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졸을 강병으로 만드는 마력 - 김석원 장군 김석원 장군 이야기

            나를 따르라!


훌륭한 지휘관은 어차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최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부대의 사기를 높이는데 힘을 쓴다. 반면 나약한 지휘관은 두려움이 부대원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곪을 때까지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병사들은 지휘관에 따라 겁쟁이가 되기도 하고 용사가 되기도 한다. 훌륭한 지휘관은 그저 전략을 잘 짜는 재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앞장서서 전투를 이끌어가는 자신의 의무와 특권을 매일 충실히 이행한다. 이렇게 할 때 그 부대에 필요한 요소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춰지는 법이다. 지휘관이 부하들에게 힘을 불어 넣으면 순차적으로 부대 전체가 강해진다.


이상은 콜디스트 윈터(데이비드 핼버스템 저)에 나오는 글이다.



낙동강 전선이 형성되었을 무렵 다부동의 1사단, 신령의 6사단, 영천의 8사단, 기계 안강의 수도사단은 6.25 개전시부터 북한군에게 타격을 주며 효과적인 지연전을 수행한 역전의 부대들이었으나 포항의 3사단만은 후발연대들로 구성된 약체 사단이었다. 그러나 3사단은 김석원 장군이 사단장으로 오면서  강한 부대로 거듭나게 된다.




사단장 이준식 장군이 전출되고  김석원 준장이 우리 사단장이 되면서 궤멸 직전에 있던 우리 3사단은 기사회생되었다.


독석리 해안에서 적전 해상철수를 긴밀하게 단행한 우리 사단은 구룡포 국민학교에서 카이젤 수염을 한 채 자신에 넘치는 음성으로 사자후를 토하는 그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조국과 민족은 5000년 역사 이래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과거 우리 사단 장병들은 깊은 생각 없이 도망치는 사단이라 경멸당해 왔지만 김석원 내가 이 사단에 서 있는 한 이제 그러한 치욕의 호칭은 없다. 도망가는 22연대라는 말이 있다. 도대체 도망가면 이 어려움 속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늘로? 땅속으로? 갈 데라곤 바다 속에 뛰어드는 길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조국을 위하여 싸우다 죽을 것이냐,  비겁하게 바다로 뛰어들 것이냐를 결정하라. 건곤일척 의연한 결의는 여러 장병들에게 달렸으니 나를 따르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요 나를 비웃고 따르지 않는 자는 죽음 밖에 없다.”


실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한 즉흥 연설이었는데 감명 깊도록 심금을 울리고 두 주먹을 꼭 쥐게 하는 명연설이었다.


인민군 5사단과 대치한 우리 사단은 포항 북쪽 4Km 고지에 방어진지를 쌓고 사주방어에 여념이 없었는데 밤이면 26연대(우리 사단에 배속된 광주에서 새로 편성된 약체부대) 앞에 우뚝 선 사단장이 괴뢰군 쪽을 향하여 “산천초목이 떠는 김석원이 여기 있다. 싸울 테면 자! 싸워보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자 적군들은 무슨 꾀임에 빠진 줄 알고 쥐죽은 듯 고요해졌고 적의 미친 듯한 공격도 화력도 잠잠해졌다.


아군 26연대. 그 허약하고 도망 잘 치던 26연대나 22연대 장병들은 김석원 사단장 부임 이후 돌연 사기가 충천해지고 전의가 들끓었다. 오래 동안 포항을 사수하며 버틸 수 있었던 그 잠재력과 괴력이 솟아나오는 원천은 김석원 장군의 지휘 통솔력과 죽음을 무릅쓴 대담함에 있었다.


애국의 화신으로 존경의 마음을 감출 길  없는 카이젤 수염 사단장의 모습이 내 마음을 찡하게 한다.

김상균 중위 당시 22연대 G3 보좌관  <새벽 네시> p48-50 홍익출판사



당시의 사단장은 김석원 장군이었는데 일제 때 일본군 육군 중좌 계급장을 달고 춘천 사범학교에 와서 시국강연을 할 때 한번 본 일이 있는 사람이다. 후퇴를 모르는 일본 육사출신답게 선두에 서서 전투지휘를 잘 해 이만큼 포항 방어를 하고 있다고 장병들이 말했다.

박한진 <노병의 푸른 회고> p217


덧글

  • 엽기당주 2012/08/24 16:26 # 답글

    어떻게 보면 일본육군의 모범 지휘관 스타일이기도 하다보니 미군의 미움을 살수밖에 없었겠죠.

    그러나 나라를 사랑하고 국가의 위난에 맞서 헌신하려고 하셨던 마음만은 누구못지 않으셨던것 같습니다.

    2차대전 후기의 일본군이 추풍낙엽으로 몰리는것을 보고 일본군을 약군이고 지휘관을 죄다 무능력자로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일본육사출신들이 그리 만만한 인물들이 아니었죠.

    일본 군부가 미쳐있어서 그랬지 개인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다고 알고있습니다.
  • 금성천 2012/08/24 17:29 #

    김석원 장군은 부하들의 진심 어린 존경과 찬사를 가장 많이 받은 지휘관이죠.

    전쟁 초기 수도사단장과 3사단장으로서의 재임기간은 2개월이 채 되지 않는데도.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대단했던 분입니다.
  • Lupara 2012/08/24 19:23 # 답글

    마인드 자체야 19세기 내지는 1차대전 스타일이긴 합니다만...(아무래도 출신이 출신이니 만치....)
    그게 사람 하기에 따라선 충분히 효력을 발휘한다는 걸 보여준 예가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친일이네 뭐네 말이 많아도 필요한 시기에 자기 몫 이상을 하신 분입니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를 받아야 할 분이 아닐까 싶네요 ^^
  • 금성천 2012/08/25 13:42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아크리트 2012/08/24 20:13 # 답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말이 많은 사람이더군요.
    툭하면 착검돌격 시켰다는 평도 있고...
  • 금성천 2012/08/25 13:47 #

    맨 처음 진천 전투에서 병사들과 함께 돌격을 해서인지 그런 이미지가 많습니다. 실제 돌격을 강조해서 일명 '돌격장군'

    그런데 작전계획 수립에는 또 굉장히 세심했어요.
  • Bluegazer 2012/08/24 23:21 # 답글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에 이미 '예비대 없는 지휘관은 전장의 방관자'라는 말이 나왔는데 20세기 중반에 예비대 없는 작전 운용을 보여주질 않나, 당장 피난이 시급한 시민들에게 허세 부렸다가 몰려오는 공산군에게 막대한 민간 피해를 입히지를 않나...

    개인적으로,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일본군 출신이라는 '성분'에는 대단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일본군스러운 마인드의 부작용이 만만찮았다는 걸 무시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리더십과 별도로 전술가로서의 능력은 별도로 평가해야 할 사람이 아닐까 하네요.

    솔직히 '총포탄을 두려워하지 않는 멋진 카이저 수염의 장군이 최전선에서 칼 들고 돌격을 이끈다'는 건 분명 용맹하고 낭만적이기까지 하지만, 그게 모범적인 장교의 전형은 아니니까요.
  • 금성천 2012/08/25 12:49 #

    님께서는 한국군의 초기 생성 과정을 모르니까 1사단은 예비대도 두지 않았다는 미군의 악질적 보고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아마도 김석원의 1사단에서는 38선 순찰도 전무했다는 괴악한 내용도 사실로 믿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국군이 38선 경계를 맡게 된 것은 1948년 말부터인데 서해안의 황해도 청단에서 동해안의 양양까지 260킬로미터를 3개 사단이 경비를 맡았습니다. 49년 6월 8사단이 창설되면서부터는 4개 사단이 맡게 되죠. .

    1사단이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킬로미터의 정면을 지키라는 것부터가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말도 되지 않죠. 당시로서는 1사단과 7사단의 예비대 역할을 했던 것이 수경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1949년까지도 38선에 배치된 사단의 임무가 38선 경계 그리고 전면남침에 대비한다기보다는 국지적 분쟁에 대비하는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설령 3개 연대를 병진 배치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흉볼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6사단이 예비연대를 원주에 둔 것도 그리고 260킬로미터 정면에 4개 사단만 배치하고 예비사단을 서울과 전라도 경상도에 둔 것도 잘못이죠.

    저는 이런 것에 대해 국군이 각 도(道)마다 1개 중대로 시작하여 연대로 발전하고 사단이 창설되어 48년 말부터 미약한 병력으로 38선 경비를 맡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리 비판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안동철수 작전의 실패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그것은 김석원 장군의 잘못이 아니라 미8군과 국군1군단의 무리한 명령 때문에 일어난 비극입니다.

    7월 31일 저녁 미8군 사령관 워커가 1군단장에게 8월 1일 새벽 5시 안으로 낙동강 남안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여 군단에서는 회의로 4시간을 소비하고 수도사단과 8사단에게는 1시간의 여유 밖에 줄 수 없었는데 이는 김석원 장군의 예견처럼 무모한 작전으로 실패가 뻔한 것이었고 나폴레옹 황제 모셔다 지휘해도 되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자기 부하들 챙길 시간 여유도 주지 않는데 어떻게 주민들까지 챙겨요?

    이때의 상처 때문인지 독석동 해상철수작전에서 김석원 장군은 단 한명의 주민도 빠짐없이 데리고 철수하죠.
  • 666 2012/08/24 21:49 # 삭제 답글

    김석원 장군의 경우 지연전에는 최적 스타일이죠.
    건제가 무너진 부대를 추스르고 패배감에 쌓인 장병들을 몰아세워 압도적인 적과 전투를 벌이게 하는 카리스마는 아무나 가지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작전능력이나 당시에 꼭필요한 능력이었던 미군과의 연합작전에 부적합한 인물인 관계로 일단 전선이 안정된 후에는 다른장군들 보다 더 못한 모습을 보이죠.

    한국전쟁에서의 김석원장군을 평하자면, 꼭필요한 순간에 등장해서 사라져야할 시기에 사라진 장군이라고 생각됩니다.
  • 금성천 2012/08/25 14:28 #

    '일단 전선이 안정된 후에는 다른장군들 보다 더 못한 모습을 보이죠.' 이건 또 무슨 소리이신지? 김석원 장군 야전에 있는 동안 전선이 안정된 일 있었나요?

    노장이 젊은 사람들에게 밀려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김홍일 장군이나 김석원 장군의 퇴진은 젊은 만주군 패거리들과 미군의 합작이죠.

    미군 입장에서는 영어 잘하고 협조적인 젊은 애들을 키우는 것이 당연히 좋았을 겁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김석원 장군이 너무 지저분한 것들에 의해 밀려 났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의 악영향과 폐습이 국군에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
  • 북곽선생 2012/08/24 21:56 # 답글

    카리스마 쩌는 분이셨군요. 뭐 단순무식하다 어쩌다 하는 평도 보이는데

    당시 한국군의 열악한 장비와 보급조건에서 정신력이라도 끌어내 활용하는 저런 분이 안 계셨다면 무슨 깡으로 버텼겠습니까?

    미군얘기를 하는데 미군과 당시 한국군의 질적차이는 고려 안 하나요? 뱁새가 황새따라가려다 가랭이 찢어진단 말이 있습니다.

    국군이 전체적으로 밀려내려가는 상황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다시 밀고 올라갈 수 있었던 데에는 김석원 장군같은 분의 강한 카리스마식 지휘가 한 몫을 단단히 했다고 봐야 합니다.
  • 금성천 2012/08/25 14:00 #

    김석원 장군 휘하에서 싸웠던 부하들은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데 수십년 후 애송이들이 참 말들이 많죠.

    저 패배감에 쩔은 약체 사단을 그 누가 단번에 사기가 충천하고 전의가 들끓는 사단으로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병사들을 사로잡는 김석원 장군의 능력과 카리스마는 볼수록 놀랍습니다.
  • 비도승우 2012/08/26 17:03 # 삭제 답글

    일본군 자체가 예비대운용개념이 별로 없었죠. 주로 단기결전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으니

    김석원장군의 예비대운용문제는 "자연스러운"현상이었을수도 있죠. 친일여부를 떠나 객관적인 공만보면

    정말 인물은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중일전쟁시 일화들이나 독석동의 완벽한철수만 보아도 자질논란은

    거론되는거 자체가 넌센스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어떤장군도 패배나 실수는 있기마련인데 그걸 너무 부각하고 공을깎는건

    더욱 넌센스이구요.
  • 금성천 2012/08/27 14:31 #

    악의적 의도로 작성된 김석원 장군에 대한 미군 보고서를 맹신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김석원 장군에 관해 한국군에 전해져 온 전설은 애써 무시하고 미군의 쓰레기 보고서는 믿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죠.

    그 엉터리 미군 보고서에 관한 글을 조만간 올려야겠어요.
  • 갈천 2012/08/27 12:41 # 답글

    1. 하도 김석원장군을 비웃는 글(무모한 돌격대장, 정신승리)을 봐나서 객관적으로 그를 평가한 근거를 여러개 보고 싶습니다.
    지금 소개한 글은 김석원을 높게 평가한 단 한두개의 글 중 하나에 불과한 것 아닌가요?
    게다가 야전에 근무한 기간이 2개월 정도 밖에 안됐다면 금성천님의 평가는 과장된 것 아닌가요?

    저는 사실 김석원 편이고 싶습니다. 일본군,만주군 출신들이 6.25전쟁때 조국을 수호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김석원 장군을 높이 평가하는 여러개의 다각적인 근거를 보고 싶습니다.

    2. 위에서 김석원 장군이 만군계 후배들에 의해 밀려났다고 하셨는데 정일권씨인가요?
  • 금성천 2012/08/27 14:45 #

    1. 김석원 장군 이야기라는 카테고리로 계속 올리려고 합니다. 6.25 때 김석원 장군의 야전 기간이 2달이 되지 않는데도 수많은 일화와 부하들의 찬사가 있는 것은 그가 보통 지휘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몇년간 야전에 계셨던 장군들에 대한 부하들의 찬사를 찾으려 해도 그리 많지 않아요. 그런데 김석원 장군에 관해서는 유별나게 많습니다.

    2. 에이, 다 아심시롱......
  • peachtree 2016/08/18 01:13 # 삭제

    그만두게 된것은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께서 일본 군 출신들을 아주 싫어 하셨습니다.
    특히 미국 고문관을 작대기로 네가 뭘아느냐고 핀잔을 준것이 빌미가 된것이죠.
    미국의 압력이 컷다고 봐야 합니다.

  • Dr.Nam 2012/09/05 08:53 # 삭제 답글

    ^^
    갈천님~ 채명신 장군 회고록이나 백선엽 장군 회고록만 봐도 작은 구절 또는 소소한 일화를 통해서 대략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채명신 장군은 1시단 11연대 중대장으로 송악산 전투 등에서의 김 장군과의 일화를 올려놓았으니까요.

    저는 금성천 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
    불과 개전 초기 7~8월 2개월간 수도사단과 3사단을 지휘하면서 그가 남긴 일화와 부하들의 찬사는
    분명 과장된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평가라는게 대부분 비슷하게 간다면 실제로 그러한 거라 생각하거든요.
    열의 한 둘만 좋은 평가를 남긴다면 모를까.
    당대에 실제 인물과 같이 지낸 사람들의 평이 가장 정확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에서 미군의 보고서는 일단 1차 자료이기 보단 2차 자료라 생각해야 하는 것이
    피지원국의 장군인데다... 2차대전 패전국의 장교였고.... 그것도...일본군이었구요...
    일본군의 교리를 무시하는 경향에 신생 한국군의 지휘관이라는 관점까지 더 해졌을 때
    과연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졌을지는 의문입니다.

  • 친일파김석원 2013/07/09 18:18 # 삭제 답글

    공만 늘어놓고 과는 어디로... 아무리그래도 친일파는 용서못합니다
  • peachtree 2016/08/14 01:06 # 삭제 답글

    저는 아버님이 일본에서 만주에서 그리고 그리고 한국에서 전쟁을 실제로 경험하셨던 분입니다.
    한국 전쟁은 경찰로 공직생활을 하실때 경험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항상 말씀하셨죠
    우리나라는 김 석원 장군님이 포항 전투에서 무정이를 막지 않았다면 부산함락되고 적화 되었다고 말씀 하셨죠
    일제 때 일본 육군 사관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정말 수재중에 수재가 아니면 불가능했다고 하셨죠
    저는 무지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경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친일이니 프리히드어쩌구니 평가니 정말 어이가 없는 수박 겉할기라고 해야 하나요
    미국 고문관 이런 애들이 전쟁에대해 뭘 알겠습니까.
    저는 미국에 살지만 미국아이들 3%를 제외하면 정말 무지한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미군 평가 보고서 얼마나 한심한 인간들이 만든건지 안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이 진것은 작전에서 진게 아니라 보급이 끊겨서 진거죠
    미국은 단순하게 말해 보급 때문에 이긴 겁니다
    김 석원장군님의 나라에 대한 진성성이 매도 당하는 것이 아타깝지만
    올리신 글들을 읽으면서 나의 아버님의 실제 경험한 이야기들이 다시 생각 납니다.
    알지도 못한것들이 항상 입만 나불나불 댄다고 하셨죠
    귀한 글들을 올려 주셔서 많은 사실을 알고 정말 감사합니다.

  • 못되먹은 북극토끼 2020/11/28 12:43 # 답글

    우연히 김석원 자서전 보고 자료찾다 금성천님 사이트로 왔습니다. 찬찬히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