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오백년사는 공상과 공론의 기록 그 책 그 구절

뜻이 좋고 아무 일도 아니 하는 것은 공상(空想)이라고 하고, 말만 좋고 아무 일도 아니 하는 것은 공론(空論)이라 한다. 공상과 공론은 나태한 자의 특징이다.

 

조선민족은 적어도 과거 오백년간은 공상과 공론의 민족이었다. 그 증거는 오백년 민족생활에 아무 것도 남겨놓은 것이 없음을 보아 알 것이다. 과학을 남겼나, ()를 남겼나, 철학, 문학, 예술을 남겼나, 무슨 자랑될 만한 건축을 남겼나, 또 영토를 남겼나.

 

그들의 생활의 결과에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송충이 모양으로 산의 삼림을 말짱 벗겨먹고, 하천의 물을 말끔 들이마시고, 탕자(蕩子) 모양으로 선대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다 팔아먹었을 뿐이다.

 

의주에서 부산, 회령에서 목포에 이르는 동안의 벌거벗은 산, 마른 하천, 무너진 제방과 도로, 쓰러져 가는 성루(城壘)와 도회(都會), 게딱지같고 돼지우리 같은 가옥, 이것이 오백년 나태한 생활의 산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진실로 근대조선 오백 년사는 민족적 사업의 기록이 아니고 공상과 공론의 기록이다. 당쟁(黨爭)도 또한 공상과 공론으로 된 것이니 조선사에 나오는 인물은 대부분 공상과 공론의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명망은 그 이루어 놓은 사업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언론과 문장으로 전할 뿐이다. 만일 언론과 문장을 업으로 삼는 자라 하면 언론, 문장만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 마땅하지만, 일국의 재상(宰相)이나 수령(守令), 방백(方伯)으로서 그렇다면 이는 진실로 괴변(怪變)이다.

<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p265-266


 


덧글

  • 갈천 2018/04/10 11:09 # 답글

    폐부를 찌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누가 한 말입니까?
    일본인 입니까 아니면 조선인이 자신을 반성하는 말입니까?
  • 금성천 2018/04/11 11:08 #

    조선 사람의 글이죠. 일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많고요.
    저도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의 국립박물관 관람하면서 만약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유물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시대는 우리 민족사에서 문명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퇴보의 시기가 아닌가 하고.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위 글이 너무 공감 가더라고요.
  • 갈천 2018/09/01 08:37 # 답글

    95년에 동경을 두번이나 같는데 우에노공원에 일본중앙박물관이 있는줄 알았다면 그때 가볼걸...
    이광수는 비록 미리 창씨개며을 하고 일본옷을 즐겨 있었긴 했지만, 민족의 선각자였습니다.
    지금 봐도 명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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