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장교가 본 기갑연대장의 마지막 한국전쟁

 



이틀 전에 기갑연대 역습을 지원하기 위해 갔던 관측반이 초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물론 타고 갔던 차도, 장비도 모두 없이 카빈총 하나씩만 메고 부대로 돌아온 것이다. 전포대장과 지휘소대장 그리고 관측반의 통신병, 연락병 등 네 명씩과 운전병 모두 열한 명이 고스란히 살아서 부대로 돌아왔다. 무엇이 아까우랴?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고맙다. 먼저 취사반에다 밥부터 준비하라고 시키고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지난 이틀 동안 나는 정말이지 기진맥진이었다. 자, 이제 기갑연대에 지원나갔다가 살아 돌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기갑연대를 찾아 바쁘게 가고 있는데 갑자기 기관총 세례가 퍼붓는다. 오른쪽 언덕에서의 기습공격이었다. 급히 길 왼쪽으로 모두 뛰어내렸다. 총알 사이를 뚫고 조금 앞의 다리 밑으로 기어가는데 기갑연대장과 연대 참모들이 모두 거기 있었다.


제1연대의 뚫어진 전선을 방어하기 위해 출동하는 역습부대가 움직여 보기도 전에 적은 온 전선을 휩쓸어버린 것이다. 연대장은 속수무책이었다. 권투 선수가 장갑을 끼고 링에 오르기도 전에  KO를 당한 꼴이다. 이미 전 전선은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보병연대는 걸어서 싸우는 도보부대이다. 행동이 빠를 수 없다.


부관은 연대장 얼굴에서 비장한 각오가 선 것을 읽었다고 한다. 이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패전의 장수였다. 연대장 육근수 대령은 고매한 선비 같은 사람이었다. 연대장이 우리 부관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 연대가 역습할 기회를 놓쳤고 이제 어떻게 해 볼 길이 없으니 자네들은 포대로 돌아가라”


우리 부관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임을 깨닫고 연대장에게 말했다. ‘......그러면 저희들은 돌아가겠습니다.'


이미 온 천지는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리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리고 이 난리 중에 우리 포대가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부관과 지휘소대장은 관측반을 데리고 사단사령부가 있는 남쪽 방향으로 직접 빠져나가기로 결심했다. 떠나기 전에 가지고 온 장비를 적의 수중에 넘기지 않도록 파괴했다. 차 타이어를 쏘아 납작하게 만들고 차에 실린 무전기를 총으로 쏴 부수었다.


다리 밑 기갑연대 본부를 뒤로 하고 남쪽으로 길을 재촉했다. 그것이 기갑연대장과의 마지막이 될 줄 그들은 몰랐다.

<어떻게 지킨 조국인데> 이돈형(당시 61포병대대 포대장) p21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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