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정군단 원주 시내를 강습돌파하다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 6사단이 원주를 점령함에 따라 김무정의 군단(실병력은 군단 직할대 위주의 2000명 정도? 전차 10 여대와 보급차량 10 여대도 포함되었다는 설도 있음)은 원주 남쪽 신림에서 퇴로를 차단 당하고 말았다. 남으로는 충주에서 신림으로 추격한 국군 8사단에 의해 완전히 포위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김무정군단장은 중국전선에서 전력을 쌓은 노장답게 원주를 정면돌파하기로 결심하고 우선 원주시내를 교란시키기 위해 민간복으로 갈아입힌 편의대를 피난민으로 가장시켜 침투하였다. 그러나 능선에 배치된 국군 병력은 도로로 당당하게 침투한 적을 알 리가 없었다.

저녁 무렵 2군단 참모장은 원주경찰서에 위치한 군단장에게 "시내 분위기가 이상하며 곳곳에서 총소리가 난다"고 보고하였다. 이때는 이미 시내에 침투한 적 편의대가 주요건물, 병력집결지, 민가에 사격을 퍼부으며 분탕질을 하고 있었다. 얼마후 적 주력이 맹목사격을 가하면서 시내를 돌파하여 시민과 군은 손쓸 사이 없이 희생되고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아군간에 사격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시내는 화염에 휩싸여 아수라장이 되었고 날이 새어서야 진정이 되었다. 원주 시내는 홍수가 물러난 것처럼 1000 여명의 시민 시체가 발디딜 곳 없이 널려있었고 미군사고문관 5명도 희생되었다. 원주시내 대부분의 가옥은 이때 소실되었다. 

원주의 피습사실을 모르고 적을 추격하여 원주에 진입한 8사단장은 2군단 참모장이 "왜 좀더 빨리 진격하지 않았는가"고 묻자 "신림고개에서 적이 강력히 저항하는데 어떻게 빨리 올 수 있는가. 그런데 내가 적정을 보고했는데 병력을 어디 배치했는가"고 되물었다. 이에 참모장은 "6사단의 병력을 능선상에만 배치하여 이 모양이 되었다"고 답해 이번 작전의 패인을 알 수 있었다. 

국방부 공간사는 "야간 부대 배치를 와지선이나 도로변에 하지 않고 고지 위에만 했기 때문에 은밀히 도로를 따라 침입하는 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록 김무정이 적장이라고는 하나 그가 고양이에 몰린 쥐꼴이 되었을 때 발휘한 탁월한 용병술을 우리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비사2권> 안용현저 p447-449

덧글

  • 재팔 2016/07/18 11:21 # 답글

    과연 팔로군 때의 짬밥이 여기에서 발휘된 것 같네요 ㅋㅋㅋ 아마 김무정이 장정에도 참가했던가요??
  • 금성천 2016/07/19 09:55 #

    장정에도 참여했다고 하더군요. 팽덕회와 함께 포병 전문가라고.
  • 발꼬락 2016/07/18 16:29 # 삭제 답글

    다시 시작하셨군요~~ 오래 기다렸었습니다.

    야간부대배치를 도로변, 계곡에 하지 않고 능선, 고지위에 했다.... 일장일단이 있을것 같습니다만 그나저나 김무정의 탁월한 임기응변이네요. 우회하든지 하지 설마 강행돌파하리라곤 아무도 생각 못했겠네요. 2군단이면 이때는 7사단이 소속이 아니었나보군요. 7사단은 나오지 않네요. 평양으로 달리고 있나?

    이때 처음으로 공식전사상 도로상으로 대놓고 야간 침투가 진행된건가요? 중공군이 잘하는 방법 아닌가요?

    이때 2군단장이 유xx 이 맞는지요?
  • 금성천 2016/07/19 10:06 #

    다시 시작한 건 아니라니깐요. ^^ 그냥 있는 거 올리는 중.
    저때 2군단 주력은 6, 8사단이죠. 7사단은 2군단 소속으로 재편성되어가는 상태고.
    2군단장은 유oo장군 맞고요.
  • 발꼬락 2016/07/19 11:33 # 삭제 답글

    아무튼 요즘 이대용 장군의 심일 소령 건으로 말들이 많던데... 1사단 육탄 10용사도 거짓이란 말이 많고...
    해당 건으로 알고 계신 내용도 있으면 올려주실 거지요?

    요즘은 "봉달이의 삐딱한 전쟁사"에 빠져 한국군의 대전차포 전투 관련 내용을 관심깊게 보고 있습니다.

    더운데 몸 조심하십시오.
  • 금성천 2016/07/20 16:24 #

    심일 소령 이야기는 충격적이긴 한데 이대용 장군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없는 얘기 만들어낼 분이 아니니까. 옛날 책 보면 60년대부터도 유명했던 원주의 태극기 할아버지가 심일 소령 부친인데... 이거 참...
    송악산 육탄 10용사 이야기는 6.25전쟁 참전자 증언록에 좀 엉뚱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거기서부터 거짓이니 뭐니 하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증언록은 개인이 보거나 들은 바를 정리 없이 실은 것이기에 오류도 많아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면이 많습니다. 특히나 그 증언(?)을 한 것으로 보이는 K는 별명이 육군 3대포라 할 정도로 뻥이 심한 사람인지라 신뢰가 안 가죠. 제주도 4.3 사건에 관해서도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놔서 문제를 일으키고. 68년 구판 한국전쟁사 1권에는 10용사 관련 이야기가 비교적 사실대로 실려 있습니다.
  • 갈천 2016/07/27 18:53 # 답글

    1. 10용사는 6.25전쟁이 아니라 1949년 송악산 전투때라고 알고있는데요. 10용사중 일부 병사가 실제는 죽지않고 살아서 이북방송에 나와 선전선동방송을 했다고 하던데...

    2. 그런데 K라는 사람이 김익렬 장군인가요. 6.25전쟁 8사단장을 지냈던 맹장이라면 신뢰해야할 분인데...그분은 알만한 사람인데, 자기 후임 박진경 연대장이 암살을 당하고, 제주인민유격대들의 기세가 정규군에 준하다는 사실이 당시 여러 보고서와 신문에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왜 4.3사건 악화의 요인을 자신과 김달삼간에 맺은 휴전약속을 국군이 위반하고 선공했기 때문이라고 했을까요? 위키를 보니 김익렬을 육군 3대포라 할 정도로 뻥이 심한 사람이라고 평한 분이 박정인 장군 회고록 [풍운의 별]에는 어떻게 나와있나요.
  • 금성천 2016/07/28 16:11 #

    6.25전쟁 참전자 증언록은 6.25전쟁뿐만 아니라 창군시부터의 일도 두서 없이 나와요.
    K는 잘 아시네요. ^^
  • s2 2017/04/30 14:46 # 삭제 답글

    허풍이 심하다는 것과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은 구분을 해야 할 듯 합니다.

    농으로 하는 허풍을 거짓을 고한다고 비하해서는 아니될 듯 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