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획한 북한군 지프를 타고 온 김석원 수도사단장 김석원 장군 이야기


수도사단 직할부대인 학도병, 민간인으로 편성된 호림, 백골, 영남부대가 길안국민학교 운동장에 집합했다. 안동에서 철수한 사단 주력은 낙동강 남안의 방어로 다소 전선이 소강상태였기 때문에 사단장에게 얼마간 짬이 생겼고 그를 따르는 민간인 부대원들을 격려하기 위한 사열이었다.


하오 3시. 김석원 장군이 괴뢰군으로부터 노획한 소련제 지프를 타고 사열장에 당도했다. 철모와 작업복 차림의 장군은 야전지휘관으로서 그 풍모가 사뭇 당당했다.


장군 특유의 카이젤 수염은 마치 용미(龍尾)에 범(虎)이 앉은 것 같아 학도병으로서는 그의 그런 위엄이 하나의 신비였고 또 마력이었다.


사단장은 짧은 격려의 훈시를 끝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와 학도병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았다. 무언의 악수였지만 학도병들은 감동과 감격으로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학도의용군> p96-97 

이병형 장군의 명저 <대대장>에 의하면 지연작전시 수도사단 18연대 차량의 절반은 북한군으로부터 노획한 소련제 차량이었다고 한다.


 

              김석원 장군과 그를 따르던 최경록 대령

덧글

  • 조은성 2012/09/07 20:50 # 삭제 답글

    짚차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전쟁 당시 우리보다 계급이 낮음에도 미군장교가 상석에 타고 다녔다는...
    그래서 나중에 채명신 장군이 월남가서는 원칙대로 했다고 하죠...
    채장군 회고록을 보니 20사단장을 본인에게 통고도 하지 않고 경질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것도 사단 장병들이 보는 앞에서 쪽팔리게...
    미군이 육본의 정식명령계통을 무시하고 본인에게 직접 통보하는 것을 않좋게 생각하시더라는...
  • 금성천 2012/09/08 14:04 #

    채명신 회고록에 보더라도 그 콩나물 Y 장군이 좀 답답하긴 하더라구요. 채대령 왈 "조금 있으면 중공군이 사단장님을 모셔 가시겠습니다" "에이,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릴"

    침술이나 동양학(?)에 관심이 많았고 말년에는 도장방을 차렸었다는 후문이 있더군요.
  • 공손연 2012/09/15 16:25 # 삭제

    이것만큼은 이해는 되더군요.어찌되었건 지휘를 하고 있는 입장이고 패전책임을 물어서 짤라버리는것은 당연하고 그래야 뭔가 돌아가지 안그러면 베트남전과 같은 꼴이 되었을듯요.
  • 조은성 2012/09/08 20:40 # 삭제 답글

    그래도 유장군은 11사단, 6관구사령관, 1사단장, 6군단 부군단장, 공병감 등을 지내고 석탄공사총재까지 역임한 것을 보면 그렇게 운나쁜 케이스는 아니었던 듯...
    군에 들어올때는 학병장교출신임에도 일부러 사병으로 들어갔다가 단번에 장교로 임관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더군요.
    그리고 사실 억울한게 창설된지 얼마 안된 실전경험이 부족한 사단을 곧바로 중공군과의 전선에 투입한 미군측이 너무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군단장 자신도 부대의 훈련수준이 부족함을 알고서 연대 훈련계획을 직접 하달했다가 연대장인 채장군에게 까인 것을 보면 처음부터 유장군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게 경질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 Dr.Nam 2012/09/11 12:25 # 삭제 답글

    백선엽 장군 회고록에 보면 김석원 장군이 수도사단장으로 복귀하자 많은 장교들의 그의 휘하로 가길 원했고 그 중의 한명이 최경록 연대장이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저 사진속의 한 분이 그 분이었군요 ^^
  • 금성천 2012/09/11 15:44 #

    사진 왼쪽 전화기 들고 계신 분이 지원병 1기 출신 최경록 육참총장입니다. 오른쪽은 아마도 고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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