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이토 스케유키가 청국 정여창 제독에게 보낸 항복 권유 편지 그 책 그 구절


대일본 해군 총사령관 중장 이토 스케유키는 대청국 북양해군 제독 정여창 장군에게 삼가 편지를 보냅니다.

 

세상의 운세가 변하여 제가 각하와 전장에서 서로 싸우게 되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오늘의 일은 나라와 관련된 문제일 뿐, 개인적 감정에 얽힌 싸움이 아니라는 점은 각하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은 전과 다를 바가 없이 뜨겁다는 점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이 글이 제가 각하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것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것이 항상 직접 그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 오히려 실정에 어둡다고, 일을 당한 자의 의견이 판 밖에서 보는 자의 생각만 못한 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감히 성심으로 한마디 조언을 드리니 각하께서 깊이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청국 해군과 육군이 교전할 때마다 연전연패하여 낭패를 당하고 있는 것은 각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청국이 과거의 법과 제도만 굳게 지키고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청국은 글로만 과거를 보아 인재를 선발하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대신과 조정의 모든 관리들은 모두 문학에만 힘쓴 사람들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과학기술이라든가 국가운영에 필요한 실사구시의 학문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불과 30년 전에는 우리나라도 오늘의 청국과 비슷하게 위태로웠던 형편이었음을 각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일본은 과거의 제도를 모두 뜯어고치고 새로운 법을 받아들여 오늘날 부강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귀국도 하루빨리 과거의 제도와 습속을 버리고 새로운 문물과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조속한 시일 내에 변혁을 이루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개전하기 전부터 이미 귀국이 패할 것이란 사실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신하가 되어 나라의 운명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끝끝내 고집하며 목숨을 버리면 나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겠습니까? 제가 각하를 위해 감히 한 말씀 드리면 잠시 우리나라에 항복했다가 앞으로 귀국이 중흥할 때를 기다려 진충보국(盡忠報國)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귀국의 역사 기록 중에도 잠시 수치를 참았다가 나중에 큰 뜻을 이루어 국가의 치욕을 씻고 명예를 되찾는데 공을 세운 인물들이 많습니다.

 

프랑스의 전 대통령 마크마옹(MacMahon)이 독일에 항복했다가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 정부를 도와서 정치를 개혁하자 프랑스 백성들이 수치로 여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새 대통령으로 받들었습니다. 터키의 오스만 파샤(Osman Pasha)sms 플레브나 전투에서 패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얼마 후 본국에 돌아와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어 군사제도를 고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각하께서 뜻을 굽혀 일본으로 오시면 우리 대황제 폐하께서 넓은 도량으로 각하를 지극히 우대하실 것입니다. 우리 황제 폐하는 신민 중에 반역을 꾀한 자도 죄를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해군 중장 에노모토 타케아키(榎本武揚)와 추밀원 고문관 오토리 게이스케 등 여러 신하는 다 그 재주를 높이 평가하고 관리에 임명하여 공신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황제와 신하 간의 우애와 정이 두텁고 예우가 융숭합니다. 더욱이 각하는 일본의 신민도 아니요, 또 명예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분이니 극진하게 예우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제독께서 급히 결정을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과거의 전통과 인습과 제도에 얽매어 있다가 점점 나약해져 결국 스스로 죽음에 이를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힘을 비축하여 후일에 큰 뜻을 이룰 것인가 입니다. 제가 보내는 이 편지는 우리의 우정을 생각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해 드리는 것입니다. 저의 정성을 받아들여 자세한 회신을 주시면 뜻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메이지 28(1895) 123

이토 스케유키


<쉽게 풀어쓴 淸日戰記> 이승만 편저 p272-275



덧글

  • 갈천 2018/12/13 20:15 # 답글

    눈물이 나네요. 지난 토요일 화진포 이승만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 금성천 2018/12/17 10:26 #

    좋은 여행 하셨군요.
    전에 올린 "홍사익중장의 처형" 책에 이종찬장군의 "메이지시대 일본인들은 적이라 하다라도 지사를 대우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연합함대 사령관 이토 스케유키제독의 편지에도 적장에 대한 존중과 예우가 담겨 있습니다. 청국 정부로부터도 고립되고 책임추궁 받던 정여창제독에게 청국은 하루빨리 새로운 문물과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루어야 하고 정제독은 일시 항복하여 극형을 피하고 후일을 도모하라는 우정어린 충고가 감동적입니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빨리 파악하고 대처했는데 우리 조선의 선비들은 왜 그리 눈과 귀를 스스로 막아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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