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훈 총리 회고록의 김석원 장군 김석원 장군 이야기

 

신성모 장관께 막 인사를 드리고 있는데 김석원 장군이 들어왔다. 수행원 두세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지휘도를 들고 있었다. 김 장군이 수도사단장에 임명되어 진천 방면으로 나가기 전에 신고차 장관실을 방문한 것이었다.


“장관님. 김석원은 이제 일선으로 나갑니다. 소직(小職)이 전사하면 그 뼈다귀를 북을 향해서 성남중학교 뒷산에 묻어주십시오”


12연대장 시절 내가 사단장으로 모시던 분이니 감회가 깊었다. 수색에서 사단장을 하실 때 고집이 세서 미 고문관과 잘 사귀지 못한 분인데 전선에서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미 고문관과 협조가 잘 되지 않았다. 사실상 잘 될 수도 없었다. 미군 부대가 전선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가능한 한 현 진지를 고수해야 한다고 믿는 김 장군이 군도를 지팡이 삼아 고지에 버티고 서 있으니 연대장이 아무리 급해도 사단장보다 후방으로 갈 수 없고 연대장보다 대대장이 더 후방으로 갈 수 없는 등의 상황에서 우리 장병은 목숨을 걸고 용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무리한 작전지휘가 어디에 있느냐고 미 고문관들의 불평이 대단했다.


한강선 방어 작전에서 세운 김홍일 장군의 공과 같이 김석원 장군의 공도 나는 잊을 수 없다.

<나라를 사랑한 벽창우> 강영훈 p148


덧글

  • 엽기당주 2012/07/09 16:10 # 답글

    저도 성남고 출신이다보니..

    김석원 장군님께서 너무 저평가되는 현실이 가슴아프군요.

    나라와 민족을 위해 6.25때 용전분투한것은 엄연한 사실인데 말입니다.
  • 금성천 2012/07/09 17:16 #

    일본군 출신이라면 친일파라고 밖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단세포들이 너무 많아서 답답합니다.

    일본군 출신이어도 깨끗한 애국자들이 많고 광복군 출신이어도 너저분한 협잡군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인데.
  • Dr.Nam 2012/07/09 17:03 # 삭제 답글

    일제에 관련된 내용과 한국전 당시의 공훈을 별개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중점을 어디에다 두느냐에 많이 달라지겠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에 저런 용장이 있었고 초반의 여러 전투에서 선전을 했다는 것과
    당대의 장병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 금성천 2012/07/09 17:23 #

    그래도 십몇년 전에 비하면 김석원 장군에 대한 평가가 많이 바로 잡힌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인터넷에 친일파 어쩌구하는 인민재판식 선동책자의 내용이 도배가 되다시피 했었죠.
  • 갈천 2012/09/21 11:42 # 삭제 답글

    1. 이 상황은 언제 어느 전장입니까?

    2. 강영훈 장군이 말한 <한강선 방어 작전에서 세운 김홍일 장군의 공>은 어떤 것이 었나요.
    김홍일장군은 어떤 리더쉽을 발휘했나요.
  • 금성천 2012/09/21 16:10 #

    진천 전투 이래 거의 그렇죠. 사단지휘소가 이렇게 뒤에 처져서야 되겠나 하면서.

    유용원의 군사세계 전사란에 가면 제가 올린 글이 있어요. "시흥지구 전투사령관 김홍일 소장"이라는 제목으로. 참고삼아 읽어 보세요.
  • 명탐정 호성 2015/04/26 19:48 # 답글

    생각해보면 저런 무리한 작전을 하다니
  • 못되먹은 북극토끼 2020/11/28 12:48 # 답글

    겁먹고 다 도망치는 판에 저것말고 뭘로 사기를 진작시킨단 말입니까? 현대전에는 안맞는다고 하지만, 저때 한국군인들이 현대인에 가까웠나요, 총도 담보 잡히고 술 사먹던 조선군에 가까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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