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 금성전투 수도사단의 예비연대 투입 실패 한국전쟁

 


1953년 7월 13일 21:00에 돌연 수도사단 진지 지역에 중공군의 포화가 일제히 작렬하기 시작했다.


중공군은 기만수단의 하나로 먼저 포화력을 제26연대 정면에 약 30분간 집중한 후 제1연대 정면으로 그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이 포격에 뒤이어 주력이 수도사단의 제1연대 중앙 및 우일선 대대로 밀어닥쳤다.


이때 사단 FSCC는 26연대에서 들어온 “중공군이 새까맣게 밀려옵니다.”라고 하는 과장된  상황보고를 그대로 믿고 가용한 전 화력을 제26연대 정면으로 집중하였다. 수도사단장 최창언 준장은 제26연대의 과장된 상황보고와 양공, 양동을 적절히 구사한 중공군의 기만전술에 의해 중공군의 주공방향을 역으로 판단한 것이다.


1연대의 급보를 접한 사단장은 23:30에 예비연대장 육근수 대령을 불러 1개 대대로 제1연대를 지원하도록 명령하고 부사단장 임익순 대령을 제1연대 CP로 보내 예비대의 역습 방안을 현지에서 조종하도록 조치하였다.


예비연대인 기갑연대장 육근수 대령은 사단장 명령에 의거 14일 00:50에 사단 사령부 1.2킬로미터 우측방에 있는 연대 CP에 집결한 제2대대를 사단에서 지원된 22대의 차량에 승차시켜 제 1연대 제2대대 CP를 목표로 출발시켰다.


연대장은 본대보다 한발 앞서 제1연대 CP로 달려가 제1연대장 최세인 대령과 역습부대 투입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이 협의에서 제1연대장은 정면역습을, 기갑연대장은 중공군의 남진대열의 우측방 공격을 각각 주장하여 의견이 엇갈렸다.


이를 조정하지 못한 채 기갑 제2대대는 기갑연대장의 지시대로 중공군 공격대열의 우측방을 공격할 위치를 잡기 위하여 우인접 사단(6사단) 지역내에 있는 월봉리 쪽으로 계속 이동하였다.


이때 제1연대 CP에 도착한 부사단장 임익순 대령의 조정으로 다시 제1연대의 역습방안이 채택되어 제 2대대의 차량대열은 월봉리에서 되돌아서게 되었다.


대대는 그곳에서 후미인 제8중대가 선두가 되어 오던 길로 되돌아가 0330경 117A도로에서 연대 CP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하여 제1연대 CP로 이어진 주보급로로 들어섰다. 이 도로는 바로 중공군 대부대가 6열종대로 남하하고 있는 도로와 맞닿은 도로이다. 이 길로 중공군은 내려오고 기갑연대의 역습부대는 올라갔다.


기갑연대장은 제1연대의 본부 및 근무중대 병력을 연대 CP 북쪽 도로의 교량부근에 배치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여 막 도착한 제2대대를 동 교량의 좌우능선에 배치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기갑연대장은 급히 연대 CP를 떠나 이천동으로 달려가 그곳에 제일 먼저 도착한 제8중대장을 만나 그가 도상에서 선정한 진지를 정찰하라고 지시하고 후속중대의 도착을 기다렸다.


1연대장 최세인 대령은 연대 CP의 경계를 위하여 연대의 경비소대를 제외한 본부 및 근무중대 병력을 약 1킬로미터 북쪽의 교량을 지키도록 출동시키고 기갑 제2대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이곳을 목표로 밀물처럼 남하하던 중공군(6열종대로 남하한 중공군)은 본부 및 근무중대가 배치되어 있는 저지선을 통과하여 일부 병력은 연대CP 바로 앞에 이는 419고지를 점령하고 일부 병력은 연대 CP의 뒷산으로 숨어들어가 CP를 완전히 포위했다.


04:00을 기하여 이 중공군의 일단은 동시 다발적으로 1연대 CP의 여러 곳을 일제히 기습하였다. 정문 보초가 쓰러지고 수송부의 차량이 불붙고 탄약고가 폭발하는 등 일시에 연대CP는 수라장으로 돌변하였다. 1연대 CP와 같이 위치한 제10포병대대 CP도 동시에 기습을 받았다. 사방에서 피리와 나팔 소리가 나고 박격포탄이 터졌다. 몇 분 내에 중공군이 연대 상황실과 포병10대대 사격지휘본부로 달려들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전개로 부사단장 임익순 대령을 비롯한 연대장 최세인 대령과 부연대장 김성환 중령 및 S3김형욱 소령 등 연대지휘부 요원들은 일단 이 포위망의 탈출을 감행하였다. 그리하여 연대CP의 남쪽 산록을 거슬러 오른 이들은 비오는 어두운 밤에 방향을 못 잡고 헤매던 중 부사단장 임익순 대령이 실종(포로 당함)되고 연대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병력은 미군 포병진지가 있는 간진현 부근으로 빠져나왔다.


한편 동시에 피습을 받은 포병 제10대대의 지휘부 요원들은 피습 직후 탈출 중 중공군의 사격을 받아 분산되었으며 이때 대대장 김천근 중령과 부대대장 겸 S3인 김종오 소령이 전사하였다. 이렇듯 10대대지휘부 요원이 활로를 찾아 헤매고 있는 동안에 월봉리 부근에 포진하고 있던 포대들은 포대장들의 기민한 판단으로 철수를 개시하여 사단 사령부 부근에 무사히 집결하였다.


기갑 제3대대는 8중대의 일부 병력이 정찰에 나서고 후속 7중대가 막 도착하여 병력이 차량에서 하차하려는 순간, 주변 능선에 대기중인 중공군으로부터 기습사격을 받았다. 이때가 1연대CP가 피습을 당한 바로 그 시각이었다.


이 기습사격으로 연대장 육근수 대령이 전사하였다. 이때 옆에 있던 7중대의 무반동총반원 서성찬 일등병 등 3명은 연대장의 시체를 후송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그들마저 모두 전사하거나 다치는 바람에 연대장의 시체는 하풍동 부근의 이름 없는 산골에 묻히고 말았다. 7중대는 중대장 강상섭 대위가 실종되고 소대장 전원이 죽거나 다쳤다.


뒤이어 당도한 대대장 박기순 중령은 S2인 서성인 중위에게 7중대를 지휘하게 하였다. 그 후 기갑 2대대의 잔류병력은 남쪽의 산 속으로 남하하였으며 일출 후인 08:00에 약 3킬로미터 후방의 119번 도로 우측에 있는 462고지(6사단 지역)에서 겨우 부대를 수습하였다.


14일 02:00, 기갑연대 제1대대는 사단장으로부터 “제59전차중대의 1개 소대를 통합지휘하여 제26연대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것이 사단의 마지막 예비대 투입이었다.


대대는 전차소대의 도착이 늦어져 04:00에야 제26연대의 제2저지선(노동-462고지선)을 목표로 집결지를 출발하였다. 이때까지도 사단장은 제26연대 쪽의 상황이 더 위급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이는 제26연대가 사단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상황을 과장보고한 데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04:00경 사단장은 제1연대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간파하고 제26연대지역의 노동 부근까지 진출한 기갑 제1대대를 제1연대 쪽으로 돌려 제1연대를 지원하도록 임무를 변경시켰다.


이리하여 기갑 제1대대는 이 임무병경에 따라 117A도로로 동진하여 06:00가 조금 넘어서 간진현에 도착하였다. 대대는 그곳에서 제1연대 CP와 기갑 2대대의 피습상황을 참모장 김태규 대령으로부터 들었다.

<한국전쟁전투사 금성전투> p 125-128



덧글

  • 갈천 2013/08/22 23:02 # 삭제 답글

    최근 신동아 이정훈기자 블로그에 임익순 대령의 회고록 서평을 올려놨습니다만(http://blog.donga.com/milhoon/archives/2163)
    혹시 국방부의 기록에 우리군의 부끄러운 모습이 일부러 누락되어 있는것 아닌지 걱정됩니다.
  • 금성천 2013/08/23 15:27 #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금성전투에서 수도사단의 실수에 대해서는 공간사에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수도사단의 금성전투를 이해하기 쉽게 공간사와 개인의 기록들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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