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사단 포병 T34 대열과 맞닥뜨리다 한국전쟁

 

 9연대장 윤대령이 직접 지휘하는 1대대가 포천가도 우측 산악으로 올라가고 3대대가 그 좌측 야산으로 들어가게 될 때 이미 2대대는 거의 다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이때 후방에 남아있던 김중위는 전방에 나간 윤대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야포대를 신속히 인수해 올 것. 통신선을 사단본부에 직접 연결시킬 것. 현지에서는 적 포격을 받고 눈코 뜰 사이가 없다."


 독촉을 받은 김중위는 계속해서 사단 사령부에 야포대의 지원을 요구했다. 10시쯤 되어 105mm포 5문과 탄약차 2대가 포함된 야포부대가 9연대 본부(금오리) 앞에 나타났다. 김중위는 얼른 선두 야포차에 몸을 던져 전방으로 달렸다.


 출동하는 야포중대의 장교는 단지 소위 1명 뿐. 마침 이날의 당직 근무자였다. 다른 장교들은 외출을 하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었다. 사단 화력의 유일한 이 야포는 낡아빠진 M3라는 것인데 인민군 중박격포와 성능이 비슷했다.


 김중위가 포천 시가지 부근에 이르렀을 때 인민군의 포성은 쨍쨍 울렸고 드문드문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다. 한길 가에는 9연대 고문관이 자기 지프 옆에 덩그러니 서서 침통한 표정으로 서성거렸다.


 전방에서 나오는 피난민들은 넋 잃은 사람마냥 힘없는 모습으로 한길 양편에 줄을 이었다. 부상당한 장병들을 후송시키기 위한 조치들도 부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김중위가 타고 있는 야포대가 포천 시가지를 통과하여 약 1km쯤 전진했을 때다. 전방 300m 지점에서 구부러진 길모퉁이로 흙색 빛깔을 한 큼직한 전차 종대의 선두가 쿠렁쿠렁 굴러 나오는 것과 맞부딪쳤다.


 "아이쿠 전차다." 김중위를 비롯한 포대원들은 가슴이 철렁 무너지며 눈앞이 아찔했다. 눈앞에 악마가 돌연히 나타난 것이다. 마치 꿈속에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이런 꼬락서니가 있을까? 시간도 공간도 초월한 것 같은....... 어쩌면 300m의 거리라 한들 그와 적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싶었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야포의 원칙이고 뭐고 따질 수도 없다."고 김중위는 느꼈다. "이놈의 괴물과 마주보고 무작정 쏴 부쳐야만 되겠다."고 생각했다. 김중위는 떨리는 목구멍을 억누르고 야포장교에게 "여보. 여기서 빨리 사격 준비합시다."하고 소리쳤다.


 "예. 아이구. 웬 참. 야단났네." 뇌까린 야포장교는 파랗게 질린 얼굴빛을 감추지 못하고 부리나케 필요한 동작으로 옮겼다. 곧이어 5문의 야포들은 한길 가에 방열되어 발사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국군의 야포대를 발견한 인민군 전차들은 직사포로 내리 갈기기 시작했다. 이때 김중위는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 곡사로 쏘지 말고 직사로 쏘라고 권해 봤으나 융통성 없는 포병들은 공중고각으로 포구를 거치한 후 곡사로 전차를 겨누었다.


 이렇게 발사된 포탄은 한발도 괴물을 명중시키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만 떨어졌다. 그러자 정확한 전차의 직격탄이 김중위네 야포를 명중시키며 차례차례 파괴해갔다.


 포병들은 포와 차량을 내던지고 몇 명의 부상자를 이끌고 좌측 산악 능선으로 물러가 버렸다.


 잠시 후 포천 시가지에 설치되었던 한 대의 대전차포가 맞서 사격했으나 전차를 파괴하지 못했다. 반면 위치가 폭로된 대전차포 진지는 전차의 직격탄에 간단히 사라져 버렸다.


 전차의 대열은 포천 시가지에 돌입하자마자 건물에 탄환을 퍼부어댔다.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던 2대대 건물에도 집중사격을 하여 침묵시켜 버렸다. 그러나 이때 인민군 보병들은 이곳까지 진출을 못하고 20리가량 전장의 1대대와 3대대 사이에서 격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포병들이 각개로 흩어져 퇴각하는 틈에 끼이게 된 김중위는 어안이 벙벙했다. 절망하기에는 너무나도 빨랐고 실망하기에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으며 희망을 걸어보기에는 너무나도 황당한 노릇이다. 아아! 이건 도대체가 장난이 아니었다. 김중위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나마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연습으로 그렇게 해 본 것인 즉 앞으로 진짜로 하는 일은 그렇지가 않고 새로운 일이 또 다시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진짜 전투라는 것이었기에 야포대를 이끌고 연대장과 대면하려던 계획은 너무나도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야포대는 없어졌다 해도 연대장은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김중위는 마침 옆에 있던 인사장교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카빈 소총을 움켜쥐며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뛰어나갔다.


 신작로로 줄을 지어 쏟아져오는 전차대열의 사격을 피해가며 풀숲을 헤쳐나가노라니 그 앞으로 숨차게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연대 재정관이었다. "웬일이요?" 김중위가 다급히 물었다. "어딜 가는 게요?" 재정관이 반문했다.


 "이제는 갈 필요가 없게 됐어요. 나는 조금 전 거기서 오는 길인데 전방에는 말이요. 놈들의 전차를 막지 못하는 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아 글쎄 우리 대전차포 4문이 몇 발 쏘지도 못하고 눈 깜짝 할 사이에 죄다 망가졌다니까......."


 잠시 말을 그친 재정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망울을 두리번거리다가 담배를 피워 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놈들 포사격이 얼마나 심하던지 옴짝달싹 못할 지경인데 우리가 뭐 대항해볼만한 화력이 있어야죠. 아마 좌측 3대대는 적의 포격 때문에 죄다 녹았을 거요. 연대장님이 직접 지휘하던 1대대도 포격 때문에 이리저리 몰리다가 우측 산악을 타고 이동할 모양입니다. 끝내 도로를 사용 못하게 되면 퇴계원이나 태릉 쪽으로 진지 변경을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연락 겸 후방일도 살피기 위해 급히 오는 겁니다." 재정관이 목격한 전차의 수는 거의 백대가 넘는다고 하였다.


 김중위는 포천시가지 남쪽까지 와서 신작로로 발을 옮겼다. 때마침 그곳에는 대전차포 한대가 트럭에 연결된 채 서성거리고 있었다. 김중위는 얼른 대전차포를 방열시켰다. 불과 800m지점에 가로놓은 교량을 목표로 사격준비를 갖추었다. 인민군 전차대 선두가 교량을 넘어오고 있었다. 포는 전차 옆구리에 조준되었다. 전차가 교량 한복판을 전진할 때 김중위는 사격명령을 내렸다.


 "꽝" 발사된 탄환은 기분 좋게 전차포탑을 명중시켰다. 포탑의 뚜껑이 훌렁 벗겨지면서 굴러 떨어졌다. "됐다."하고 김중위는 주먹을 불끈 쥐며 발로 땅을 굴렀다. 그러나 잠시 멈춰있던 전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민군 전차를 향해 또 다시 쏴 부쳤다. 이번에도 멋지게 몸통에 맞아 터졌지만 전차는 또 다시 전진했다.


 전차는 김중위 일행의 지척까지 진출하여 포사격과 기관총 사격까지 퍼부어댔다. 대전차포는 전차의 직격탄을 맞고 단번에 파괴되고 말았다. 달리는 그들 머리 위로 기관총탄이 날았다.


9연대 김영길 중위 <전장> p17-23



덧글

  • 나기 2015/07/23 16:44 # 답글

    사용한 105mm가 M3이라는 걸 보면 한국전 초기 때 일이군요. M3 자체가 공수용으로 만들어진거라 성능이 M2보다 못했지만 같은 무기를 사용한 제6보병사단이 춘천-홍천 전투에서 어떤 일을 해냈나를 보면 역시 무기는 쓰는 사람 나름인 것 같습니다. 본문에도 나오듯이 고작 300m 떨어진 전차에 곡사 사격을 하질 않나... 정말 융통성이 없었군요.
  • 금성천 2015/07/25 12:34 #

    전쟁 첫날 난데없이 전차 행렬과 마주치니 당황스러웠겠죠. 저도 좀 답답해요. 지금 가물가물한데 그날 7사단 105미리포대가 철수하다가 T34에 꼬리를 잡혀 3-4문(?)인가 상실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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