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시간을 허비한 기갑연대 제1대대 한국전쟁

 

7월 13일 해가 떨어지자마자 온통 하늘이 새빨개지도록 적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평소 적은 여명에 공격하기 위해 밤 0시가 넘으면서 포사격을 시작한 후 새벽 3, 4시경에 공격을 개시했던 것으로 보아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병사들에게 즉각 출동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춘 후 취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사단에서는 밤 0시까지 아무런 지시가 없다가 영시가 지나자 작전참모로부터 “전차 1개 소대를 보낼 테니 어디서 인수하겠는가?"는 전화가 왔다. 작전참모는 ”갑자기 전차는 왜 보내느냐?“는 나의 질문에는 대답도 않고 막무가내로 ”어디서 받겠느냐?“고만 물어 대대가 있는 도로변에서 받겠다고 했다.


그 후 아무런 지시가 없다가 새벽 2시쯤 “제26연대 주저항선 일부가 피탈되었으니 제26연대장 지휘하에 들어가 피탈된 지역을 역습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다. 


그래서 부대대장에게 대대병력을 인솔, 공격대기지점까지 이동하게 하고 나는 지프로 제26연대 지휘소로 갔다. 가면서 보니까 제26연대 병력은 철수하느라 도로변에 깔려있었다.


제26연대장에게 도착 보고를 하니 그는 지도를 펴놓고 제26연대가 확보하고 있는 지역과 피탈된 지역을 가리키며 “피탈지역을 역습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연대장님. 지금 연대의 상황이 어떠한지 아십니까?”하고 반문했더니 “확인해보지 못했고 전화로만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밖에는 제26연대 병력이 철수하느라고 길을 메우고 있다”고 알려준 후 역습을 감행하기 위해 공격 대기지점으로 가는데 사단 참모장이 나를 뒤쫓아 와서 “지금 26연대보다 제1연대가 큰일이다. 1연대지휘소가 적의 기습을 받아 부사단장이 행방불명되고 기갑연대 제2대대도 기습을 받아 대대장도 행방불명되었으니 지금 빨리 역습을 해 제1연대 지휘소를 회복해 달라”는 것이다.


전에 나에게 하달된 명령은 “삼거리까지 철수하라”였다. 그래서 병력을 빼서 삼거리까지 철수하니까 제1연대로 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병력을 다시 전방으로 이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낭비된 시간과 병사들의 체력소모는 어떻게 하는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때는 벌써 날은 훤해지고 있었다.


전차 1개 소대를 앞세우고 제1연대 지휘소로 가는데 안개가 짙게 깔려있었다. 말고개에서 삼거리와 합류되는 지점까지 갔다. 여기서 제1연대지휘소는 약 4.5킬로미터 거리이다.


제1연대 지휘소 못미처에 있는 고지까지 진출해서 보니 중공군이 새까맣게 몰려와 교전이 벌어졌다. 적은 포사격을 계속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전에 구축한 방어진지가 아니기에 겨우 자기 몸을 보호하는데 급급했다.


당시 수도사단장은 C였다. 어떻게나 무지스러운지 현 전선을 방어하기에도 힘겨워 전력을 쏟고 있는데 공격을 하라는 것이다. 이때 우리에게는 공격할 병력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공격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건의하면 “명령에 불복하면 총살시키겠다.”며 하도 귀찮게 굴어 나중에는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사단장의 속셈은 “수도사단 반격개시”라는 허명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능력을 초월하는 행위였다. 사단은 능력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대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소수의 병력으로 현 전선을 유지해야 하는 처지에 개인의 허명을 얻기 위해 용납할 수 없는 공격명령을 하달한 것 같다.

<노병들의 증언> 윤흥정(당시 기갑연대 제1대대장) p730-732



덧글

  • Dr.Nam 2013/09/06 07:53 # 삭제 답글

    혹시 저래놓고 나중에 태극무공훈장 받은 C장군인가요? 제가 알고있는 것이 맞는지 모르지만... 한국전 당시 장군들의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인 것 같습니다.
  • 금성천 2013/09/06 14:12 #

    최석 말고 다른 C이니까 생각하시는 그 분 맞을 겁니다.

    무려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는데 그 소감이 "별로 한 것도 없는 나에게 태극훈장이 수여되었는데 일장공성(一將功成)에 만골고(萬骨枯)라는 옛말이 문득 생각나 가슴이 쓰라렸다."
  • 발꼬락 2013/09/06 14:14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금성천 님의 글을 열렬히 탐독하는 사람의 한명입니다.
    구글어스로 해당 지역을 찾아보는데 잘 안되네요.
    당사자는 최 OO 장군 같군요.
  • 금성천 2013/09/06 15:52 #

    저도 구글어스로 보았는데 참 찾기 힘드네요. 강원도 철원군 중치령을 치면 중치령이 나오는데 표시된 곳이 1연대 1대대와 2대대가 구분되는 도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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