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전투 부상병들을 위로하는 김석원 장군 김석원 장군 이야기



김운기의 사진으로 본 충북의 어제와 오늘


사진병 선임하사가 전해준 사진 한 장 속에, 6.25 전란의 역사가 담겨있어



“이 사진 청주 사진이니 잘 보관하게나.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걸세” 사진병 선임하사가 전해준 사진 한 장, 이 속에 6·25 전란의 역사가 담겨 있다.


“제군들! 진천 전투에서 그대들이 국가를 위해 용맹스럽게 싸워 우리는 승리했다. 부상을 입어 유감이지만 치료 받고 완쾌되어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1950년 7월 12일 진천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리어카에 실려 청주로 후송된 부상병들을 위로한 김석원(金錫源)장군은 환자들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격려를 잊지 않았다.


1950년 6월 25일 38선이 무너지고 탱크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북한 인민군은 단숨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계속 남진했다. 후퇴만 거듭하던 국군은 진천과 음성을 잇는 방어선을 구축하고 6일 동안 방어전을 폈다.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벌어진 이 전투에서 피아간 엄청난 피해와 전사자가 속출했는데, 특히 북한 인민군의 최강 부대로 알려진 15사단 1개 연대가 진천과 음성에서 괴멸됐다.


기록에 나타난 전과는 적 사살 8백여 명, 포로 90명과 차량 60대, 소총 1천정, 박격포 35문 획득, 장갑차3대 파괴 등이다. 부산 입성 전까지 최전방에 서겠다던 적 15사단장의 호언은 이때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진천 전투를 치르고 청주로 후퇴한 김석원 장군은 부대를 재정비, 청주에서 보은으로 통하는 피반령에서 소규모 전투를 치르며 속리산 갈평에 튼튼한 방어선을 구축, 14일간의 혈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속리산 전투는 아군의 피해도 컸지만 적 15사단 2개 연대 병력이 몰살되는 대승을 거두게 됐다. 후에 밝혀진 바로는 당시 적 15사단장이던 박성철이 전투 패배 때문에 파직됐고 사단마저 해체됐다고 한다.


강원도 다음으로 산이 많고 산세 또한 험한 충북은 삼국시대부터 제일의 격전지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속리산은 소백산맥의 중심지로 갈평을 막지 못하면 낙동강이 시작되는 상주를 잃게 되고 대구까지 위협받게 되므로 매우 중요한 전략 요충지로 알려졌다.


이렇게 진천에서 6일 갈평에서 14일, 충북땅에서 김석원 장군이 20일이라는 시간을 버텨줬기 때문에 낙동강에 방어선이 구축됐고 아군이 재정비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이때 아마도 김석원 장군이 막아주지 못했다면 전쟁의 향방은 거의 적으로 넘어 갔을 것이라고 얘기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6·25 전란을 통해 가장 용맹하고 큰 전과로 승리를 이끈 김석원 장군, 그는 공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한 장군 중 한명으로 기억된다. 강직한 성격에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곧은 성품이 아마도 상사의 눈 밖에 난 듯 싶었다.


필자가 광주 전투병과 교육 사령부 사진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당시 2군 사령관이었던 민기식 중장이 부대를 방문, 장교들을 모아 놓고 훈시하는 자리가 있었다. 민기식 사령관은 김석원 장군의 무용담을 얘기하면서 그가 아니었으면 부산마저 빼앗겨 대한민국 존폐가 어떻게 됐을지 몰랐을 것이라며 반복해서 칭찬했다. 그리고 이런 김석원 장군을 본받아 용맹스럽고 강직한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돼 달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후배들에겐 상당히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김석원 장군은 광복을 맞아 국방군 장교로 임명 받고 38선을 경계하는 사단장이 되었다. 현직 장관이 개입된 원산 밀거래사건(북한 명태 밀반입)을 적발하고 강력히 막았다는 이유로 파직됐다가 6·25전란과 함께 복직됐다. 그는 패기가 있고 전술이 밝으며 후퇴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용장으로 부하들을 무섭게 다뤄 호랑이 장군님으로 통했고 쩌렁쩌렁 목소리와 곧은 성품에 부하들도 잘 따랐다고 한다.


진천 전투에서 엄지손가락이 잘리고 얼굴에 파편이 박힌 줄도 모른 채 후송된 최재한(崔在漢·74. 청주 대성동 거주)씨는 “50년이 지났지만 그 때를 회상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탱크를 앞세우고 개미떼 같이 몰려오는 인민군들, 소총 한 자루와 수류탄 2발씩을 들고 김석원 장군과 함께 적진에 돌진하면서 5일 동안 잠도 못자고 싸운 전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라며 김석원 장군과 함께 한 그 전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잊지 못할 순간이었으며, 가장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김석원 장군, 그는 그 후에도 많은 전과를 남겼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육영사업에 전력을 다해 성남고등학교를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용맹함과 강직함은 아직도 6·25격전지였던 여기 충북 땅에 새겨져 있고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다.

/ 前언론인, 프리랜서 사진기고가


충북인뉴스 2005-10-27


덧글

  • 재팔 2015/06/20 16:30 # 답글

    솔직히 이런 분들 기록 보면 백선엽만 너무 대접해준다는 이응준의 말이 정말 실감이 듭니다. -_-;; 까는 측이건 옹호하는 측이건 한국엔 백선엽만 있지, 다른 인물은 없다는 듯이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독자적 전과만으로 따지면 김석원, 이종찬, 김홍일 장군 등이 있는데 말이죠 ㅠㅠ(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걸까요? ㅋㅋ)
  • 금성천 2015/06/22 12:45 #

    백선엽 장군 책이 "군과 나" 이후 "길고 긴 여름날 ~" 중앙일보 연재 최근의 조선일보 연재를 거치면서 더욱 더 세련되어져서 6.25판 징비록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읽으면 팬이 될 수밖에 없지요. 훌륭한 분이고 잘 정리된 책이니까 많은 분들이 읽고 한국전쟁에 관한 지식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어려운 여건에서도 승패를 겪으며 고생한 다른 야전의 명장들도 재조명 받아야겠지요.
  • 변성고검 2015/06/21 23:46 # 답글

    가운데 일본도 든 장교가 최경록 대령이겠네요, 6.25 전쟁 참전자 증언록에 묘사되던 그모습 그대로네요.
    참모들 죄다 끌고 다닌다는 비난도 보이던데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에 나오는 상이용사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그모습 그대로네요.

    명태 사건에 대해서 최근에 읽은 기록이 있는데 소개해 드리자면 1. 방원철 구술록 2. 신문기사 검색(한인준 검거)
    1번에서는 손해를 많이 봤다라고 언급이 있던데, 방원철씨가 만군계열인 만큼 38교역 이해당사자들은 김석원장군을 디스할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2번 신문기사의 저 인물이 군사영어학교 출신 한인준이라면 38교역이 의외로 국군 고급장교들의
    생계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채병덕은 물론이고 첩보를 가장한 생계활동의 성격도 강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박성철 15사단 해체 이야기는 과장인것 같고, 소장에서 총좌로 계급강등당하고 영천전투때 조열광으로
    사단장이 교체되었다는 이야기를 포로심문조서에서 본 것 같네요.

    시대의 흐름에 퇴장을 강요당했지만, 그 뒷걸음에 향이 남는 현대의 기준으로 판단불능인 인물이 바로 김석원 장군인것 같네요.
  • 금성천 2015/06/22 13:02 #

    저 사진을 유관종씨가 편집한 한국전쟁 사진집에서는 포항전투라고 되어있어 그렇게 알았는데 충북인 뉴스에는 청주 사진이라 나오네요.

    가운데 일본도 든 장교는 전속부관입니다. 어디서 성함을 본 기억이 있는데 생각이 나지 않네요. 엄씨였던가... 중령인가 대령 예편하신 걸로 기억하고요. 전쟁시 항상 일본도 들고 김장군 수행했지요.

    전속부관과 김장군 사이에 있는 검은 선글라스의 작업모 쓴 분은 대령 같은데 누군지 짐작이 안 가네요.

    사실 위 기사 중 15사단 이야기는 기자가 사진기자이다보니 후문에 의한 과장된 면이 있는 것 같고요. 사실 사단장 이름도 박영철로 되어있는 걸 제가 성철이로 수정했습니다.

    한인준 검거로 검색해 볼게요.
  • 재팔 2015/06/22 14:18 #

    명태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 중 K장군은 나중에 조갑제와의 인터뷰에서 김석원 장군이 사단 돌격을 외쳤다는(..) 모함을 한 게 기억나네요. ㅋㅋㅋㅋ
  • 금성천 2015/06/22 14:32 #

    진천 전투에서 일본도 빼들고 사단 돌격! 외치긴 했어요. 안 그러면 古武士(?) 김석원이 아니죠. ㅎㅎ
  • 변성고검 2015/06/22 21:21 # 답글

    1. 사진을 찍은 분은 임인식씨이고, 위의 사진은 1950 0625. 자료집 1-2 / 경기도 ; 경기문화재단 지음(국회전자도서관에서 원문다운가능) P285-286에서 3사단 학도병위로로 표현되어있네요. 다른 사진(P296, 김장군과 부관이 찍힌)에서는 1950.8.18 촬영으로 전선을 순시한다는 것으로 봐서 3사단장 시절 사진같네요. 사족으로 저 부관 철모 계급장 아주 독특한 모양이랍니다. 한번 보세요 ㅎㅎ
    3사단이 맞다면 저 날짜 기준으로 전투서열상 대령은 26연대장 이치업 대령밖에 없는 것 같네요.

    2.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한인준 치시면 1949.6.17 경향신문 '가헌병등을 체포'라고 나오는데, 군영출신의 예전 부정사건 관련자와 동일인 여부는 기사로 확인할 수 없으나, 수법에서 많은 의심이 가네요. 검색을 해봤는데 의외로 38밀무역 관련글이 적네요.

    다음 글 기다립니다, 읽고나서 검색으로 관련지식 넓히는 것 정말 재미있네요 ㅎㅎ










  • 금성천 2015/06/23 10:45 #

    제가 가진 유관종 편 <사진과 함께 보는 한국전쟁> 중권 p102에 위 사진이 있는데 거기에도 "김석원 제3사단장이 학도병 부상자를 위문 격려하고있는 장면 1950.8 포항"이란 설명이 있어요. 이 사진 옆에 "파괴된 포항 시가지를 시찰하는 김석원 장군1950.8" 사진에 위 사진과 비슷한 인물이 나오는 걸로 보아 진천보다는 포항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입니다.

    부관철모 계급장 확대해 보니 제 눈엔 X밑에 =로 보이네요.

    제가 이치업 대령 용모를 대충 아는데 저 인물은 골상학적(?)으로 이치업 대령 같지는 않아요. ^^ 누군지 매우 궁금...

    어제 한인준으로 검색하다가 남북밀교역에 장단경찰서장이 북한에 트럭과 지프 팔아넘기는 기사가 나오더군요. 참 희한한 세상이었고 별사람들 다 있었다 생각 들었는데 따지고 보니 지금도 다를 게 없더군요. 해군 통영함에 엉터리 음파탐지기 달거나 특전사에 부실 방탄복 납품 되는 것 보면...

  • 비도승우 2015/06/23 11:43 # 삭제 답글

    일본도를 들고있는 부관의 모습에서 김석원장군이라는게
    사진설명없이도 알수있겠어요. 카이젤수염하며.. 명장이죠 이분.
  • 금성천 2015/06/23 14:09 #

    요즘 세상에는 나오기 힘든 캐릭터죠. 야전에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부하들의 진심 어린 칭송을 가장 많이 받은 장군이기도 하고.
  • 변성고검 2015/06/23 22:09 # 답글

    1. http://archive.history.go.kr/ 여기에서 '38선돌파'로 검색어 치시고 사료건에서 첫번째 원문보기누르시면 서정철 중령하고 김종순 대령이 고문관과 찍은 사진이 나오네요. 제 눈썰미로는 김종순 대령인 것 같네요. 여담으로 김응조씨는 김재박감독 많이 닮은 것 같네요 ㅎㅎ(연합포토에서 노무사단장 시절 모습 검색가능)

    2. 한인준 검색하다가 '앵도환사건'이라는 것도 알게되고 저만의 생각이지만 그 당시 시대분위기가 38밀무역에 그렇게 큰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 같네요. 생필품이 부족하고 먹고살기위해 어쩔수 없었다는 그런류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 시절이야 인플레이션으로 군인봉급자체가 도둑질을 강요했다 치더라도 먹고살만한 지금시절에 저런 것은 정말 문제가 많지요.

    다음 과제가 기대되네요^^
  • 금성천 2015/06/24 16:14 #

    저는 암만 봐도 김종순 대령도 아닌 것 같은데 ^^ 이거 관상학으로도 범위를 넓혀야겠습니다. ㅎㅎ

    덕분에 김응조 대령 얼굴은 확실히 봤습니다. 살 붙은 김재박 감독 비슷하네요.

    정래혁 회고록에 3사단 세 연대장 평을 해놓은 거 얼핏 기억나는데 한번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 2015/06/29 19:0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엽기당주 2015/07/03 14:02 # 답글

    선배님들도 김석원 장군님 많이 따르고 존경해서 사관학교 지원한 분들이 많았더군요.

    저도 성남고 출신이지만 이분은 정말 엄하면서도 자애로운 분이셔서 학생들이 많이 따랐다고 당시 학생이셨던 선배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알면 알수록 훌륭한 분인데 심지어 매국노라고 욕하는 좌빨들 보면 열불이 터집니다.
  • 금성천 2015/07/03 16:20 #

    일본군 출신이면 친일파로만 생각하는 바보들이 너무 많아요. 일본군 출신이어도 애국자들이 있고 광복군 출신이어도 모리배, 비겁자들이 있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단세포들이니까요.

    사실 제가 이 블로그에 가끔 글 올리는 것도 그런 멍청이들이 혹시나 깨닫는 게 있었으면 해서인데 그런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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