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天命)은 한족(漢族)에게만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 책 그 구절


子曰 有敎無類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간의 차이는 교육의 차이이지 인종의 차이가 아니다.

<論語> 衛靈公 미야자키 이치사다 p250

 


짐의 나라 여러 왕과 문무의 신하들이 짐에게 황제의 칭호를 권하여 올렸다. 너는 이 말을 듣고 이르기를 어찌 우리 군신이 차마 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는데 무릇 황제의 칭호를 올리고 올리지 않는 것은 너에게 달려 있지 않다. 하늘이 도우면 필부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천자도 이름 없는 사내가 되는 것이니, 네가 한 말은 심히 방자하고 망령스럽도다.

<청태종이 조선 인조에게 보낸 국서>

 


이자성의 반란으로 명나라는 망했다. 오삼계는 이제 이자성과 청나라,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였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선택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청나라뿐이었다. 반란자 이자성에게 투항한다는 것은 죽음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오삼계는 청나라에 투항했고 청나라는 산해관을 넘어서서 중원으로 진출했다.

 

청나라는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자성에게 준엄한 도덕적 꾸짖음으로 가득찬 선전포고를 한다. 황제를 시해한 자들을 유교 도덕의 이름으로 토벌하겠다는 것이다. 문명국 명나라 사람이 오랑캐 만주족에게 유교 도덕으로 준엄하게 꾸짖음을 당하고, 징벌을 당했다.

 

당시 명나라- 청나라- 조선을 보면, 약속을 하고도 어기는 쪽은 문명 도덕 국가라는 명나라 조선이었다. 오히려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도덕적이려 했던 것은 야만국 청나라였다. 조선의 집권 서인들은 다급하면 청나라와 조약을 맺고, 일이 끝나면 언제 그런 조약 맺었냐는 식으로 지키지 않았다. 요컨대 오랑캐는 짐승과 같다. 개와 맺은 약속을 꼭 지킬 필요가 있냐는 것인데.......

 

병자호란도 조선이 먼저 선전포고를 한 전쟁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문명과 야만이 어떻게 뒤집어지는지 알 수 있다.

<조선의 역사와 철학의 모험> 손영식 p279

 

 

중국 내지를 통일, 지배한 최후의 비한족(非漢族) 왕조인 청조(淸朝). 그 중앙집권제의 최고 우위에 서 있으며, 독재권력으로서 황제권을 확립한 옹정제(雍正帝)가 역사상 최초로 이적(夷狄)의 입장에서 중화(中華)가 주창하는 화이사상(華夷思想)에 대해 반론하고, 정치사상을 통해서 청조의 정통성을 주장하고자 한 것이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이다.

 

대의각미록의 의미는 옹정제의 위대한 의의 덕에 근거하여 청조의 정통성에 의심을 품은 무리의 미혹을 일깨우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주자학의 계통을 이어받아 강한 반청사상을 주창하다가 죽은 여유량(呂留良)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반청운동을 전개한 증정(曾靜) 등이 피고이고, 변호사는 없으며 검사와 재판관은 황제 자신이었다.

 

황제와 증정이 문답을 반복하여, 그 결과 증정이 자기 자신을 비판함으로써 청조의 정통성을 인정하게 된 재판 기록, 그것이 대의각미록이다.

 

역적 여유량은 이적(夷狄)을 금수(禽獸)와 같이 보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알고자 하지 않는다. 상천(上天)은 중국 내지에 유덕(有德)한 자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것이 싫어서 방기한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 외이를 중국 내지의 군주로 삼은 것이다. 역적 여유량 등의 논리에 따르면 이는 중국을 모두 금수로 보는 것과 같지 않은가? 어찌하여 안을 중국이라 하고, 밖을 이적이라 하는 것인가?

 

예로부터 단절됨 없이 계승되어온 중국 일통의 영역은 지금과 같이 멀리까지 넓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영역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중국화하고자 하지 않았던 자를 이적이라고 하여 배척해온 것이다.......

 

우리 청조가 군주가 되어서 중국 내지에 들어와 천하에 군림한 이래, 몽골을 병합함으로써 변경에 살던 여러 부족이 모두 판도 안으로 복귀했다. 이것은 중국의 영토가 개척되어 멀리까지 넓어진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곧 중국의 신민에게는 위대한 행운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어찌하여 아직도 화이(華夷), 중외(中外)의 구분이 있다고 논할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요약하면 옹정제가 주장하는 것은, 중국은 고래로부터 계속해서 확대하고 있으며, 영토를 확대할 때마다 그 이전의 이적(夷狄)을 병합하여 새로운 중화로 성장해온 존재이기 때문에 중국은 중화와 이적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다민족국가이다라는 개념 규정이 가능하다면, 청조야말로 그 이상적인 구현자이며, 이적이라는 이유로 정통성을 상실하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천명에 부합하는 덕의 유무일 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화이가 일가(一家)라면, 제위(帝位)는 천명에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대청제국> 이시바시 다카오 p243-247

 

 

만주인이 한인을 미워하여 도탄에 빠뜨렸다는 쩡징(曾靜)의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1644년 명조(明朝)를 멸망시키고 명의 마지막 황제를 자살하게 만든 것은 만주인이 아니라 한인(漢人) 도적떼였다. 그 역도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질서를 회복하고 백성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각지에 평안을 가져다 준 것은 기껏해야 10만 정도의 군대밖에 거느리지 않은 만주족이었다. 망해버린 명조의 능에 제사를 지내준 사람은 새로운 만주족 군주였다. 흉년이 들었을 때 기근을 구제한 사람들도 만주족이었다. p67

 

그는 중국의 법과 번영과 평화와 질서를 회복시켜준 외래인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 한인들의 교만하고 온당치 않은 논지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청조는 명말에 끓는 가마솥에서 허우적거리던 중국 사람들을 구해냈다전란과 죽음이 엄습한 무시무시한 시절에 명나라 장수들은 자기 백성들을 살육하면서도 자신들의 용기가 포상감이라고 주장했다. 옹정제는 명말의 동란기에 중국 인구의 절반이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p178

 

중국에는 지난 수천 년 동안 많은 성인들이 출현했다. 그리고 중국 밖의 먼 지역에서도 그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의 원기가 고갈되었다. 그래서 후대로 내려와서는 우리 청조의 황제들처럼 아주 먼 지역에서 성인이 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만주족이 신속하게 중국을 정복한 것, 반란군을 궤멸시킨 것, 천하의 권력을 장악한 것, 훌륭하게 다스리는 것, 이 모든 것은 전술한 주장이 사실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중국인은 태어날 때부터 소위 이적의 땅에 사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반역의 책> 조너선 스펜스 p195-196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교양의 유무일 뿐 본래 인간에게 귀천의 구별이란 없다

 

조선의 유자(儒者)들은 전통적으로 이적(夷狄)인 청()에 대한 사대(事大)에 비분강개하고, 승산 없는 숭명배청(崇明排淸)을 부르짖은 척화론자(斥和論者)를 칭찬해왔다. 그러나 내실을 보면, 척화론은 사대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한족인 명에 대한 사대는 청의(淸議)이고, 만주족에 대한 사대는 사론(邪論)이라고 하는 인종적인 편견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선비의 나라 한국 유학 2천년> 강재언 p334


덧글

  • 엽기당주 2017/12/26 17:34 # 답글

    그래서 강건성세때 명청대의 신사층들이 매우 고민이 많았다죠. 아무리 봐도 강희옹정건륭은 성군인데 오랑캐라고 배척만 하기엔 난감하기 짝이없는데다가 중화사상에 찌든 그들에게 이민족은 정말 개보다 못한 존재여야 하는 그런 딜레마에 빠져서 허우적댔었죠.
  • 금성천 2017/12/27 11:52 #

    그런 고민조차 없고 오히려 한족들보다 더 열렬한 중화주의 광신도들이 동쪽 오랑캐 지도층들이었죠. 자기들은 소중화라면서.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등 문무겸전의 청나라 황제들에 비하면 명나라 황제들은 개 돼지 수준이었던 자들이 많았는데도.
  • 2017/12/27 21: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12/28 10:1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