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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보다 국민이 우선이다

포항에서 장군은 형산강 이남 철수의 권유를 거부하고 포항사수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철수했다가 다시 공격할 때 입을 피해라면 차라리 사수하면서 입는 피해가 훨씬 경미할 것이라는 장군의 말은 그 후의 전세를 적중시킨 예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 해군의 함포사격이 피난민들이 운집한 지역임을 알고는 대경실색하며 땅덩어리를 뺏고 빼앗기는 것보다 국민의 ...

김석원 장군의 작전지도방식

김석원 장군은 명령할 때나 전선 상황이 심경에 자극을 일으킬 경우에는 기괴한 동작을 취하는 인물이었다. 곧잘 일본 군도를 번쩍 쳐들고는 왼손가락으로 카이젤 수염을 만지면서 고함을 지르고 눈을 부라리며 설치는 것이었다.   이 지역에서 김 장군은 박력 있는 작전지도 솜씨를 발휘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인민군 전법은 돌파와 침투작전을 주로...

최후에 적의 심장을 꿰뚫는 자가 승리자다

어느 날 모 초등학교 교정에서 김석원 장군의 훈시가 있었는데 "전투란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다가 최후에 적의 심장을 꿰뚫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라고 말씀하셨다. 일본도를 쥐고 지휘하던 그 분의 강인한 인상은 지금도 눈에 선하게 남아있다.백정훈 수도사단 1연대 선임하사 <호국용사 6.25참전 전투수기 제 3집> p63  

독립지사 이종혁과 김석원의 우정

총탄이 사람을 피해야지 사람이 총탄을 피할 수는 없다

김석원 사단장은 "포항 전투에서는 단 일보도 후퇴할 수 없다. 여기서 후퇴한다면 남해 바다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서 장검을 빼어들고 "총탄이 사람을 피해야지 사람이 총탄을 피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김삼성 수도사단 18연대 선임하사 <호국용사 6.25참전 전투수기 제 2집> p39  

평양 학병 사건 재판정의 김석원 대좌

1944년 평양에서는 강제 징집된 학병들이 일본군의 무기를 탈취하여 부전고원 방면에서 무장투쟁을 하려다 조선인 헌병보들의 밀고로 전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이 때 재판을 받던 의거 학병들 중에 재판정에서의 김석원 대좌의 모습을 기록한 이야기 두 편이 전해진다. 마침내 우리들의 생사가 결정되는 공판 날이 다가왔다. 1945년 6월 10일. 우리는 공판정...

정래혁 참모장이 본 3사단의 연대장들

3사단의 각 연대장이 다 개성이 특이한 분들이었는데 22연대장 김응조 중령은 영웅심이 강한 호걸풍이 많은 분으로 전술과 전략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고 23연대장 김종순 중령은 사람됨이 그릇이 크고 전투도 곧잘 지도하는 분이었으나 청탁병탄(淸濁倂呑)의 도가 좀 지나친 감이 있었고 26연대장 R대령은 상인의 지식으로 표리가 부동인데다 미군 고문을 제 아비처럼...

진천 전투 부상병들을 위로하는 김석원 장군

김운기의 사진으로 본 충북의 어제와 오늘사진병 선임하사가 전해준 사진 한 장 속에, 6.25 전란의 역사가 담겨있어“이 사진 청주 사진이니 잘 보관하게나.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걸세” 사진병 선임하사가 전해준 사진 한 장, 이 속에 6·25 전란의 역사가 담겨 있다.“제군들! 진천 전투에서 그대들이 국가를 위해 용맹스럽게 싸워 우리는 승리했다. 부상을...

연대장이 철수 명령 내렸다면 좋소

이때 연대로부터 고은리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전달되었다. 철수로상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는 화이버모에 별 하나를 붙인 장군이 무더위 속에서도 긴 장화를 신고 왼쪽 가슴엔 45구경 권총을 바른 손에는 군도를 잡은 채 카이젤 수염을 왼손으로 연상 치켜 올리면서 무엇인가 호령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장병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나는 "전투...

독립지사 이종혁

이종혁은 충청도 태생으로 이충무공의 피를 받은 사람이다. 그는 십대에 대한제국의 군관학교에 들어갔다가 일본 육군유년학교로 넘어간 몇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몇 사람 가운데는 이응준, 김석원등이 있다.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뒤 일군 소위로 임관되어 인천에 귀국의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의 그리 길지 않은 생애에 색채어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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