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 금성전투 너무 늦은 수도사단의 예비대 투입 한국전쟁



다음은 수도사단 제1연대 제2대대장이었던 김영길 중령의 수기다. 큰 피해를 입었던 당사자의 글이기에 다소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면이 있으니 감안하고 보면 좋겠다.
 



중공군은 26연대 정면을 내리치는 척 하면서 진짜로는 1연대 정면으로 내리질렀다. 그러니까 한국군의 화력이 모두 26연대 정면으로 돌려져버리고 1연대 정면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시각에 중공군은 2개 사단 병력으로 제1연대의 정면을 단숨에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수도사단 사령부에서는 26연대장의 기묘한 전황보고에 따라 26연대 진지가 중공군의 주공방향인 것으로 오인하고 말았다.


후일 사단 사령부에서 관계 참모들도 제26연대장의 터무니없는 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였으나 ‘기왕에 지난 것이니......’하며 어물어물 덮어버렸다.


시각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단장은 제26연대가 당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제1연대가 당한다고 하니 도무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예비대인 기갑연대장 육대령이 사단장 앞으로 넌지시 다가섰다. “각하. 우리 연대가 일찌감치 앞으로 나가 대기하는 것이 어떨까요? 1연대와 26연대 바로 뒤에 중간지대 쯤 나가있다가 필요할 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여보, 잠자코 있어.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태세나 잘 갖추고 있으란 말이요”하고 성가신 파리 떼를 후려쳐버리듯 딱 잘라버렸다.


기갑연대장은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컴컴한 가운데 비 내리는 바깥을 내다보는 육대령 눈에는 멸시, 경멸 그리고 노여운 불빛이 튕기고 있었다.


육대령은 전투지휘관이라는 명제에 잠깐 생각이 미쳤다. 극단에서 극단. 순간적인 판단으로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전투라는 것. 운명을 결정할 아슬아슬한 순간을 전기라고 했다.


백척간두, 위기일발. 이 중요한 시간과 공간의 다스림은 천재적인 요소가 요구된다. 바다에 우뚝 선 암석이 파도를 다루듯 지휘관은 용기와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두뇌의 냉정성을 가져야 한다.


오판에 의한 결정권 행사와 더불어 시기를 놓친 결정권 행사는 적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육대령은 이러한 생각에 잠기다가 어차피 이번 전투에는 “숙명과 같은 멍청스러운 존재가 될 수는 없다”고 다짐해 보는 것이다. 육대령은 과거의 사단장인 이장군 또는 송장군의 전술적인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이장군이나 송장군 이었다면 이와 같이 숨통이 막힐 조치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슬기로운 용병술을 구사했을 터인 즉......’


정보참모는 오랫동안 그 직책에 있었던 관계로 제26연대장과 제1연대장의 체질과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척척 들어오는 보고들은 그가 짐작한대로 제26연대장의 보고가 엉터리였고 제1연대장의 보고가 사실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지체 없이 사단장을 향하여 “제26연대보다는 제1연대가 한결 위급하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런데 최장군의 어지러운 정신은 정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최장군은 갈피를 못 잡고 그만 암초에 걸리기 시작했다.


사단장은 안간힘을 다하여 암흑 속에서 생각나는 한 가닥을 가까스로 다시 붙들었다. 좀 전에 정보참모가 강력히 주장한 “1연대 쪽이 중대한 국면에 빠졌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비로소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출동이다. 예비연대를 제1연대 지역으로 출동시켜라” 새벽 1시였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은 것이다. 이미 때가 늦은 후에 약속된 지점까지 가서 어쩌면 그렇게 되겠거니 하는 무책임한 조치였다.


기갑연대장 육대령은 그의 부대를 앞질러 자기 지프로 먼저 1연대장실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부사단장 임대령과 육대령은 약간의 입씨름을 하였다.


“부대가 도착하는 대로 신속히 역습을 해야 할 것이요.”하는 부사단장의 의견인 반면,


“역습보다는 예비진지에 배치해서 적이 더 이상 남진을 못하도록 저지해야 할 것이요.”하는 기갑연대장의 의견이었다.


이와 같은 부대 운용방법에 대한 엇갈리는 의견으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기갑연대장은 캄캄한 밤중에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우세한 적의 병력에 대한 역습은 불가능하다는 것, 효력을 바랄 수 있는 방법은 예비진지에 배치하여 저지하는 길 밖에 없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부사단장은 방어진지 안으로 침입한 중공군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옥신각신하는 그들 모양을 바라본 1연대장은 도착하게 될 병력이 있는 곳으로 가서 토의하라고 요구했다.


육대령이 부대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1연대장실을 나오고 있을 때가 새벽 2시 경이었다. 그가 지프를 타고 헤드라이트를 비추어가며 백 미터 지점까지 이르렀을 때 그곳까지 진출했던 중공군 선봉대가 뿌려대는 기관총 탄환을 맞고 그는 황급히 자신의 권총을 발사하였으나 운전병과 함께 죽고 말았다.


진실한 전투지휘관이 돼보려고 애를 쓰던 성실한 육대령은 상관의 무능한 판단착오로 어처구니없게도 죽음을 당했다. 

<전장> 김영길(당시 수도사단 제1연대 제2대대장) p567-591




덧글

  • 북곽선생 2013/08/23 23:11 # 답글

    오랜만의 업데이트가 반갑군요. ^^
  • 금성천 2013/08/24 14:25 #

    반가워하시는 분이 계시니 고맙습니다. 그동안 너무 딴 데 정신이 팔려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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