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장이 철수 명령 내렸다면 좋소 김석원 장군 이야기

이때 연대로부터 고은리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전달되었다. 철수로상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는 화이버모에 별 하나를 붙인 장군이 무더위 속에서도 긴 장화를 신고 왼쪽 가슴엔 45구경 권총을 바른 손에는 군도를 잡은 채 카이젤 수염을 왼손으로 연상 치켜 올리면서 무엇인가 호령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장병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 "전투 중에 무릎을 꿇고 있다니. 시킨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정신없는 사람들이군!"하고 독백하면서 힐끗 쳐다보았다. 서있는 분은 바로 사단장 김석원 장군이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그 분의 얼굴을 똑바로 보게 되었다.


그의 앞을 통과하려는데 "명령 없이 후퇴한 너희 놈들도 이리 와서 무릎을 꿇어."하는 불호령이 귀청을 때렸다. 엉겁결에 무릎을 꿇고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우리 연대장 최석용 중령(만주군 출신)을 비롯한 연대 장병들이었다.

 

사단장은 우리들을 마치 포로처럼 취급하였는데 신명을 다해서 싸운 우리를 이같이 취급하는데 불쾌한 감이 있었지만 이의를 제시할 수 없는 처지였다.

 

김 사단장이 "너희들은 누구의 명령으로 후퇴했단 말이냐? 상부의 명령 없이 후퇴한 너희 놈들은 모두 군법에 회부하여 엄단함이 마땅하다. 헌병!"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슬그머니 쳐다 본 그 분의 눈빛에는 살기가 등등하였다.

 

나는 속으로 어쩌다가 이런 환경에 처하게 되었을까 하고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혀 땅만 보고 있는데 이때 연대장이 "연대장인 제가 후퇴를 명령했습니다. 책임은 저에게 있으며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고 분에 못이긴 듯 단도직입적으로 보고하였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김 사단장은 "연대장이 철수명령을 내렸다면 좋소."하고 한마디로 용서하였다. 연대장은 혼전 중에서도 부하들에 대하여 책임을 질 줄 아는 훌륭한 상관이었다.

 

최석용 연대장은 만군 출신으로 당시 50이 넘은 노병이었다. 그 분은 대한민국의 군복을 입어보는 것이 소원이 되어 임관하였다 하며 내가 신임 소위로 부임하였을 때는 노인 대접을 받는 연대 구매관을 하다 부연대장을 거쳐 윤춘근 연대장의 후임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김석원 사단장의 "군법", "엄단" 엄포는 즉결처분이 횡행하고 극도로 악화된 당시의 상황에서도 단행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진천 전투 때에도 수도사단 지휘부가 역리(진천 남쪽 9km)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사단장은 부임길에 "이렇게 지휘부가 뒤에 처져 가지고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고 호령하여 여사리(역리 북쪽 3km)로 추진배치 했다고 한다. 적 포탄이 지휘부에 떨어져 참모들이 위험하다고 호 속으로 피신할 것을 건의해도 "김석원을 죽일 포탄은 아직 만들지 못했어!"하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후일 김 장군이 수도사단을 떠나 3사단장으로 동해안 장사동(독석동)에서 적에게 포위된 가운데 해상 철수할 때의 일화이다. 농우(農牛)까지 배에 실었다고 미 고문관이 얼굴을 찌푸리자 "농민과 소가 있어야 군인도 있소."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전투> 9연대 소대장 차규헌, 병학사,1985



덧글

  • 지나가다 2015/04/01 14:18 # 삭제 답글

    정말 멋있는 분입니다.
    딱 '옛 시대 장군'이 연상되는... 뭔가 낭만적인(?) 장군이셨습니다.
    군병원에 부인과 함께 찾아가, 담배와 과자를 부상장병들에게
    일일이 나누어주며 격려했고 또 장병들은 '사단장님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괜히 외친 게 아닙니다.
  • 조은성 2015/04/03 13:13 # 삭제

    정신전력의 측면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말 그대로 너무 옛날 스타일인지라 이종찬 장군과 함께 '일본군식이 최고'라고 한다며 까이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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