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단장 각하를 위해서라면 김석원 장군 이야기

 

송악산에서 중대장 생활을 하던 49년 5월 4일, 드디어 북한공산군과 충돌하게 되었다. 그날 북이 불법으로 38선 약간 남쪽으로 침입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자 그들을 쫓아내려 우리가 공격하여 38선을 탈환하였고 그들이 다시 공격하는 등 피아간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 전투는 박격포와 대전차포까지 동원한 대규모의 전투로 확대되었으며 때로는 일시 소강상태, 때로는 대규모 공방전으로 7월 말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난 이곳에서도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게 된다. 이 전투에서 공산군은 120밀리 중박격포와 122밀리 포 등을 사용했는데 화력이 우리보다 월등하게 우세하였다. 38선 상의 비둘기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우리 중대가 공격할 때였다. 두 개의 선두 공격 소대와 중간선두에서 공격 제대와 같이 적진에 돌입하던 나는 적탄을 맞고 그 충격으로 쓰러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틀림없이 적탄을 맞고 충격으로 쓰러졌는데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왼쪽 가슴이 뜨끔하여 들여다보고 나는 놀랐다. 미군 작업복 왼쪽 윗 포켓에 달려있는 두껍고 커다란 철제 단추가 쭈그러져 있는 게 아닌가.

적의 따발총탄에 맞았는데 정면으로 맞은 것이 아니고 약간 우측면으로 날아와서 맞았기 때문에 단추만 쭈그러지면서 총탄은 왼쪽으로 비켜 빠진 것이다.


그리고 난 이곳에서 지휘자의 태도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구한 목숨만큼이나 값진 교훈을. 그날은 우리가 비둘기 고지를 점령하던 날이었다. 겨우 5백 미터 정도의 거리를 서로 밀고 당기는 싸움이었지만 그래도 난 비둘기고지를 다시 빼앗았다는 통쾌함을 억누르며 최경록 연대장께 무전으로 보고를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날아온 무전은 전혀 예상 밖. 아직 총탄이 머리 위를 난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단장 김석원 대령이 고지 순찰을 하러 이곳으로 벌써 떠났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난 소대장에게 고지를 맡기곤 쏜살같이 내려갔다. 산 밑엔 벌써 김 사단장이 오고 있었다.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카이젤 수염을 만지며 뒤엔 일본도를 든 부관을 거느린 채 차에서 내려 고지로 올라오고 있었다.


“각하, 올라오시면 위험합니다. 아직도 적이 치열한 사격을 해오고 있습니다!” 당시 사단장은 계급이 대령이어도 각하란 칭호를 붙이던 시절. 난 거수경례와 함께 입을 열었다. 하나 날 처음 보는 그는 내 말엔 아랑곳 않는다. “음, 자네 이름이 뭔가?” “네, 대위 채명신입니다.” “그래 비둘기 고지를 탈환했다고. 잘 했다. 정말 잘 했어. 나 거기 한번 올라가 보자.”


“아니, 각하. 올라오시면 위험합니다. 아직도 적탄이.......” 그러나 나는 내 말을 채 맺을 수 없었다. 그가 내 말을 끊은 탓이다. “괜찮아, 나 김석원이야.”


아무튼 그는 막무가내로 결국 고지 정상까지 올랐다. 그동안에도 적의 포탄은 계속 우리 측에 낙하하고 있었다. “흠,  놈들 포가 참 많구나.” “예, 화력에선 우리보다 월등합니다.” “ 그런데도 이 고지를 빼앗은 걸 보면 정말 장하고 기쁘다.“ ”그래선데 각하, 지금 보시다시피 적이 쫓겨 도망가고 있는데 38선을 넘어 추격섬멸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십시오.“


사실 그날 우리의 기세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적은 후퇴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단장의 말은 단호했다. “자네들의 용기와 심정은 이해하지만 38선 월경은 안 돼."  “그렇지만 저놈들이 먼저 쳐들어 왔는데 우리라고 추격해서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아무튼 사람이 38선을 넘는 건 안 돼. 총탄이나 포탄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거부하는 그의 얼굴은 썩 기분 나쁜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견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난 그때 그에게서 감명을 받았다. 최고지휘관이 적탄이 난무하는 최전방을 방문, 사병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일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부하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날 사병들의 눈빛에서 읽은 것이다.


굳이 따진다면 김 사단장의 작전이나 전술은 구식이었다. 그는 무전기보단 큰 소리로 호령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지휘자였으며 일본도를 옆구리에 차야만 군인답다고 생각하는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용감성과 부하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결코 구식이랄 수 없었다. 전투 중 그는 항상 위험한 최전선을 방문하여 장병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진작시켰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게다가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항상 육군병원에 들려 부상병들을 어루만져 주는 자상한 상관이었다. 그는 부상병들을 위해 손수 담배와 건빵을 들고 다니며 상처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중대원도 5,6명 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았는데 그들의 소감은 한결 같았다. “난 우리 사단장 각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다.” 이는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사단장이란 한 인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었다.

<채명신 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 p71-74





덧글

  • Dr.Nam 2012/03/23 17:36 # 삭제 답글

    부하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성의 지휘관? ㅎㅎㅎ

    백선엽장군 회고록에도 보면 그가 현역으로 복귀하자 현역 장교들의 그의 휘하로 가길 원했다지요...
  • 금성천 2012/03/23 17:58 #

    그에겐 부하들을 이끄는 독특한 매력이 있지요. 약졸들을 강병으로 만드는 마력(?)도 있고.

  • Dr.Nam 2012/03/24 22:34 # 삭제

    실제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장성 지휘관이 호연지기를 보여주는 게 쉽지는 않죠.
    현대전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실제 병사를 지휘해 본 입장에서 볼 때...
    저러한 쇼 맨십은 부하들의 사기를 몇 배 이상 극대화 시키는 효과는 분명 있습니다.

    우리 장군은 진두지휘를 한다... 총탄이 빗발치는데 우뚝서서 일본도 휘두르며 외치는데 멀쩡하더라.
    포탄 떨어져서 미군 고문관들 움츠리고 그러는데 혼자 우뚝서서 콧수염을 만지며 적진을 노려보고 있더라 등등...

    겉으로만 이러고 속으로 빈 멍텅구리 지휘관은 절대 지양해야 하지만...
    적절한 쇼맨십을 통한 부하들의 사기진작과 감성적 리더십의 발현... 그리고 그 이면의 놀랍고도 냉철한
    전략적 마인드, 전술적 판단이야말로 지휘관이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행인1 2012/03/23 17:51 # 답글

    손자나 오기가 보았으면 칭찬했을법한 분이군요.
  • 금성천 2012/03/23 18:01 #

    부하들 사기를 올리는 쇼맨십이나 퍼포먼스(?)도 능숙한 분이죠.
  • TBSH 2012/03/23 20:17 # 삭제 답글

    흐음, 저분이 예비대를 준비 안하고 전군 배치를 일삼으며일본군이 파병된단 소문에 기뻐하며 미군에게 "이놈은 병신중의 상병신이니 빨리 짤라야됨."이라 평가받은 김석원가카군요.
  • 금성천 2012/03/24 13:42 #

    예비대 너무 좋아할 것 없어요. 예비대 존치여부는 상황에 따라 일장일단이 있는 겁니다.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킬로미터의 정면을 1개 사단이 방어하는데 예비대를 둠으로서 문산 방면은 그런대로 적의 진격을 지연시켰으나 개성반도 쪽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개방하다시피 한 상태여서 북한군 6사단의 2개 대대와 야포 2문이 이미 26일 아침에 김포로 한강 도하를 했습니다.

    이거 큰일 날 뻔한 거예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이런 6사단의 움직임에 대하여 잘 몰랐고 10년 후에는 이에 대해 다시 분석하고 평가하는 글이 나올겁니다. 그리고 김석원 장군이 사단장으로 있던 49년만 해도 전면남침의 징후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동포들이 의용군 지원해서 온다는데 일본군 파병된다고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표현이죠? 일선 사단장 입장에서 일본에서 교포 지원병들이 온다는데 기쁜게 이상한가요?

    김석원 장군은 미군고문관들과 잘 맞지가 않았습니다. 고문관은 조언하는 사람이지 지휘하고 명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젊은 국군 사단장들이 미군고문관 지프차 상석에 모시고 다니며 다닐 때 57세 김석원 장군은 고문관들을 그저 고문관 취급해 준 겁니다. 국군 지휘관이 꼭 그들 말대로 할 필요는 없어요. 미군들이라고 다 합리적이고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정보와 평가가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또 개중에는 오만방자한 놈들도 있었습니다.

    너무 미군님들 미국분들 보고서를 맹신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김석원 장군 평가에 관한 한 미군들의 보고서보다는 김장군 휘하에서 싸운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국군 일등병, 하사, 소위, 중위, 중령들의 이야기를 더 신뢰합니다.
  • Dr.Nam 2012/03/24 22:29 # 삭제


    미군이 김석원 장군을 좋지 않게 평가한 이유는 좋지 않게 대하였기 때문입니다.
    당년 57세의 노장군에게 하나하나 간섭하는 새파란 20대후반, 30대초반의 미군 위관급, 영관급 장교들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당시 경험이 부족했던 청년 지휘관들에게는 몰라도 50대의 장년 지휘관들에게는 가당치 않아 보였을 것입니다.
    이는 김석원 장군 뿐만 아니라 김홍일 장군에게도 해당하지요.

    금성천님 말씀처럼 고문관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만큼의 대우를 했을 거고
    그 평가는 박하게 기록되었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당년 김홍일, 김석원 두 장군이 너무 일찍 물러난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 666 2012/03/27 02:12 # 삭제

    사단 방어정면을 1/3로 줄여서 예비대와 방어선을 확보해놓은 상황에서도 엄청난 악전고투를 겪어야 했습니다. 우연히 임진강변에서 훈련중인 대대가 미리 마련해둔 방어선을 즉각 점령하는 행운에도 불구하고말입니다.

    방어선 그대로 놔뒀더라면 개성주둔 12연대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오전중으로 녹아버린 꼴이 사단단위로 재현되었을테고, 그렇다면 서울함락의 책임을 7사단이 아니라 1사단이 뒤집어썼겠죠.

    6사단의 위험이라는 것도, 따져보면 아무런 저항없었는데도 2k에 달하는 한강을 건너 김포반도로 진출하는데 한참걸렸고(28일 완료) 그 후에도 국군의 저항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김포반도를 거처 수원으로 진출해 포위하지도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감수할만한 정도의 위험이었던 거죠.

    p.s. 지금도 북한군 6사단 사병들은 해마다 여름이면 고된 도하훈련 받느라고 고생하면서 60년전 선배들의 욕을 하고 있다고합니다.
  • 금성천 2012/03/27 15:48 #

    북한군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6사단이 도하장비를 더 준비하고 왔다면 26일 오후나 27일까지는 그들 계획대로 영등포를 차단할 수도 있었다는 게 참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문산 방면에서 잘 막았다고 칭찬하다가 김포 영등포에서 뒤통수 맞을 일이었죠. 결과적으로는 6사단 전체의 도하가 지연된 것이 참 다행입니다만.
  • 666 2012/03/28 04:46 # 삭제

    1사단에 대한 군사고문단의 평가]

    이번 조사의 결과 현재 1사단 구역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과 방어상의 위험한 취약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a. 경계 순찰이 전무한 상태이다.

    b. 현재 38선상에서 돌파되어 침범당한 지역에 전초저항선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

    c. 사단 정면에 주저항선이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단 주력이 북한군으로부터 공격에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d. 11연대가 부적절하게 투입, 배치되어 있다. 이 부대는 연대지휘소와 대대가 개성에 위치해 있는데 현재 위치에서는 개성 회랑 동쪽으로 부터의 공격에 후방이 차단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이 연대는 개성-문산 도로의 약간 남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개성-문산 도로를 따라 종심 깊게 배치되는 대신 연대 전체가 북쪽을 향하고 있어 배치가 잘못 되어있다. 만약 임진리의 교량이 적의 신속한 진격에 탈취될 경우 1개 연대와 여기에 배속된 포병은 고립될 것이다. 제대로 된 군대가 적용하는 올바른 부대 배치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 진다. 각 대대와 중대는 소수의 병력만 전방에 배치하고 예비대를 확보한다.; 최소한 1개 연대에는 1개 대대가, 1개 사단에는 1개 연대가 예비로 있어야 한다. 그러나 1사단은 사단 예비는 물론 연대 예비대도 전무한 상태이다. 사단장은 예비대 없이는 보다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e. 나머지 2개 연대 -12연대와 13연대- 도 마찬가지로 종심이 깊지 못하고 예비대가 전무한 상태로 전술적으로 불안정하게 배치되어 있다.

    출처: http://panzerbear.blogspot.com/2008/12/blog-post_29.html
    --------------

    만약 김석원 장군식 병력배치로 전쟁을 맞았다면 그 즉시 서대문방면을 통해 서울이 함락됐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김포반도 수비를 위해 사단병력을 개성반도 남단에 몰아 넣는다는건 전술적으로도 잘못이죠.

    현재도 김포반도 수비는 북단의 1사단이나 9사단이 아니라 남단의 해병2사단과 17사단이 맡고 있습니다.
  • 금성천 2012/03/28 14:50 #

    너무 미군보고서를 맹신할 필요 없다니까요. 김석원 장군이 공금횡령? 부패? 무능? 참 웃기는 이야기죠. 미군들은 김석원 장군을 부정부패한 군인이라고 했지만 당시 한국군 고급지휘관 중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이 김석원 장군이라는 것은 그의 부하들이 가장 잘 압니다.

    김석원 장군을 부패하고 무능하다고 미군에게 꼬드긴 것들은 김석원 장군 때문에 부정한 이득을 취하지 못하게 된 국군 내부의 부패자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올려주신 미군보고서는 정병준 교수의 ‘한국전쟁’에도 나오는 것인데 미군이 왜 그리 김석원 장군에 대해 악랄하게 평을 해댔는지에 대해서도 그 배경과 의도를 알아보셔야 합니다.

    국군이 38선 경계를 맡게 된 것은 1948년 말부터인데 서해안의 황해도 청단에서 동해안의 양양 잔교리까지 260킬로미터를 4개 사단이 경비를 맡았습니다. 1사단이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킬로미터의 정면을 지키라는 것부터가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말도 되지 않는 것이죠. 참고로 7사단은 적성에서 포천 사직리까지 47킬로미터, 6사단은 가평에서 인제 현리까지 84킬로미터, 8사단은 인제 진흑동에서 양양 잔교리까지 26킬로미터.

    1949년까지도 38선에 배치된 사단의 임무가 38선 경계 그리고 전면남침에 대비한다기보다는 국지적 분쟁에 대비하는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설령 3개 연대를 병진 배치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흉볼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260킬로미터 정면에 4개 사단만 배치하고 예비사단을 전라도 경상도에 둔 것부터 잘못으로 따져야죠.

    저는 이런 것에 대해 국군이 각 도(道)마다 1개 중대로 시작하여 연대로 발전하고 사단이 창설되어 48년 말부터 미약한 병력으로 38선 경비를 맡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리 비판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 영토를 병력 부족하다고 비워놓기는 싫거든요. 물론 전쟁이 임박했다면 상황 봐가면서 조정은 가능했겠지요. 그것은 김석원 장군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 금성천 2012/03/28 14:52 #

    국군이 38선 경비를 맡기 전에는 미군이 담당했었는데 이에 대해 김석원 장군이 평한 이야기를 보죠.

    “당시 북괴측은 송악산 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해놓고는 선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미군은 그만 거의 무방비상태로 이 지역의 방위를 우리 사단에 인계해 버리고 말았다. 적이 그렇게 완강한 진지를 구축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참 모를 일이었다.”

    38선 경계를 미군이 과연 김석원 장군의 1사단만큼 성의를 갖고 했을까요?

    백선엽 장군이 51년 3월에 1사단장으로 부임하여 전면 남침시 개성 연백 청단지구를 포기하고 문산 방면으로 예비대를 투입할 수 있게 한 것은 일리 있는 조치이지만 개성반도의 12연대가 전쟁발발시 철수예정인 부대로 지정(?)되어 거의 저항도 못(안)하고 2개 대대가 선박으로 강화도 김포 등지로 탈출하여 1사단에 합류하지 못하고 26일 아침에 김포반도에 북한군 6사단의 한강도하를 허용한 것은 재평가해야할 문제입니다. 지금 평가하기를 북한군 6사단의 영등포로의 진격 지연에 대해 천우신조라고 하는데 이런 천우신조라는 말 앞으로는 나오지 말아야 합니다. 문산에서 잘 싸웠다고 칭찬만 할 일이 아니란 거죠.

    차차 제 블로그에 올리겠지만 제시하신 보고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인사권에 간섭하고 대통령을 협박하는데 사용된 보고서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의도를 알아야 하고 분노를 느껴야 하는 보고서라는 말입니다.
  • 비로그인엘지팬 2012/03/23 21:31 # 삭제 답글

    저 분이 친일파였든 고위장교로써 무능했다하여도 사병으로 전역한 저로써는 모시고픈 상관이긴 합니다.
  • 금성천 2012/03/24 14:08 #

    평양학병사건 재판정에서의 모습을 보면 친일파로 보기 힘들어요. 김석원 장군이 높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껄끄러웠지만 부하들에게 잘해주었죠.
  • IEATTA 2012/03/24 11:50 # 답글

    지휘력은 무능하였으나 기백은 엄청나군요 -ㅅ-;;
  • 금성천 2012/03/24 13:56 #

    무능하다니요. 앞으로 계속 김석원 장군 이야기 올릴 거지만 그렇게 많은 부하들로부터 칭송을 받은 지휘관은 없어요.
    미군들 이야기와는 전혀 반대.
  • Dr.Nam 2012/03/24 22:24 # 삭제

    무능하다니요...
    한국전쟁사를 공부하는 저로서도 손꼽는 장수 중의 하나가 김석원 장군 입니다.

    그의 전기전술이 비록 구식이라 하나....전쟁은 전기 전술로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전후에 그가 국회의원에 출마했을때도...그를 보기위해 몰려든 시민들을 생각해 볼 때
    그의 명망은 대단했습니다.
    그 명망이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요?
  • IEATTA 2012/03/24 23:00 #

    한국전쟁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적당히 아는 선에서 댓글 단거 같습니다 무지를 사과드립니다 ㅜ_-
  • 금성천 2012/03/26 11:05 #

    IEATTA님. 사과하지 않으셔도 되요. 제가 24일 단 답글은 혹시라도도 김석원 장군이 무능한 분으로 비쳐질까봐 걱정되서 살짝 보충설명한 겁니다.^^
  • 모튼 2012/03/24 12:49 # 답글

    해상 철수를 보면 그렇게 무능하지도 않았죠. 잘 봤습니다.
  • 금성천 2012/03/24 14:13 #

    예. 감사합니다. 부하들의 심리를 꿰뚫는 지장이자 용장이죠.
  • 엽기당주 2012/03/24 14:39 # 답글

    저희 고등학교 노선생님중 이분이 교장이셨던 시절 졸업하신 대선배님들도 계신데

    엄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참 자애롭고 학생을 인간적으로 사랑한 좋은 분이셨다며 그리워 하시더군요.

    어려운 학생들 있으면 사재를 털어서라도 몰래 도와주시고 그랬다고 하시던걸요.

    일단 세인의 평은 그렇다쳐도 아랫사람들 따뜻하게 감싸는건 알아줘야하는 분 같습니다.
  • 금성천 2012/03/24 15:17 #

    예전에 성남고 졸업하신 분들은 김석원 장군을 존경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요즘은 성남고 재학생들도 김석원 장군이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입니다.


  • 엽기당주 2012/03/24 15:19 #

    저는 졸업한 이후라 잘 모르긴 하지만 이해찬식 교육열풍 이후에 후배들이 뿌리도 모르는 애들이 되었다더군요.

    진짜..어휴..
  • 2012/03/24 16:35 # 삭제 답글

    위에 미군보고서빠는 놈은 이해가 안간다,,평가받다니 왜 국군이 미군의 평가를 받나,,정의로워서 세계평화를 지키는게 아니라 가장 무력이 강해서인데,,그걸 정의로 착각하는 돌대가리들이 있다니,,소련이나 미국이나 북한이나 다 같은 놈들이다,
  • Dr.Nam 2012/03/24 22:40 # 삭제 답글

    상기 일화에서 재밌는 부분.... 출처 국방일보

    사단장 각하, 안 됩니다. 아직도 교전 중입니다.”“야, 김석원이는 총알을 무서워하지 않아. 가보자꾸나.”여전히 무전기에서는 고지에서 날아오는 전황이 다급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때마다 “꾀꼬리 알았다. 경계태세를 강화하라”고 계속 지시했다. 그러자 김사단장이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얘. 꾀꼬리, 낙동강이 뭐냐?”“네, 아군의 무전 연락입니다.”

    그러자 김사단장이 “싸움이라는 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면서 수행한 부관더러 일본도를 달라고 하더니 그것을 받아 높이 쳐들고는 “다이타이호 데키노 도치카 다다케!(대대포는 적의 토치카를 쳐라!) 이렇게 하는 거야!”하며 쩌렁쩌렁 외쳤다. 그 목소리는 송악산 너머까지 메아리 되어 우렁차게 퍼져 나갔다.

    김석원 사단장의 우렁찬 목소리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으나 그의 기개는 놀라운 것이었다. 전선에서도 이런 여유를 보이는구나 하고 나는 감탄했다. 그러나 그것은 화력이 엄청난 현대전에서는 맞지 않는 지휘법일 것이다.

    어느 날 수색의 야전병원을 찾아 부상병들을 문병했더니 그들은 하나같이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김석원 장군을 위해 죽겠습니다!”하고 눈물을 짓는 것이었다. 군인이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데 사단장을 위해 죽겠다니, 그것이 이상해 입원 병사에게 물었다.

    “너희들, 김석원 사단장님을 위해 죽겠다는 게 무슨 뜻이냐.”

    “네, 사단장 각하가 사모님과 함께 자주 병문안을 오셨습니다. 건빵과 담배 한 갑씩 나눠 주면서 어떻게든 살아 남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꼭 살아야 한다고 일일이 붕대를 감아 주셨습니다. 그런 사단장 각하를 위해서라면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군이 기합 세기로 유명했지만 이런 것이 있었기에 강했구나 하는 점을 나는 새삼 느꼈다.

    (중략) 국방일보 채명신 장군 회고 '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 에서
  • 금성천 2012/03/26 11:08 #

    국방일보 기사가 훨씬 더 실감나는군요. 이 기사를 미리 알았으면 이걸로 올릴 것을 그랬네요. 잘 봤습니다.
  • 조은성 2012/03/25 13:57 # 삭제 답글

    패튼의 입장을 변호해주고 배려해 주었던 브래들리나 아이젠하워 같은 존재가 김석원장군에게도 있었다면...
  • 금성천 2012/03/26 11:18 #

    저는 당시 육본의 실세였던 만주군패거리들과 미군이 힘을 모아 김석원 장군과 김홍일 장군을 야전에서 밀어낸 것으로 봅니다. 만약 육군참모총장이 일본 육사 출신이었다면 그런 식으로 내몰지는 않았을 겁니다.
  • 666 2012/03/26 23:43 # 삭제 답글

    이 송악산 전투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자면 292고지, 유엔고지, 155고지, 비둘기고지를 중심으로 벌어진 전투인데, 당시 국군은 일제시대 지도를 근거로 이 고지군을 38선 이남으로 인지하고 있었고 그 반대로 북한군은 38선 이북으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글과 달리 국군이 292고지에 진지 구축을 시작하자 북한군이 공격했던거고 이 공격을 북한군의 38선 월경 침공으로 판단한 국군 지휘부에서 반격명령을 내린거죠.

    쌍방이 전부 한치도 빼앗길 수 없는 자기 영토로 인지했기 때문에 격렬한 무력충돌이 일어나게 되었고 육탄공격을 해서라도 고지를 점령해야겠다는 상황이 된겁니다. 나중에 밝혀진바로는 292고지는 38선 이북 300m지점이고 나머지도 38도선 내지는 북쪽이었고, 결국 이 전투는 북한의 북침주장의 한 증거로 사용되게 됩니다.
  • 조은성 2012/03/27 11:09 # 삭제 답글

    해방 당시 소련군이 개성을 점령했었는데, 그 원인이 개성이 38선 이북으로 표시된 지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지도는 오류가 많아서 현재의 지도와 비교하면 실제 지형과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합니다.
  • 금성천 2012/03/27 15:58 # 답글

    정병준 교수의 '한국전쟁'에 그 지도 문제에 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오죠. 사실은 38선 북쪽에 있는 고지들인데......
  • 조은성 2012/03/29 20:30 # 삭제

    현재 비무장지대 GP와 GOP의 위치도 엄격히 따지면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그러나 실제 지형과 상관없이 위도선이나 몇 킬로 간격 등으로 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말이 안되는 논리이지요.
  • 재팔 2012/03/31 10:41 # 답글

    흥미 있던 게..
    1. 한국전쟁 초기에 관한 책을 보면 무능에제거 순위 1위로 고문단장에게 지목되었지만, 실전에서는 미군보다 양호한 모습을 보여준 점.
    2.(좀 흑역사지만) 언론에서는 북진 등등 호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실제로 개전 전의 국지전에서는 월경을 제지한 점(무려 미군 고문관이 '김석원은 포탄은 몰라도 군이 월경해선 안된다'고 지시했다고 증언!)
    3. 육대를 나오지 못했지만, 한국전 당시 철수작전을 보면, 유연한 머리의 소유자(다만 성질 뻗치면 그 누구도 제어 못하는 인물로 돌변하는 게 문제죠 ㅋ)

    역시 무인은 무인입니다. ㅋㅋ
  • 금성천 2012/03/31 15:45 #

    한국전쟁 초기 2달이 못되는 사단장 재임기간이었지만 그의 좋은 모습을 기억하는 병사들 장교들의 이야기가 참 많아요.

    김석원 장군 일화를 저 혼자 보고 넘어가기 아까워서 가끔 올려봅니다.
  • 비도승우 2012/04/01 23:13 # 삭제 답글

    친일파였다해도 공은 공대로 과는과대로 기술되어야하고 평가되어야 하는것이 순리이고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김석원장군이 40,50년대 가준으로도 구식지휘관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현대전에서도 부하를 아끼는 마음이나 몆가지 퍼포먼스는 충분히 약발이 통한다는것을 볼때 오히려 저는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래저래 구 일본제국군의 느낌이 강한 인물이지만 부정부패엄단과 무모할만큼의 용감성

    부하사랑같은 덕목들을 지니고 실행하며 좋은결과를 현실에서 만들었다는것은 일단 동서고금을 막론한 군인다운 군인의 자질

    을 지닌 지휘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그리고 예비대..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구일본군 전술자체가 예비대 운용보다는

    전병력을 결집하여 단기결전으로 승부를 보는 방식에 익숙하여 김석원 장군도 그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합니다.

    일본군이 예비대를 운용하는 경우는 드물었죠. 러일전쟁당시부터 국력의 한계와 그로인한 물자부족과 병력부족현상이

    매전투마다 와닿으니 늘 한군데에 모든 전투역량을 모아 결전으로 국면을 타개하는데 재미롤 본 일본군의 교리에 익숙한

    김석원장군의 입장에선 더욱 당연했을꺼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 금성천 2012/04/02 14:51 #

    부하들의 사기를 올리고 지휘관의 진심을 보여주는 뛰어난 연출과 발군의 퍼포먼스.......

    어떨 때는 명배우 같아요. 와! 저렇게 부하들에게 감명을 주고 약졸들을 강하게 변화시키는구나!
  • 깜장콩 2012/04/05 13:11 # 답글

    저런 퍼포먼스를 부하들이 감동받을수 있게 펼치는것 자체가 그에 걸맞는 인격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대에서나 사회생활 하면서 저런 감동 퍼포먼스를 펼칠려고 하는 지휘관들이 간혹 있었는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좀 있더군요 평소에 인격과 행동이 합쳐질때 저런 감동이 나오는 거겠죠

    그나저나 260키로에 4개 사단이라 아무리 힘든 시절이었더라도 정말 막장이군요 ..
  • 금성천 2012/04/05 18:24 #

    한국군에 연대들이 생기고 사단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보니 지금 돌이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넓은 범위를 떠맡게 된 것이죠.....
  • 갈천 2012/09/21 12:57 # 삭제 답글

    1. 북괴6사단장은 그 유명한 방호산인데 왜 그렇게 지체했는지 이유가 밝혀 졌나요?

    2. 육군참모총장이 이응준-채병덕-정일권인데....채병덕이 서울함락 당시 몇일간 도망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망가지 않았다면....(김정렬 회고록)

    3. 왜 미군이 일본계를 제외하고 만군계를 선택한 건가요. 정일권이 육참총장이 되는데 어떤 부정적인 권모술수를 썼나요?

    4. 방원철의 회고록을 보면 만군의 체계는 내부에서 일본인 고문의 자문을 받고, 또 일본군과의 합동작전을 하는 것이 늘상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미군 고문에 적응하는 것이 빨랐다. 쿠테타를 한다면 일본군 출신이 아니라 만군출신이 한다.고 자신이 장담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이 만군득세의 이유가 된 것일까요?
  • 금성천 2012/09/21 15:52 #

    1. 방호산이 어디서 지체를 했나요? 한강 도하시 도하장비 부족으로 약간 지체했었고 호남지방 석권은 상당히 빠른 편이었는데요.

    2. 사실무근인데요. 김정렬 회고록 다시 읽어볼게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3. 세상 사는게 성적, 학벌 순은 아니잖아요. 만군계가 능력도 좋고 세상 사는 수완도 좋아요. 자기들끼리 밀고 당겨주는 응집력 단결력도 대단하고요. 일본 육사출신들은 순진한 편이죠.

    4. 일리있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 갈천 2012/09/24 18:04 # 삭제 답글

    1. 저의 질문의 요지는 방호산의 북괴6사단이 조공으로 서울 하단으로 쳐내려와 퇴각하는 국군을 포위섬멸 하려 했을 것인데, 왜 그것이 좌절되었는가 하는 것이지요. 춘천은 국군 6사단이 북괴군 (2사단?)을 잘 막았는데, 서쪽에서 쳐 내려온 북괴6사단을 막은 아군은 누구인지? 아니면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요.

    2. 김정렬 회고록을 보면 한강 인도교 폭파 전후로 해서 채병덕이 야밤에 자신이 있던 공군부대인지 자신의 집인지로 피신해 와서 한참 좌절해 있길, 용기를 내라고 격려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육,해,공군 총참모총장이란 직책을 자신이 만들어 그 명의로 국군장병을 독려하는 전문도 보내고 삐라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 금성천 2012/09/26 16:41 #

    6사단은 25일 오후 4시 한강변에 도달했으나 한강 하구의 조수간만 차가 크고 도하장비, 훈련부족으로 도하가 지연되었습니다. 6사단의 주력이 도하한 것은 27일 밤부터 28일까지.

    6사단의 김포 반도-영등포 진출을 지연시킨 것은 한강이라는 천연장애물과 급조된 김포지구전투사령부 장병들의 공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포지구 전투사령관중 계인주는 가족들 데리고 도망치고 최복수 중령은 김포비행장에서 전사하고 우병옥 중령은 김포비행장 탈환 실패에 자결하고 그 후 18연대장 임충식 중령과 15연대장 최영희 대령이 김포사를 이끌었죠.
  • 갈천 2012/09/24 18:07 # 삭제 답글

    음. 실수했습니다. 몇일간 도망간 것이 아니고 몇시간 동안...잠시 공군부대로 갔다. 그래도 그건 좀...
  • 갈천 2012/09/27 15:59 # 삭제 답글

    1. 음. 방호산의 한강도하작전 준비가 제대로 안되었었군요. 고맙습니다.
    최복수, 우병옥 중령이...명복을 빕니다.

    2. 근데, 채병덕이 김정렬을 찾아간 것은 약간 비난받을 소지는 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지휘선을 이탈한 것이니까.
  • 실버스타 2012/09/27 17:57 # 삭제 답글

    나는 북한6사단의 한강도하가 지연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선제타격계획은 서울과 주변의 국군을 그물로 고기 몰듯이 몰아서 서울-수원 사이에 대기하던
    모터찌크연대가 국군을 섬멸하는 작전이 아니겠습니까?
    6월27일까지 모터찌크 연대가 수원인근에 도착하고
    6월28일 국군을 한강이남으로 몰아간다는 계획 같습니다.

    모터찌크연대는 홍천으로 우회하여 진출하였으나
    국군 6사단의 선방으로 6월27일 약속장소에 도착하지 못해
    선제타격계획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 금성천 2012/10/02 14:49 #

    북한군 계획대로 6사단이 영등포에서, 모터찌크부대가 수원에서 차단했다면 큰일 났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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