:21 # 답글

    1. 우와! 정말 고맙습니다.
    2. 저격능선, 지형능선, 수도고지는 휴전직전 상실하였고..결국 휴전직전 중공군의 금성돌출부 침공을 받아 밀리면서 위3개 고지를 상실한 것이었군요.
    고맙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