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전투 1연대장과 기갑연대장의 의견 대립 한국전쟁

 

이천동의 제1연대 CP로 달려간 연대장 육근수 대령은 그곳에서 제1연대장 최세인 대령 및 그 참모진과 더불어 적정 판단과 예비대 투입방향을 협의하게 된 바 양 연대장의 심각한 의견대립을 보게 되었다.


기갑연대장 육근수 대령은 적정 판단과 예비대로서의 능력발휘를 감고(勘考)한 결과 흉산(胸算)하기를 “적의 공격 주력이 제1연대의 중앙인 제1대대의 정면에 지향된 듯 한 바 이 적의 예기(銳氣)로 보아 정면대결로는 승산이 서지 않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적의 예기를 피하여 그 측배를 찌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라고 내다보고 연대의 제2대대로써 Iceland선을 따라 552고지(제1연대 2대대OP)-512고지(동연대 제1대대OP)의 축선으로 동에서 서로 적의 측방을 공격케 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며, 제1연대장 최세인 대령은 전황의 긴급성에 비추어 “현재 당면한 급선무는 연대 CP 정면의 제1대대 전선을 수습하는 것이다. 그런 고로 마땅히 동 대대 정면의 적세(敵勢)를 저지함으로서 견인지구(堅引持久)하여 날이 밝기를 기다린 다음, 별도의 대책을 강구함이 타당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적세에 대한 정면 격퇴안을 내세운 것이다.


이리하여 이 두 개의 역습방안이 상충을 빚는 가운데 기갑 제2대대는 당초의 집결지인 이천동 직목동 간의 본도상(本道上)의 제1연대 제2대대 CP와는 달리 기갑연대장의 복안을 쫓아 552고지로의 투입을 예정하여 월봉리 쪽으로 향진(向進)중이었으니 이로써 각일각(刻一刻)으로 파국을 최촉(催促)케 하였다. 대저 “두 사람의 양장(良將)이 한 사람의 우장(愚將)만 못하다“라고 하였음은 정녕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급기야 사단 CP로부터 급착(急着)한 부사단장 임익순 대령의 조정으로 제1연대장의 방안을 따르기로 결정을 보게 되었으나 이때가 03:00에 가까울 무렵으로서 기갑 제2대대는 단일 기동로인 117번 도로상에서 철수중인 일부 포병과 엇갈려 우중(雨中)에 기동의 제약을 받아가면서 월봉리에 이르렀던 것이다.


따라서 대대는 그곳에서 행수(行首)를 되돌려 이천동으로 지향케 된 바 당초 제5,6,7,8중대의 순(順)이던 기동대열이 역순으로 변환되어 제8중대를 선두로 이천동에 집결케 되었는데 선두인 제8중대가 이천동 마을의 본도상에 당도한 것은 03:00 전후였다.


이에 연대장은 이미 제1연대 본부, 근무의 양개중대 병력을 저지선 급편에 투입할 정도로 상황이 급전된 까닭으로 대대의 역습시기를 놓쳤다고 판단하고 제1연대 정면에서 방어에 유리한 지형- 동연대의 본부중대와 근무중대가 액수(扼守)중인 교량 좌우의 능선-에 저지진지를 점령하여 그 선에서 적을 막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연대장이 대대를 직접 지휘키로 하고 제1연대의 CP로부터 이천동 마을로 달려 나가 그곳에 먼저 도착한 제8, 제7 양 중대를 일단 집결토록 하여 화기 진지 점령을 위한 지형정찰에 임하게 하고 대대장과 함께 기동중인 제5, 제6 양 중대의 추급(追及)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리오, 이때 이미 이천동 동북쪽의 고지와 능선 일대의 산복(山腹)에 적의 독아(毒牙)가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제8중대의 일부가 도로정찰에 나서고 제7중대가 이제 막 도착하여 그 병력이 차량에서 하차하는 찰나, 이천동 마을 동북쪽 능선 일대에서 대기중인 적 일단으로부터 급사격으로 말미암아 야암(夜暗)인데다 정정불명의 상태에서 복격(伏擊 매복공격)을 당한 셈이 되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말았으니 이때에 제1연대의 CP가 적의 포위공격을 받은 바로 그 시각이었다.


이에 연대장 육근수 대령이 적의 불의의 화력급습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제7중대의 대열 속으로 뛰어들어 폭우와 같이 쏟아지는 철화(鐵火)를 헤치며 흩어지는 제7, 제8 양 중대의 대오를 손수 수습하는 일방, 제2대대장 박기순 중령으로 하여금 후속중인 제5, 제6 양 중대를 지휘하여 그 적을 막도록 하고 일단의 병력을 이끌고 적의 화망에서 벗어나던 중 아뿔싸 적탄이 그의 가슴을 관통하고 말았다.


이에 제7중대의 57밀리 무반동총 탄약수인 서성찬 일등병 등 화기소대원 3명이 연대장의 유해를 수습하여 사단으로 운구타가 도중에 그 운구병마저 모두 죽고 다치는바 되어 끝내 그는 운구병과 함께 하풍동 부근의 이름 없는 산골에 묻히게 되고 말았다고 하거니와 뒷날 그는 준장으로 진급과 함께 금성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한국전쟁사 9권 對陣末期>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p557-559





덧글

  • 북곽선생 2013/08/27 21:00 # 답글

    이런걸 보면 죽고사는건 운명인가봅니다. 전투가 참 정확하고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군요.
  • 금성천 2013/08/28 16:12 #

    사실 순식간에 일방적으로 당한 전투인데 그나마 증언이나 기록을 남긴 분들 덕에 이 정도라도 알 수 있는 거죠.

    그래도 의문스러운 점들이 있어요. 1연대장이나 기갑연대장이나 저렇게 티격태격할 여유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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