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만도 못한 사대부들 조선시대

1637년 가을 구주(九州)의 시미바라반도와 아마쿠사섬(天草島)에서 격렬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영주들의 가혹한 연공 착취에 견디다 못해 농민들이 봉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지방은 예로부터 천주교신앙이 깊이 뿌리박힌 곳이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모두 십자가의 깃발 아래 굳게 단결되어 있었다. 이 반란의 중심이며 또 총대장으로 추대된 인물은 마스다시로 도키사다(益田四郞時貞)라는 16세의 소년이었다. 사람들은 도키사다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파견된 사자로서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소년의 주위에는 낭인(浪人)들이 모여들어 반란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 반란세력은 매우 강대하여 지방 영주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진압할 수 없었다. 막부에서는 노중(老中, 장군 직속의 정무 담당 최고책임자) 마쓰다이라 노부쓰나(松平信綱)을 파견하여 구주(九州)의 대명들을 동원 진압토록 하였다.

 

도키사다는 남녀를 합하여 37천명의 반란군을 거느리고 시마바라반도 남쪽 끝에 있는 하라성(原城)을 수축하고 그곳에 웅거하여 124천명의 막부군을 상대로 무려 4개월간에 걸쳐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였다.

 

노부쓰나는 히라도의 네덜란드인들까지 동원하여 대포로 성을 공격토록 하였으나 반란군은 성중에서 화살로 편지를 쏘아 국내의 분쟁에 외국인의 힘까지 빌리는 노부쓰나의 비열한 행동을 비난하였다.

 

이 문제는 일부 대명들 간에도 반대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노부쓰나는 할 수 없이 네덜란드인들의 포격을 중지시켰다.

<이야기 일본사> p321

 

 

(1894년 동학군이 봉기했을 때) 조선의 대신들은 모두 청국에 대한 파병 요청에 반대했다. 그 일이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청나라 파병을 주장한 사람은 민영준(훗날 민영휘로 개명) 한 명뿐이었다. 민영준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파병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면 청나라의 권한이 강화되기는 하지만, 나중에 힘을 키워 독립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동학군에게 나라를 뺏기면 어쩔 것인가. 그때는 아무런 기회도 없다.’

 

대신들은 차츰 민영준의 논리에 설득되었고, 김병시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파병에 찬성하게 되었다. 대신들은 대체 어떤 사고방식으로 파병찬성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일까? 이들은 국가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정권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면 이 나라는 청나라의 속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조선의 정권은 계속 우리들이 잡을 수 있다. 동학군에 정권을 잃는 것보다는 청나라의 속국이 되더라도 계속 정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발상일 때 민영준의 파병 요청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청나라 군대의 조선 파병은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이라는 것을 세계만방에 보여주는 세레모니였다.

<말하지 않는 한국사> p104-105


덧글

  • 차가운 도시남자 2018/12/21 19:04 # 답글

    참으로 귀한 비교분석이십니다. 지금도 별 다르지 않은 속성이라고 봅니다.

    집권층들은 국민들이 애국할 필요를 못 느끼는 나라를 만들고 있는데

    여차해도 자기들은 시민권 영주권을 따둔 미국 등지로 뜨면 된다는 발상을 해서 그러는지도 모르지요.

    한국도 좀 망해서 싹 갈아엎고 다시 시작되어야지 여기저기 너무 추하게 썩어가고 있습니다.
  • 금성천 2018/12/21 15:24 #

    저도 갈수록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커집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회의적이고요. 대한민국은 좋은 지도자와 좋은 체제를 가졌던 덕택에 민족사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이만큼 발전했지만 결국에는 북한과 같은 민족성을 가진 한겨레이니 남북이 힘을 합쳐 함께 다시 조선시대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겠지요.
  • 667 2018/12/30 23:06 # 삭제 답글

    일본의 경우 네덜란드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이기는것이 확정된 상황이었고, 조선은 중국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패배를 걱정해야 될 경우였음. 서로 다른 경우니 비교하면 안됨.
  • 금성천 2018/12/31 11:32 #

    그러니 조선의 집권층이 한심했던 겁니다. 자력으로 동학군들에게 패배할 정도면 당연히 정권을 내놓고 물러났어야죠.
  • 명탐정 호성 2019/07/23 16:02 # 답글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면 청나라의 권한이 강화되기는 하지만, 나중에 힘을 키워 독립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동학군에게 나라를 뺏기면 어쩔 것인가. 그때는 아무런 기회도 없다.’



    대신들은 차츰 민영준의 논리에 설득되었고, 김병시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파병에 찬성하게 되었다. 대신들은 대체 어떤 사고방식으로 파병찬성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일까? 이들은 국가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정권의 입장에서만 생각했





    근데 실제로 민중이 갑자기 정권을 잡으면 정권이 이상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 비도승우 2019/08/19 00:32 # 삭제 답글

    667/ ㅋㅋ 안됨 됨 이런 말투쓰는거보니 딱 수준이.
    당시 중앙군 장위영부터 교도중대 지방관아군도 최소 스나이더나 1871r 게베르
    싱글액션 소총으로 무장하고 1894.7.23 경복궁점령때도 나오듯 개틀링만 한성에 8문이 있었음.
    청나라군따위 없이도 충분히 조정의 진압이 가능한 내치문제인데 양반기득권수호차원에서 "소중화 동생"
    이 "중화형님"을 불러들인꼴인데 뭐? 비교 하면 안됨? ㅋㅋ

    우금치에서 동비들을 집단학살한 개틀링이 조선관군편제장비인것은 알고있냐?
    일본군개틀링이 학살했다고 날조하는게 현 국사교육 수준임.
    개틀링2문으로 동학주공집단이 작살나는데일본과 케이스가 달라 비교하면 안됨?

    "어설픈 역사지식으로 나대면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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