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학병 사건 재판정의 김석원 대좌 김석원 장군 이야기

1944년 평양에서는 강제 징집된 학병들이 일본군의 무기를 탈취하여 부전고원 방면에서 무장투쟁을 하려다 조선인 헌병보들의 밀고로 전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이 때 재판을 받던 의거 학병들 중에 재판정에서의 김석원 대좌의 모습을 기록한 이야기 두 편이 전해진다.



마침내 우리들의 생사가 결정되는 공판 날이 다가왔다. 1945년 6월 10일. 우리는 공판정에 들어가서 한 단 높은 곳에 있는 재판석을 향하여 일렬횡대로 섰다. 재판석 뒤에는 일본군 대좌 7, 8명이 두 손으로 군도를 앞에 쥔 채 엄숙히 앉아 있었고 우리 뒤에는 젊은 사관들이 그 넓은 방을 꽉 메우고 있었다.......


우리들의 눈과 귀 그리고 신경은 논고 구형하는 검사에게 쏠려 있었다. "피고인들은 대일본제국의 군인으로서 그 신분을 망각하고 일본의 국체를 변혁하려고 음모하고 준비하였다. 맡은바 직무에 충성된 헌병들의 활동으로 미연에 방지된 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었으나 그들의 범죄 동기에 대해서는 추호도 동정할 여지가 없으며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이다.".......


그날 공판정에서 아직도 나의 기억에 새로운 것은 김석원 대좌가 특별 방청석에 위엄 있게 앉아서 재판장이며 판검사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주는 것 같이 보였다. 글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조선 사람인 그가 설마 우리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게까지는 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소 마음의 위안을 가졌었다.     

최홍희 <태권도와 나> p 120-121




백발이 성성한 늙은 대좌 한 사람이 나타나서 상석에 자리했다. 그는 오늘의 재판장으로 평양 추을 사단 참모장 오오바시 대좌였다. 재판장의 뒤를 이어 또 한 사람의 묵직한 대좌가 걸어 들어왔다. 아니 가네야마(金山) 아니야? 그는 다름 아닌 친일파 김석원이었으니까. 가네야마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야 보나마나 자신의 충성심을 과시 입증하기 위해 우리들에게 중형을 바랄 것이 뻔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조선인은 그 누구도 감히 참관할 수 없는 극비의 독단적인 이 군재에서 단 한사람의 사이비 조선 사람이나마 참관한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드니 역시 피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누구의 여하한 질문에도 우리는 기립 부동자세에서 재판장을 향해 답변만 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김석원을 향해 그에게도 응답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둘은 너무도 가까이 그리고 나란히 앉아 있었기에.......  김석원은 그런 우리들을 가끔 상반신을 세우고 고즈넉이 내려다보기도 했다.


첫 재판은 간단히 끝났다. 그러나 뜻하지 아니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김석원 대좌 때문이었다. 단상의 통용문은 뒤쪽 좌측에 하나뿐이었다. 재판의 휴식이나 끝이 날 때면 재판장이 맨 먼저 퇴장해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많은 장교들이 퇴장해 나가고 그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김석원은 웬지 재판장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 우두커니 앉아서 먼 산만 바라보고, 재판장을 따라 퇴장해 나가는 장교는 우측 절반이었다. 김석원이 자리한 줄을 경계로 나머지 좌측의 장교들은 기립한 채 누구 하나 퇴장할 생각도 않고, 김석원은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의식하는지 않는지 그저 의자에 딱 버티고 앉아 "아직 내 차례는 멀었다"는 듯 자기 수염만 만지고 있었다. 그러다간 후다닥 몸을 일으키며 "아니 벌써 다 퇴장했었나?"는 듯 빨리 걸어 나갔다. 그때서야 좌측의 많은 장교들이 우르르 밀려 나갔다. 그들은 물론 김석원보다야 계급이 낮은 중좌 이하의 장교들인지라 당연한 예절이겠지만 조선 놈인 김석원을 몰고 나가자는 왜놈들의 편협한 소갈머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저러나 김석원은 퇴장할 때마다 그런 태도를 반복했다.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어딘가 보이지 아니하는 조선 사람으로서의 "애국의 충정" 같은 것을 단하의 우리 조선인 학도병들에게 이심전심하려 함이 너무도 역연했다.


 ........


"다까야마(전상엽)는 헌병대를 탈출한 흉악범으로 압록강 강상에서 일본 순사부장을 때려눕히고 달아나는 등 최후의 순간까지 대일본제국에 반항한 자로 개전의 정이 없는......."


아아! 탄식은 소리 없이 흘러나오고 검사의 논고에 나는 눈물 젖은 눈으로 계속 재판장과 김석원을 응시했다. 재판장 바로 뒷자리의 김석원도 심각한 얼굴에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는 듯 했다. 자기의 계급장이 말해주는 인내와 의지로 말이다. 그의 커다란 두 눈망울이 자주 좌우로 굴렀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 인내심에도 인간의 본능적 정에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그의 커다란 눈이 한번 껌벅이자 눈물방울이 주룩 주룩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전상엽 <천명天命> p376-382



덧글

  • 갈천 2015/08/02 20:51 # 답글

    아. 눈물이 나오네요.

    전상엽 이라는 저자가 바로 평양학병사건의 주동자로서 독립유공자 http://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6955 그 분 맞습니까?

    당사자께서 김석원 장군을 그렇게 묘사하시니...친일파청산을 정치투쟁구호로 내세워 날뛰는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생각할까?
  • 금성천 2017/07/13 15:04 #

    그 전상엽씨 맞습니다.

    저도 전상엽씨의 글을 맨 처음 읽었을 때 아!하는 탄식이 나오더군요.

    의거 학병들을 밀고한 조선인 부사관급 헌병보들이 있는 반면,

    젊은 학병들에게 내려질 중형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노력하고 그들을 동정하고 눈물 흘리는 일본군 대좌 김석원.

    친일파 만들기 이벤트를 벌이는 사람들 속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만들고 지키고 발전시킨 사람들에 대한 증오, 분노, 냉소... 대한민국에 대한 저주.
  • 갈천 2015/08/04 14:48 # 답글

    그런데 이쯤에서 솔직히 금성천님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금성천님은 어떻게 이런 숨겨진 책들을 잘도 찾아내어 그 결정적 장면들을 발췌,게시하는 신공을 발휘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자료 조사에 관한 전문적인 스킬을 습득하신 것인지....
  • 금성천 2015/08/04 17:35 #

    뭐 별로 잘 찾아내지도 못하는데 부끄럽습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흥미를 가지고 한국전쟁 책 많이 봤어요.

    책을 읽다보면 그와 관련된 또다른 책을 찾게 되더군요. 책이 책을 부른다고 할까요.
  • 금성천 2015/08/17 10:48 # 답글

    666. 전에 싸가지 없는 댓글을 달아서 당신 댓글은 삭제하겠다고 했지? 자꾸 쓸데 없는 짓거리 하지마.
  • 레걸사랑 2016/08/02 19:11 # 답글

    일본이 대동아전쟁에서 승리했더라면
    우리 한민족은 대일본제국의 위광을 등에업고 전 세계를 호령하며 세계사의 중심에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석원장군님, 백선엽장군님같은 분은 이민사회로 치면 이민1세,
    이민2세, 이민3세들이 대일본제국사회로 본격적으로 치고들어가는 찰나에 패전...
    미국은 우리를 속주로 활용말 할 뿐 하와이같은 정식주로 편입시켜주지도 않고, 미국시민권은커녕 영어몰입교육도 시켜주지도 않아 미국시민권과 영어기득권을 한민족에게 허용하지 않네요.
  • 갈천 2018/12/31 16:07 # 답글

    금성천님. 이승만학당 [위기 한국의 근원 : 반일 종족주의 (9)] 학도지원병, 기억과 망각의 정치사https://www.youtube.com/watch?v=1ADpRTtmuM4 를 봐주세요.

    정안기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학도지원병중 탈영한 자들에 대해 마치 독립운동 영웅인 것 처럼 대우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평양학병 탈출 사건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재음미 해봐야하는 것 아닐까요.

    탈출사실을 밀고한 조선인 부사관도 그처럼 비겁하고 악랄하다고만 단순하게 볼 수도 없고...
    이들이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투쟁한 것은 높이 사야합니다만...
    일단 박정희 정권의 보훈처(원호처)가 왜 그렇게 이들의 독립유공 사실여부를 심사하면서 쉽게 판단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네요.

    금성천 선생님. 한번 정안기씨의 동영상강의를 보시고 감상,평을 해주십시오.
    이미 알고 계셨던 사실로 특기할 것이 없는지
    아니면 종전의 판단을 바꿔야할 만한 것이 있는지....

  • 금성천 2019/01/02 12:52 #

    동영상과는 별개로 제가 평소 생각하던 것 말씀 드릴게요.

    학도지원병 대상이 되는 당시 대학생이라면 조선인들 중에서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었으니 조선인 특별지원병들과는 다르게 군대 끌려가는 것이 아주 싫었을 겁니다. 졸업하고 취업해서 편히 살 수 있는데 왜 일본군에 끌려가야 하나...

    중국에서 일본군 탈출해서 중경의 임시정부, 광복군을 찾아간다는 것은 일본군과 싸울 일이 없는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해요.

    광복군 출신 중 6.25 때 총들고 싸우신 극소수 분들은 정말 애국자들입니다. 광복군이었네 하고 총들고 찍은 사진은 있는데 6.25 때 뭘 했는지 애매한 사람들은 그냥... 실제로 전쟁 났을 때 대한민국을 지키다 전사하신 분들은 일본군 하사관 출신들이 많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소리는 이제 그만 했으면. 진짜 독립운동한 사람과 후손들은 그렇게 독립운동과 조상 팔아먹지 않아요. 나라에 기대지 않고 나랏돈 바라지 않고.
  • 갈천 2019/01/07 21:26 # 답글

    1. 광복군 출신 중 6.25 때 총들고 싸우신 극소수 정말 애국자가 누구인지 예를 들어주실수 있나요? 최대한 많이.
    장철부?

    2. 전쟁 났을 때 대한민국을 지키다 전사하신 일본군 하사관 출신들이 많다는데 통계로 나타난 것이 있나요. 추정치라도.

    3. 진짜 독립운동한 사람과 후손들로 독립운동과 조상팔아먹지 않은 대표적인 훌륭한 분은?

    한용원의 [남북한 창군]을 보고 있는데, 여기에도 제가 얻고 싶은 <6.25전쟁중 중대장 또는 대대장 이상급의 해방전 출신별 분포>는 없군요.

    단지 전체 장교 5,300명중에 군출신이 1/4이고, 일본군 출신은 1/5인데 그 일본군의 종별 분류는 없고, 해방전 군사경력자로 장군승진자가 일본육사26, 학병 95, 지원병 105, 만주군 44, 광복군 32.
    지원병출신 장군의 비중이 제일 많다니...

    조선경비사관학교 5기,6기 1,200명은 비군사경력자이고 7특,8특기 1,200명은 군사경력자, 정규7,8,910기 2,600명은 비군사경력자.
  • 금성천 2019/01/14 16:07 #

    광복군 중에서 소대장으로 싸운신 분이 김국주 장군, 전사하신 분은 이해명, 장철부 중령, 전성호 준장이 있고

    일본군 지원병 출신으로 전사 실종되신 분들은 김풍익 중령, 우병옥, 박노규, 권동찬, 권순태, 김영노, 김종훈, 고근홍 대령, 김룡배 준장 등이 있죠. 저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본군에 지원했던 분들을 친일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씨개명했던 사람들도 친일파라고 보지 않고요.

    진정한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면 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에 대해 자긍심 갖고 고마워해야죠. 지금 해방된지 75년이 다 되어가는데 조상이 독립운동해서 집안 망하고 어렵게 산다는 이야기하는 일부 후손들 보면 참 답답합니다.

    <6.25전쟁 중 중대장 대대장 이상급의 해방 전 출신별 분포>를 아시려면 육사나 보병학교 뒤지면 나오겠지만....
    장창국씨 <육사 졸업생> 보면 이북 출신들이 많더군요.
  • 갈천 2019/01/11 23:48 # 답글

    아. 고맙습니다. 김국주, 이해명, 장철부.

    문제는 반일종족적 민족주의에 있습니다.
  • 갈천 2019/01/13 20:04 # 답글

    그런데 이해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검색되지 않네요.
    기왕 말씀드린김에 김국주, 이해명, 장철부 세분의 이력과 공적을 알수 있는 책을 추천 좀 해주시겠어요?
  • 금성천 2019/01/14 15:54 #

    이해명은 의열단원, 광복군이었고 박용만을 살해한 전력이 있죠. 6.25때 대전 인근에서 전사했다고 하고. 네이버에서는 이구연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네요.

    김국주장군은 6.25 초기에 5사단, 1사단에서 소대장으로 싸웠고요.

    몇 년 전 "마지막 기병대장 장철부"라는 책이 나왔어요.
  • 갈천 2019/01/15 12:16 # 답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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